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문주용기자] 김인식 대표팀 감독의 리더십이 회자되는 것은 리더십 갈증 탓일 게다. 안정감 있고, 인화를 중시하고, 재활 선수들을 챙기고, 약점보다는 장점을 존중한다. 적재적소에 선수를 교체하는 용병술은 전체 경기흐름을 정확히 읽는 자신감에서 나온 듯하다.
리더십을 강조하는 세태는 현 사회지도층을 불안케한다. 비교하기를 즐기는 우리들은 현 지도층과 비교한다. 하지만 필자는 김 감독의 진짜 실력을 리더십에서 찾고 싶지 않다. 이보다는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인 김 감독의 전략이다.
미국과 일본이 우리에게 진 이유는 딱 하나다. 우리의 실력을 사전에 알지 못한 것이다. 대신 자신들이 최고며, 항상 우위에 있다는 자만심만 있었다. 자만심은 자신의 실력을 돌아보지 못하게 하고, 상대방의 전력을 냉정하게 읽지 못하게 했다.
야구 만큼 사전 전력탐색이 중요한 스포츠도 없을 것이다. 투수판과 홈플레이트 사이 공 도달시간 1초도 안되는 순간에 승부가 결정되는 스포츠다. 투수는 타자의 약점을 파고들고, 타자는 투수의 공을 미리 예측할 수 있다면 이긴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는 미국, 일본에 비해 상대 전력을 파악하는 정보력에서 앞선 것이다. 우리는 정보 수집도 열심히 했겠지만, 이를 냉정하게 평가하는 정보분석력이 뛰어났다.
어떻게 냉정히 정보를 분석할 수 있었을까. 우리는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는 박찬호 등 미국파, 일본에서 뛴 경험이 있는 선동열 이종범 같은 일본파들이 미국, 일본의 기본 실력을 인정했다. `우리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겸손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면서 강한 선수들도 약점이 있다는 진리를 잊지 않고 있다. 이 약점은 미국에서 뛰고 있고 일본에서 뛰었던 선수와 코치들의 입에서 정리됐다. `우리보다 강하지만 이들을 이길수 있는 기회도 있다`는 명제가 성립되는 것이다.
이길 수 있는 기회를 찾아내는 자세는, 박찬호가 태평양을 건너가지 않았다면, 서재응, 김병현이 건너가지 않았다면 영원히 터득하지 못했을지 모른다. 이들은 건너가서 깨지고 욕듣고 울면서 맞섰고, 실력을 훔쳐왔다. 많은 수업료를 지불했다.
이들의 해외 경험이 지식이고 정보다. 암묵지(暗默智)라는 것을 김 감독, 선동열 코치등과 전 선수가 공유된 것이다.
반대로 세계 최강 미국이 이번 대회에서 졸전을 폈다.
뚜껑을 열고 보니 세계최강은 모두 수입품이었다. 미국은 시장을 열어 세계 최고의 선수들을 받아들여 세계 최강의 시장을 구축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정작 세계최강이라는 자신감은 미국의 실력에서가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온 선수들의 실력에서 나온 것임이 확인됐다.
우리에게도 중요한 교훈이다. 세계최고 시장을 만드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세계 최고 실력을 키워내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선수들중 해외파 선수들이 맹활약을 했지만, 국내파 선수들의 활약이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점이 큰 의미로 다가온다. 만일 해외파만 있었다면 우리도 몇년내 미국 꼴이 될 것이다.
이들 국내파들은 국내에서 수입된 해외선수들과 경쟁하며 이겨왔다. 처음엔 눌렸다가 차츰 수입선수들을 넘어섰다. 물 샐 틈없는 내야 수비진의 중심, 박진만은 순수 국내파이고, 외야 명수비를 한 이진영도 마찬가지다.
다른 주제지만, 해외 자본이 들어온 금융시장, 주식시장에서 국적논쟁이 치열하다. 칼 아이칸의 KT&G입성이 사실상 성공했다. 또 외환은행 매각에 국내 은행과 외국은행이 붙었다.
자본시장의 문을 닫을 것인가 말것인가 하는 논쟁은 의미없다. 어쨌든 우린 폐쇄된 시장의 길을 걷지 않기로 지난 1998년 정했다. 그렇지만 해외 출신의 플레이어들은 새로운 기법을 동원하고 있고, 때문에 비싼 수업료가 계속 나가고 있다.
비싼 수업료를 줄이기 위해 문을 닫기보다는, 우리를 튼튼히 할 방법부터 찾아야 한다. 토종자본만 챙기자, 토종자본의 불투명한 지배구조도 눈감아주자는 논리는 우리 실력을 키우는, 좋은 방법이 아니다.
반대로 경쟁해서 승자만 과실을 독차지하는(Winner takes all) 시장논리도 전부는 아니다. 그랬다간 시장만 키우고 우리 플레이어들을 죽여놓을 수 있다.
최근 윤증현 금감위원장, 박승 한은총재가 출총제, 금융-산업자본 분리 문제를 재검토하자고 한 제안에 주목한다.
이런 제도들이 도입됐을때와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그때는 시장의 황폐한 논리를 가르쳐줄 요량이었고, 부도덕한 재벌의 비대화를 막을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로 인한 이익보다, 손실이 더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 자본의 역차별이 있다면 바로잡아야 하고, 우리의 가용 자원을 극대화할 수 있다면, 이를 통해 경쟁력을 키워놓아야 한다. 이를 위한 논의는 최소한 학계차원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시장을 열어 그들을 알되, 우리를 튼튼히 할 방법도 병행하자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