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순용 기자]두 자녀의 어머니인 김 모씨(52)는 지난해 9월 심한 피로감과 배에 복수가 차는 증상으로 병원을 방문했다가 알코올성간질환, 간암, 간신증후군 3가지 질환을 진단받았다. 간암은 신장 위 부신까지 인접해 있었고, 신장까지 망가지고 있었다. 그녀에게 남은 유일한 치료는 간이식뿐이었다.
살아 있는 사람의 간을 이식하는 생체간이식의 경우 국제법상 가족이 아니면 승인이 어렵다. 그녀에게는 아들과 딸이 있는데 처음에는 혈액형이 일치하는 아들이 자신의 간을 기증하기로 했다. 그러나 검사결과 아들은 선천적으로 간의 크기가 작아 간이식이 불가능했다.
결국 딸인 25살 이모 씨가 혈액형은 다르지만 간을 기증하기로 했지만 또 다른 복병이 있었다. 2월 5일에 이식이 적합한지 시행한 검사에서 딸에게 지방간이 발견됐고, 담당교수로부터 이식을 위해서 상당한 몸무게 감량이 필요하다는 말을 듣게 됐다.
어머니 김 씨는 혹시라도 딸이 무리한 감량으로 건강을 해칠까 반대했지만 딸 이 씨는 망설임 없이 식단조절과 운동으로 몸무게 감량에 돌입했다. 하루에 한 끼에서 두 끼 식사 외에 어떠한 음식도 입에 대지 않았고, 식사마저 약간의 과일과 고구마 등이 전부였다. 직장까지 다니고 있었기에 이 같은 감량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녀는 초인적인 노력으로 두 달 만에 몸무게를 15kg이나 감량하는 데 성공했다. 검사결과 지방간 소견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처음에는 막막하고 갑자기 몸무게를 줄이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어머니의 간이식을 위해 감량이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며 “수술을 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너무나 기뻤다”고 말했다.
드디어 4월 9일 간이식 수술이 이뤄졌다. 결코 쉬운 수술이 아니었다. 수많은 혈관들이 연결된 간을 이식하기 위해서는 정교한 술기가 요구됐다. 또 혈액형불일치로 인해 이식된 장기에 대한 면역반응이 나타나지 않도록 수술 전 혈장교환술 등으로 항체수치를 낮췄는데, 수혈을 하게 되면 항체수치가 다시 올라갈 수 있기 때문에 수술 중에는 외부수혈을 최소화해야 했다.
외과 유태석 교수 외 간이식 수술팀이 이식수술을 주관했고, 한림대학교의료원의 경험 많은 장기이식 교수진들도 수술에 참여했다. 수술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딸의 간 70%가 이식되어 어머니의 새 간이 되었다. 모녀 모두 몸상태가 빠르게 회복돼 수술 하루 만에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이동할 수 있었다. 특히 수혜자인 어머니의 회복속도가 놀라웠다.
이 씨는 “수술 후 딸에게 미안한 마음에 하루라도 빨리 몸을 회복에서 딸의 상태를 보러 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며 “잠도 거의 안 자고 밤늦게까지 걷기와 폐활량 강화운동 같은 재활운동을 반복했다”고 말했다.
유태석 교수는 “일반적으로 이식수술 후 기증자보다 수혜자가 회복에 좀 더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김 씨의 경우 오히려 기증자인 딸의 몸상태를 걱정하며 입원기간 ‘딸을 좀 더 살펴달라’고 부탁했었다”고 말했다.
외과 조원태 교수는 “생체 간이식의 경우 가족 간에 이뤄지기 때문에 기증자가 감량이 필요한 경우 한 달 만에 5kg 정도 감량하는 사례가 있지만 두 달 만에 15kg을 감량한 것은 믿기 힘든 일”이라며 “어머니를 위한 딸의 의지와 정신력에 의료진 모두 놀라고 큰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빠른 회복속도를 보인 모녀는 수술 일주일 만에 손을 잡고 함께 병원을 나설 수 있었다.
◇코로나19 감염예방 위해 의료진의 철저한 장기이식 준비
한림대학교동탄성심병원은 코로나19 감염공포가 최고조에 달했던 지난 3, 4월에 간이식 1건과 신장이식 2건을 시행했다. 특히 수혜자의 경우 장기이식 전후 면역억제제 투입으로 면역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코로나19에 감염될 경우 증상이 빠르고 심각할 수 있다. 또한 이 시기에 국내 한 병원에서 장기이식 기증자가 코로나19로 확진된 사례까지 발생하며 병원 전체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유태석 교수를 포함한 장기이식센터 의료진은 기증자와 수혜자에게 입원하기 전 코로나19 검사를 시행했으며, 이식수술 전에도 추가로 코로나19 검사를 했다. 이식수술 전까지 X-ray 검사와 문진이 매일같이 시행하며 혹시 모를 환자의 몸상태를 확인했다. 환자와 접촉하는 의료진 또한 담당교수와 중환자실 및 병동 간호사로 제한됐고, 접촉 시에는 최고수준인 레벨D 방호복을 입어야 했다. 또 환자에게 필요한 모든 검사는 이동식 검사기기를 이용해 병실에서 진행됐고, 의료진은 투입되는 의료기구를 다시 한번 확인하며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유태석 교수는 “코로나19 검사결과가 나올 때까지 부득이하게 수혜자와 기증자가 격리병실에 머물러야 해서 힘든 점이 있었지만 환자분들이 코로나19 감염예방을 위한 조치들을 이해하고 잘 따라 주었다”며 “한림대학교동탄성심병원은 2015년 메르스를 이겨내며 신종감염병 대처능력을 키웠고 이번 코로나19 위기 속에서도 장기기증자의 숭고한 뜻이 이어질 수 있도록 철저한 준비로 이식수술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장기기증 활성화 위해서는 뇌사에 대한 정확한 인식 중요
한림대학교동탄성심병원에서 뇌사자 발굴 및 관리를 맡고 있는 신경외과 신영일 교수는 뇌사환자 가족들의 이러한 얘기를 들을 때마다 답답함을 감추기 힘들다. 뇌사는 불의의 사고나 뇌에 큰 병변으로 인해 뇌기능이 완전히 멈춰 더이상 회복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뇌사상태가 되면 의식은 혼수상태가 되고 호흡도 불가능해져 2~3주 안에 다른 장기들도 망가지게 된다.
뇌사판정이 내려지면 장기기증이 가능해진다. 그러나 뇌사판정이 내려진 뒤에도 가족들은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뇌사 장기기증에 대한 가족 동의율은 2015년 51.7%에서 2018년 36.5%, 지난해 6월까지 31.5%로 감소했다. 반면 장기이식을 기다리다 사망한 환자 수는 2015년 1811명에서 2018년 2742명으로 51.4% 증가했다.
신일영 교수는 “뇌사는 식물인간 상태와 다르다. 식물인간 상태는 드물게 의식을 회복하는 경우가 있지만 뇌사는 회복이 불가능하다”며 “뇌사환자 가족들이 특정 병원을 가거나 치료를 받으면 환자가 깨어날 수 있다는 잘못된 정보를 믿고 장기기증을 통해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어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신 교수는 뇌사환자가 발생할 경우 가족들에게 진솔한 설명을 통해 장기기증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한국장기조직기증원으로부터 장기기증 활성화에 기여한 공로로 ‘생명나눔 공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신 교수는 “장기기증은 생명을 나눔으로써 또다른 생명을 살리는 고귀한 행위”라며 “한림대학교동탄성심병원은 장기이식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확산하고 장기이식이 더욱 활성화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