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와 시장이 주목하는 대안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의 관광인구 충전 사업인 ‘BETTER里(배터리)’ 프로젝트다. 빈집, 고택, 로컬 미식 등 지역 유휴 자산에 혁신 스타트업의 비즈니스 모델을 이식해 체류 인구를 확보하는 것이 골자다. 일회성 축제나 시설 과잉 투자를 지양하고, 민간 벤처의 자생력으로 지역의 ‘체류 일수’와 ‘실질 소비’를 늘리는 가성비 중심의 패러다임 시프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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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 주도 탈피한 봉화…‘민간 독자 생태계’ 가동
배터리 사업의 첫 자립 모델을 구축한 곳은 경북 봉화군이다. 2024년 공모에 선정된 봉화군은 군청 공무원들이 스타트업 대표들과 바래미 고택단지, 유록마을 등 현장을 돌며 주민과 기업을 일대일로 밀착 중개했다.
성과는 지표로 나타났다. 첫해 실증 기간(8~11월) 동안 장기 체류형 생활인구 187명을 유입시키며 3550만 원의 직접 소비를 끌어냈다. 인근 안동시와의 연계 성과를 합산하면 유입 인구는 854명, 소비 창출 규모는 1억 7000만 원으로 늘어난다. 이를 바탕으로 봉화군은 올해(2026년) 자체 예산 2억 원(지방소멸대응기금 1억 5000만 원, 군비 5000만 원)을 편성, 지자체 주도 사업으로 전환했다.
이주희 봉화군 관광마케팅팀 팀장은 “행정이 관리자 역할에서 벗어나 현지 인적 자원을 연결하는 데 집중했다”며 “정부 지원이 종료된 현재도 벤처와 주민들이 자체 채널로 독자적인 거래 시스템을 가동하며 민간 주도 수익 구조를 이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생력 확보를 위한 과제도 확인됐다. 봉화군에 따르면 지난해(2025년) 목표 생활인구(300명) 대비 실제 달성은 261명(87%)에 그쳤다. 일부 이동 서비스는 규제에 가로막혔고, 중장기 체류 상품의 안정적인 수요 확보도 숙제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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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30년 가까이 묵은 현행 ‘농어촌정비법(농어촌민박 규제)’과 복잡한 건축·위생·소방 기준이 진입 장벽이다. 현행법은 실거주 주민 중심으로 설계돼 외지 법인은 민박 허가를 받을 수 없다. 민간 스타트업이나 전문 운영사가 지방의 빈집 수십 채를 묶어 프리미엄 숙박 벨트로 고도화하려 해도 제도적 병목에 부딪히는 구조다.
심창섭 가천대 관광경영학과 교수는 “정부가 생활인구 확대를 강조하고 있지만, 현행 제도는 이러한 정책 방향을 충분히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며 “농어촌민박 제도의 운영 주체를 로컬벤처와 법인 등으로 다양화하는 등 생활인구와 관광산업에 친화적인 방향으로 제도를 과감하게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새로운 관광 비즈니스가 지역에서 성장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뒷받침되지 않을 경우 역량 있는 창업가들조차 창업 초기의 ‘데스밸리’를 넘지 못하고 시장에서 이탈할 수 있다는 게 심 교수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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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배터리 사업의 후속 실증 무대인 전북 김제시와 전남 강진군에는 총 61개 관광기업이 출사표를 던졌다. 4.4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최종 선정된 14개 스타트업에는 각 5000만 원의 사업화 자금과 창업보육기관의 고도화 컨설팅이 제공된다.
전북 김제시는 넓은 지평선과 농업 자원, 지역 내 늘어나는 유휴 공간을 ‘체류형 워케이션 및 라이프스타일 전환’ 자원으로 탈바꿈시킨다. 그동안 스치고 지나가는 ‘단순 경관’에 머물렀던 김제평야를 머무는 공간으로 바꾸는 시도다.
대표적으로 유휴 건물을 감각적인 마을호텔 모델로 리모델링하는 ‘고결’이 체류 인프라를 다진다. 여기에 김제평야를 배경으로 로컬 스포츠 관광을 결합해 ‘달리는 여행지’를 제안하는 ‘문카데미’, 지역 특산물인 김제 쌀 구독 서비스와 트렌디한 로컬 콘텐츠를 결합해 정기적인 방문을 유도하는 ‘에프엘디스튜디오’ 등이 결합한다. 농업이라는 전통 자원에 플랫폼 비즈니스를 이식해 생활인구를 늘리겠다는 구상이다.
전남 강진군은 독보적인 역사·인문 자원과 남도의 자연환경을 아웃도어 및 복지관광과 융합하는 전략을 취했다. 장기 체류형 콘텐츠를 선보여 남도 끝자락이라는 지리적 한계를 정면 돌파하겠다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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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올해 3년 차를 맞은 배터리 사업이 단순한 아이디어 실증을 넘어 국가 관광 정책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이끄는 마중물이 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자체들이 여전히 대규모 인프라 구축이나 단기 축제 인원 동원 같은 숫자 부풀리기식 행정에 매몰되어 있다는 비판이다.
윤혜진 경기대 관광개발경영학과 교수는 “인구감소지역 관광정책도 이제는 관광객 유치보다 생활인구 확대와 지역 소비 창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관광벤처가 주민과 함께 지속 가능한 사업모델을 만들 수 있느냐가 향후 성과를 가를 것”이라고 제언했다.
한국관광공사는 이 같은 정책 패러다임이 신규 대상지인 김제와 강진까지 안착할 수 있도록 제도적 개선과 행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김관미 한국관광공사 관광기업지원실장은 “참여기업과 지역 주민 모두에게 긍정적인 성과가 돌아갈 수 있도록 비즈니스 모델 안착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