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은 살 속에 숨은 마을"…몸과 언어의 密愛

오현주 기자I 2012.01.17 14:58:02

`밀어` 펴낸 작가 김경주
눈동자·귓볼·솜털 등…46곳 섬세한 탐색
"몸을 관통하지 못한 언어는 어디로든 데려갈 수 없다"

이데일리신문 | 이 기사는 이데일리신문 2012년 01월 17일자 30면에 게재됐습니다.

▲ 작가 김경주(사진=문학동네)

[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문학은 숨 쉬는 경험이다.” 그런데 그 경험이 곧 몸이라면. 그래서 몸에 관한 이런 문학이 가능했다면. `핏줄`은 고독해서 몸속으로 숨어버린 살이며 아직 발견하지 못한 채 물 속 깊이 떠다니는 슬픈 대륙의 이미지다. `목선`은 잠자는 육신을 공중으로 데려갈 때 필요한 선이고, `무릎`은 살 속에 숨은 마을, `쇄골`은 육체가 기적적으로 이루어낸 선의 풍경이다….

몸에 관한 섬세한 탐색을 이룬 그가 시인인지 극작가인지는 중요치 않다. 아니 구분이 불필요하다. 그는 단지 글을 쓰는 작가일 뿐이다. 2006년 첫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로 등단해 `시차의 눈을 달랜다`로 2009년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그는 연극실험실 혜화동 1번지에 올린 작품 `늑대는 눈알부터 자란다`로 극작가 대접을 받는다.

김경주(36), 그가 산문집 `밀어`(384쪽, 문학동네)로 2년여 만에 돌아왔다. 인간의 몸 각 부위에 명명된 욕망과 고뇌의 흔적들을 죄다 헤집어낸 육체의 대서사시를 들고 왔다.

`몸에 관한 시적 몽상`이란 부제가 설명하듯 책에서 몸은 주체이자 곧 형식이다. 그런데 보통 `신체`라 불리는 유기적 관계성과는 거리가 멀다. 몸은 낱낱의 부위가 합쳐진 한 덩어리일 뿐이다. 눈동자, 귓불, 잇몸, 솜털, 손가락, 뺨, 입술, 쇄골, 복사뼈, 무릎, 달팽이관, 보조개, 갈비뼈 등, 마흔여섯 가지 별개 기관들의 합체다.

몸을 이룬 기관들에 대해 작가는 철학, 언어학, 역사학 등 인문적 고찰을 넘어 민속학, 생물학, 의학적 해부를 아우른다. 우주법칙과 자연현상을 연구해 운명을 점친다는 운기학까지 넘본다. 그리고 가장 깊게 응시하고 은밀하게 더듬는 시선으로 은유와 상징이 점철된 언어를 불러낸다. 작가에게 말은 감각을 표현하는 도구가 아니라 감각을 만들어내는 도구다. 이성과 논리의 잣대는 여기선 별 소용이 없다. “종아리는 부러질 수 없는 부위지만 학대에는 쉽게 핏줄이 올라오는 부위”이기 때문이고, “사람은 상대가 좋아지지 않으면 절대로 그 사람의 귀를 만지지 않는다는 것”을 오랜 실험에서 터득했기 때문이다.

왜 몸인가. 작가가 몸에 몰입한 것은 신체극 이미지극 같은 실험극을 기획하고 극을 쓰고 연출을 해냈던 것과 무관치 않다. “몸을 관통하지 못하는 언어는 어디로든 데려갈 수 없다”는 것이 그의 문제의식이다. 덕분에 현대시를 확장한 시극이 그의 통합 장르가 됐고 몸에서 삐져나온 시어들은 그의 시학이 됐다.

`몽상`은 책에서 작가가 즐겨 쓴 말이다. “몽상하는 눈동자는 눈을 배웅한다. 꿈이란 한 몸에서 서로 다른 눈들을 가지고 만나는 진실이기도 하지만 눈동자가 우리 몸에 숨긴 유령의 배후이기도 하다. 몽상은 눈동자의 유령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 눈동자로 살핀 쇄골을 `바로크의 빗장`이라 하고 등을 `몸으로부터 추방당한 세계`라고 일컫는다.

글쓰기의 파격 또한 작가가 몸에 들이댄 관념성 못지않다. 문장은 뚝뚝 부러지고 단어들은 이탈한다. 친절한 해설 같은 건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인간의 몸이나 글의 몸이나 작가가 추구하는 재해석은 독특함을 넘어서 가히 총체적 난해함이다.

사진작가 전소연이 이미지를 담당했다. 피사체의 선과 양감이 도드라진 흑백의 화보들은 몸이 속삭이는 밀어에 철저히 밀착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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