[이데일리 김국헌기자] 세계 최대 PC 제조업체 델이 잇따른 악재로 고전하면서 델의 앞날에 위기감이 형성되고 있다. 소비자에게 컴퓨터를 직접 판매하면서 명성을 쌓은 델이 회계부정, 배터리 리콜, 인재 유출, 소송 등으로 소비자의 신뢰를 잃으면서 기업의 펀더멘털까지 의심받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언제든지 순위가 뒤집힐 수 있는 세계 컴퓨터 업계 판도를 볼 때 델이 겪고 있는 이번 악재는 일시적인 상처가 아니라 1위에서 밀려날 수 있는 치명타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공포의 8월`..대형 악재 줄이어
최근 델은 `설상가상`이라는 말을 실감할 정도로 8월 들어 악재가 연이어 터지고 있다.
중국에서 랩톱 컴퓨터에 내장된 칩을 더 싼 것으로 바꾸고 소비자에게 알리지 않아 소송을 당하는가 하면, 최근에는 일본 소니사의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 우려로 인한 대규모 리콜 결정으로 큰 상처를 입었다.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델 컴퓨터의 품질에 대한 불신이 쌓이고 있다. 애널리스트들은 이번 사태가 단기적으로 2억~3억달러로 추정되는 리콜 비용 뿐만 아니라 장기적 매출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지적한다.
여기에 고급인력 유출까지 벌어지면서 내우외환이 깊어졌다. 세계 3위로 델의 뒤를 쫓고 있는 중국 레노보(롄샹그룹)는 델의 아시아태평양 부문 사장과 중국·일본 현지법인의 사장을 연이어 영입했고, 델은 아시아시장에서 중추적인 경영진들을 차례로 잃었다.
◇매출 부풀리기 숫자게임 의혹..조사만으로 `치명타`
결정적인 악재는 지난 17일 알려진 과거 매출의 회계처리 부정이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델의 과거 매출을 비공식적으로 조사하고 있다. 케빈 롤린스 델 최고경영자(CEO)는 "델이 지난해 8월 SEC로부터 매출 인식에 대해 질문하는 편지를 받았다"고 말했다.
SEC 조사의 세부적인 내용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고 회계처리 부정을 저질렀는지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기업 이미지에는 치명타가 될 전망이다. 게다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델은 감독당국의 제재뿐 아니라 주주들의 집단 소송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다.
현재 델이 분식의혹을 받고 있는 대목은 매출인식이다. 이는 기업 경영진이 판매 실적을 부풀리려고 할 때 가장 먼저 `창조적으로' 회계작업하는 것이다.
통상 판매 실적 부풀리기는 물류창고에 팔리지 않고 쌓여 있는 제품을 판매한 것으로 서류처리하거나, 연말에 목표치를 달성하기 위해 유통업체에 밀어내기 하는 수법이 많이 쓰인다. 이렇게 매출로 잡힌 제품은 결산 이후 무더기로 반품처리 된다.
◇ 주가 이미 고개 숙여..델 추락의 징조?
주가는 이미 SEC 조사가 들어간 지난해 8월 이후부터 우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전세계 컴퓨터 시장상황이 그다지 좋지 않은 점도 작용했다고 볼 수는 있다. 하지만 펀더멘털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냐는 우려가 증시 주변에 퍼져있다. 올 2분기 실적이 지난해 2분기보다 감소하면서 우려는 현실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반면 경쟁사인 2위 PC업체 휴렛팩커드는 얼마전 발표한 3분기 실적이 예상을 웃돌았고 다음 분기 실적 예상치도 높여잡았다. 델이 미국에서는 휴렛팩커드에, 아시아에서는 레노보에 밀리면서 정상자리를 내놓는 것 아니냐는 예상도 나온다.
2위 휴렛팩커드와 3위 레노보의 맹렬한 추격을 받고 있는 델이 앞으로 잇따른 악재를 이겨내고 1위 자리를 수성할 수 있을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