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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물 먹게 해줘”…목장유출 폐수에 홍천 주민들 고역

이재은 기자I 2023.02.28 10:31:07

개선책 요구했지만 ‘묵묵부답’, ‘문제 없다’
축협 염소분뇨, 비오는 날 마을로 쓸려와
폐수 빠지면 염소똥 나뒹굴고 악취 발생
홍천군 “충분한 단속, 감독 못 한 점 사과”

[이데일리 이재은 기자] 강원 홍천군 한 마을에서 목장 유출 폐수로 인한 악취, 식수 오염 등 문제가 발생했으나 축협과 군이 제대로 대응하지 않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주민들은 20년 넘게 축협과 군청에 대책 마련을 요청했지만 문전박대를 당했다며 일부는 땅과 집을 모두 내놓고 마을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0월 강원 홍천군 화촌면 장평1리 솔치마을에 비가 내린 뒤 붉은색을 띠는 축산 폐수가 도로에 가득 찬 모습. (사진=연합뉴스)
강원 홍천군 화촌면 장평1리 솔치마을 주민들은 최근 마을회관에서 ‘축협 목장 축산 폐수 유출 피해’ 설명회를 열고 이 문제가 2000년 홍천축협이 장평리 일대 젖소 목장을 인수한 뒤부터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주민들은 “가축 분뇨 등을 쌓아서 비료(퇴비)를 만드는 헛간인 ‘퇴비사’를 축사로 바꾸어버리고, 이보다 규모가 훨씬 작은 퇴비사로 대체하면서 분뇨가 제때 처리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홍천축협과 홍천군 관계자에게 지난 1년간 촬영한 피해 현장 사진과 영상을 공개하며 지난해 3월부터 10월까지 확인된 피해만 22건이었다고 강조했다. 사진과 영상에는 축협이 염소 분뇨 수십t을 목장에 쌓아두고 제때 치우지 않아 비가 오는 날 마을 길을 타고 쓸려온 모습이 담겼다.

지난해 6월 비가 내린 뒤 붉은색을 띠는 축산 폐수가 옥수수밭까지 흘러들어온 모습 (사진=연합뉴스)
주민들은 이 같은 축협의 대응으로 마을 도로가 새빨간 폐수로 가득찼으며 인근 옥수수밭도 폐수에 잠겼었다고 말했다. 폐수가 빠지고 난 뒤에는 염소똥이 도로와 밭을 나뒹굴었고 여름이면 곰팡이가 자라 악취가 진동했다고 한다.

또 얕게는 2m, 깊게는 4∼5m에서 나오는 건수(乾水)를 식수와 농업용수로 쓰는 주민들의 피해로 이어졌다고 덧붙였다.

이어 지난해 어렵사리 목장 내부를 확인했을 때 배수로 정비가 엉망이었고 축사 주변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아 염소똥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마을 차원에서 홍천축협과 홍천군에 여러 차례 민원을 제기했으나 개선된 것은 없었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10월에는 축협과 군에 각각 개선책을 마련해달라는 건의서를 보냈으나 축협은 이마저도 묵묵부답이었고, 군은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답변했다.

지난해 6월 비가 내린 뒤 검은색 염소 똥이 마을까지 쓸려 내려온 모습. (사진=연합뉴스)
주민들은 “자연이 너무 좋아서 들어왔는데 지금까지 똥물 먹게 해주신 홍천축협 분들, 이를 등한시하고 내버려 둔 홍천군 덕에 저는 이제 이곳이 싫다”며 “비 오는 날이면 냄새가 코를 찔러서 살 수가 없다”고 해결책을 촉구했다.

이정근(64) 장평1리 이장은 28일 “여태껏 축산 폐수 유입 문제에 눈과 귀를 감아온 축협과 군청이 원망스럽다”며 “지금까지 청정지역 농산물이라고 판매해왔는데 청정 이미지 추락은 물론 농산물 피해 책임은 누가 질 것이냐”고 일갈했다.

20년째 사는 다른 주민도 “처음 이사 왔을 때부터 축협에 문제를 제기했는데 문전박대를 당하고, 군청에 전화에도 ‘알아보겠습니다’하고 끝이었다. 이제는 집과 땅을 내놔도 팔리지 않는다”며 폐수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또 다른 주민은 “축협은 왜 오폐수 처리 시설도 없이 무방비하게 분뇨 섞인 물을 그대로 흘려보내는지, 군은 야구 인구 약 200명을 위해 70억짜리 야구장을 지어놓고는 왜 마을 주민 200여 명을 위한 오폐수 처리 시설 설치에는 무관심한지 묻고 싶다”고 했다.

주민 설명회 당시 축협 측은 “올해 사업 계획에 개선책을 일부 반영했고, 염소는 모두 내다 팔 계획”이라고 전했다.

군 관계자는 “축협에서 농장을 운영하면서 부실했던 점이 많았다는 생각이 든다”며 “충분한 단속과 지도·감독을 못 한 점 사과드리고, 환경과 관련한 역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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