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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일본·캐나다 등 주요국은 미 세제개혁에 따른 장기적 효과 및 파급효과 분석에 이미 착수했으며, 유럽연합(EU)은 특별소비세의 이중과세를 비난하며 보복을 예고했다. 반면 토요타자동차 등 일본 기업들은 미 세제개혁을 기회로 보고 미국에 투자를 늘리고 생산시설을 확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독일·프랑스·영국·이탈리아·스페인 등 EU 5대 경제대국 재무장관들은 지난 주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에게 한 통의 서한을 보냈다. 5개국 재무장관들은 “미 세제개편안은 외국 기업에 대한 차별이며, 이중과세를 방지하는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도 위반된다”며 “국제 무역질서를 왜곡시킬 우려가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 우선(America first)’의 차별 정책이 국제 무역갈등을 불러올 것이라는 얘기다.
이들이 가장 먼저 이의를 제기한 것은 다국적 기업의 미국 내 자회사가 해외에서 제품이나 서비스를 수입할 때 20%의 특별소비세를 매긴다는 조항이다. 해외에서 이미 세금을 낸 기업들에게 추가 세금을 부과, 사실상 이중과세라는 것이다. 외국 기업의 자회사가 해외 본사에 송금하는 돈에 대해 10%의 세금을 부과한다는 조항도 외국 기업에 대한 차별 조항으로 꼽혔다. 내부거래가 잦은 은행, 보험 등 외국 금융사에겐 특히 불리해 국제 금융시장에 악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다.
주목할만한 점은 5개국 재무장관들이 “미국에 대한 보복 조치를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는 점이다. 이미 EU는 애플, 구글, 아마존, 맥도널드 등 미국의 다국적 기업들에게 “세금을 더 내라”며 제재 움직임을 강화하고 있다. 애플은 지난 4일 EU 집행위원회의 강제 추징 결정에 따라 아일랜드에 미납 세금 130억유로를 내기로 합의했다. EU 집행위는 네덜란드가 스타벅스에, 룩셈부르크가 아마존과 피아트에 제공한 세금 혜택도 EU 조세 규정을 위반한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될 우려가 있다. 국제 무역에서 WTO 규정이 무시되고 보호무역주의 기조가 기승을 부릴 수 있다는 얘기다. 독일 뮌헨 소재 경제연구소 ‘Ifo’의 클레멘스 푸에스트 소장는 “미 세제개편안은 국제무역을 혼란에 빠뜨리고 (각국의) 이중 과세로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쾰른 독일경제연구소(IW)의 토비아스 헨체 이코노미스트도 “유럽에서 세금을 낸 기업들에게 세금을 한 번 더 부과해 불공정한 경쟁을 유발할 것”이라며“한편으론 미국에서 생산하면 이중과세를 면제받을 수 있다는 메세지를 담고 있다”고 말했다.
또 법인세가 21%로 인하되면 미국의 투자 매력도가 상승, 상당 규모의 글로벌 자금이 미국으로 빨려들어갈 수 있다. 미국에 진출한 각국 기업들은 이미 경영 전략을 수정하고 있다. 일본 기업들의 경우 향후 5년 간 미국에 100억달러 규모 투자를 결정한 도요타에 이어, 닛산자동차도 현지 생산능력 확충 등 투자 확대를 적극 고려하고 있다. 정보기술(IT)업체 히타치도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각국 정부는 대응책 마련으로 분주하다. 일본은 법인세 실질 부담을 20%까지 낮추는 방안을 추진 중이며, 프랑스도 현행 33.3%인 법인세율을 오는 2022년까지 25%로 단계적으로 낮추겠다는 계획이다. 이스라엘도 자국 스타트업의 미국 이전을 우려해 법인세 인하 등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1990년대 말 과도한 국제조세 경쟁이 재현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한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하원에서 통과된 미 세제개편안이 “상원에서도 통과가 확실시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전체 100명 중 공화당 의석이 52명으로 이탈표가 3표만 나와도 통과될 수 없는 구조지만,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던 공화당의 수전 콜린스(메인) 상원의원과 마이크 리(유타) 상원의원이 지지 의사를 표명했기 때문이다. 또 이미 상원은 별도의 세제개편안을 통과시켰고, 상·하원 지도부가 이미 단일안에 합의한 만큼 반대할 명분도 크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