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박철응 기자] 굴렁쇠는 멈추면 쓰러진다. 멈추지 않을 것 같던 부동산 불패 신화가 `일단 멈춤`하면서 한국 사회도 흔들리고 있다.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고 거래가 중단되면서 부동산시장은 공황 상태다. 빚을 내 `막차`를 탄 가계는 불어나는 손실에 휘청거리고, 건설업체들은 쌓여가는 미분양과 입주 거부에 몸살을 앓는다. 매머드급 도시계획들은 좌초 위기를 맞았고 정부는 대책 마련에 갈팡질팡하고 있다. 흔들리는 부동산공화국의 실태를 각 부문별로 진단해 본다. [편집자]
부동산 침체 요인에 대한 전문가들의 분석은 다소 차이가 있지만 당분간 추세가 이어질 것이란 점에는 대체로 이견이 없었다.
해법 역시 각론은 달라도 총론적으로는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두라`는 게 공통된 시각이다.
◇ "하우스푸어 대책 필요"..DTI 완화 주장도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경제금융부동산학과 교수는 "투기 장세로 인한 수도권 일부 지역에 생겨난 거품이 꺼지는 과정이므로 대세 하락으로 봐야 한다"면서 "많은 사람들이 가격은 오르지 않고 이자비용은 늘어나는 곤경에 처해있다"고 말했다.
무리한 시장 부양을 자제하고 `하우스푸어`(집 가진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고통 경감책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전 교수는 "시장은 조정되도록 두는 게 맞다"면서 "하우스푸어에 대해서는 우선 실태를 정확히 파악한 후 대출 통로를 마련하던가, 혹은 부채 지분을 인수해 주는 등 정부의 정밀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두성규 건설산업연구원 건설경제연구실장도 하우스푸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다만 두 실장의 해법은 정부가 부동산 침체를 초래했다는 인식에서 출발해 `뜨거운 감자`인 DTI(총부채상환비율) 완화로 귀결된다.
두 실장은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대외적 요인도 있었지만, 그동안 정부가 지나치게 개입했던 측면이 크다"면서 "분양가상한제 등으로 건설사들의 어려움이 가중됐고, 세금정책 등으로 수요가 얼어붙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전강수 교수와 달리 시장 부양책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두 실장은 "가계대출 심각성도 공감하지만 부동산 침체가 하우스푸어와 용산역세권을 비롯한 개발계획 위기 등으로 이어지는 상황에서는 DTI 완화라는 극약 처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DTI 완화 자체가 바로 경기 회복으로 이어진다고 장담은 못하지만, 중요한 건 수요 심리를 살릴 군불이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만든 위기인만큼 정부가 `결자해지` 차원에서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 "하우스푸어, 개인이 책임질 일"
물론 DTI 완화는 물론 하우스푸어 대책에 대해서도 "또 다른 왜곡을 낳는다"며 반대하는 시각도 있다.
박합수 국민은행 부동산팀장은 "부동산 시장의 큰 주기적 흐름상 침체기를 맞은 것이어서 향후 5년 정도 추세가 이어질 수 있다"면서 "이제는 주택을 투자 수단으로 볼 게 아니라 실수요자 위주 컨셉트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팀장은 또 "무리한 대출자에게 정부가 지원해 주면 또 다른 왜곡을 낳게 된다"면서 "생각만큼 아파트 값이 오르지 않기 때문에 심리적 박탈감을 느낄 수 있겠지만, 당장 상환 능력이 부도난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금융당국이 금리를 단기간 급등시키지 않는 것이 부동산 침체기를 관리하는 가장 중요한 관건이라고 보고 있다.
하우스푸어 문제는 전적으로 개인의 자율적 판단이므로 책임도 개인이 감당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손재영 건국대 부동산대학원장은 "최근 언론에서 하우스푸어 얘기가 많이 나오지만 사회적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닌 것 같다"면서 "개인의 판단에 대해 정책적 대책을 내놓을 필요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 도태되는 건설업체는 내버려둬야
건설업계 구조조정에 대해서는 대부분 시장 기능에 맡겨야 한다는 의견이다.
손재영 원장은 "정상적인 상거래 시장에서 도태되는 건설업체는 내버려둬야 시장이 회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강수 교수도 "그동안 건설업계는 조금만 문제가 생겨도 정부가 고통 경감 대책을 내놓곤 했고, 그것이 거품을 키우는 요인이 됐다"면서 "이미 구조조정됐어야 할 것을 질질 끌고 왔다"고 지적했다.
전 교수는 이어 "기업 자체를 살려줄 필요는 없고, 짓고 있던 아파트를 정부가 인수해 공공주택으로 활용하는 등의 대책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박합수 팀장은 "건설사들이 너무 주택 위주로 집중돼 있고, 잘 된다는 지역에 몰려다니는 습성이 있었는데 구조조정을 계기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만 민간 기업들과 달리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공적 기능을 수행하는 곳이므로 시장에 맡겨둘 수 없다. 토지를 비롯한 자산 매각이 대안인데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어 쉽지 않다. 결국 기댈 곳은 정부 밖에 없어 보인다.
황규완 메리츠증권 부동산금융연구소 연구원은 "LH는 지방 산업용지나 택지들을 서둘러 팔아야 하는데 요즘 같아선 매수자가 나서기 어렵다"면서 "핵심 사업을 제외하고 정리하겠다는 방침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했다.
황 연구원은 이어 "법 개정을 거쳐야하지만 정부 지원을 통한 자본금 확대가 유일한 해법이 될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자구책으로 인위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재정 문제에만 너무 집착해서 공적 기능을 잃어선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권정순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부동산팀 실행위원(변호사)은 "LH는 시장에서 못하는 일들을 하는 곳인데, 최근 움직임은 공적 기능을 방기할 것 같은 느낌을 준다"면서 "부채 문제는 어려운 숙제이지만 공적 기능이라는 본분을 저버려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 대형 PF 프로젝트 정부 개입은 안돼
좌초 위기에 놓여 있는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 등 대형 프로젝트파이낸싱(PF) 공모형 개발사업에 대해서는 `고통 분담`이 강조됐다. 단 사업 참여자들의 고통 분담이어야지, 정부가 과도하게 개입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게 중론이다.
두성규 실장은 "PF 사업은 이해당사자들이 사업성을 보고 뛰어든 것 아니냐"면서 "정부 규제가 한 요인이 된 하우스푸어 문제와는 다른 성격"이라고 지적했다.
두 실장은 이어 "건설사들에게 부담하는 지급보증을 다른 투자자들이 분할하는 등 구성원들이 리스크를 나눠 질 필요가 있다"며 "정부가 공적기금을 투입한다든지 하면 끝없는 도덕적 해이를 불러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손재영 교수 역시 "개발사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많은 국민들의 주거생활에 직접적으로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문제는 아니다"면서 "정부의 인위적인 개입은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 전강수 교수는 "부동산 가격이 계속 오를 것이란 전제 아래 과잉 개발 계획된 것"이라며 "예측이 잘못됐다는 점을 받아들여 사업 규모를 줄이고 속도를 조절하는 등 방안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