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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개발 나선 빅테크下] 2조9000억 vs 160억…韓 AI신약, 알고리즘 아닌 ‘체력’에서 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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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권 기자I 2026.09.24 14: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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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2026년09월23일 08시05분에 팜이데일리 프리미엄 콘텐츠로 선공개 되었습니다.


[이데일리 김승권 기자] 구글 딥마인드에서 분사한 아이소모픽랩스가 지난 5월 단일 라운드로 조달한 자금은 약 2조9000억원이다. 같은 기간 국내 대표 인공지능(AI) 신약개발 기업의 시리즈B 규모는 160억원 수준이었다. 단순 비교로 약 180배 차이다. 이 숫자가 한국 AI 신약개발 산업의 현주소를 압축한다. 기술이 아니라 '체력'에서 갈렸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글로벌 인공지능(AI) 신약개발 경쟁이 알고리즘 성능 대결을 넘어 ‘임상 실행력’ 경쟁으로 옮겨가는 추세다. 이렇게 되면 결국 자본 경쟁에서 국내 기업이 밀릴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팜이데일리는 빅테크가 본격적으로 나선 AI신약개발 임상 진입 상황에서 국내 기업의 생존 전략을 분석해봤다.

단백질 결합 구조 등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는 K-폴더로 신약개발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기대된다. (사진=KAIST)
단백질 결합 구조 등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는 K-폴더로 신약개발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기대된다. (사진=KAIST)




2조9000억의 체력전…임상·데이터가 AI 가른다



아이소모픽랩스의 전략은 AI 플랫폼을 외부에 제공하는 것을 넘어, 후보물질 발굴부터 임상 진입까지 직접 연결하는 수직통합형 모델이다. 일라이 릴리·노바티스와 저분자 신약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올해 1월에는 존슨앤드존슨(J&J)과 저분자·항체·펩타이드·분자접착제를 포괄하는 협력을 시작했다. AI가 설계한 분자의 실험·개발 결과를 다시 모델에 반영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계산이다.

국내 AI 신약개발사의 일반적 경로는 다르다. 플랫폼을 활용해 후보물질을 도출하고 전임상 또는 임상 1상에서 가능성을 보인 뒤, 글로벌 제약사에 기술이전해 후속 개발 위험과 비용을 분담하는 방식이다. 자본 효율성 측면에서는 합리적 선택이다. 그러나 기술이전 이후 후기 임상에서 나오는 효능·독성·환자 반응 데이터를 충분히 축적하고 모델 학습으로 되돌리지 못한다면, AI 플랫폼의 장기 경쟁력은 제한될 수 있다.

국내 업계가 주목하는 또 다른 격차는 데이터다. 표준희 AI신약연구원장은 최근 인터뷰에서 국내 제약사와 AI 신약개발 기업이 꼽은 핵심 애로로 숙련 인력 부족, 데이터 부족 및 품질 문제를 제시했다. 신약개발 데이터는 각 제약사에 핵심 자산인 데다, 임상·독성·약물 반응 데이터일수록 외부 공개가 제한된다.

반면 글로벌 빅파마는 AI 엔지니어와 데이터 과학자를 대규모로 확보하고 있다. 표 원장은 빅파마 파이프라인에서 AI 활용이 보편화하고 있으며, AI가 특정 실험 단계를 단축하는 수준을 넘어 가설 설정, 실험 설계, 결과 분석을 잇는 연구 인프라로 자리잡고 있다고 진단했다.

해법은 데이터를 무조건 한곳에 모으는 것이 아니라, 병원·제약사·AI 기업이 명확한 연구 목표를 두고 연결되는 ‘데이터 파트너십’이다. 정부도 약 371억원 규모의 ‘K-AI 신약개발 전임상·임상 모델개발사업’을 통해 비임상과 임상 데이터를 연계하고, 이를 활용한 파운데이션 모델과 AI 응용기술 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민간에서도 닫힌 루프 구축이 시작됐다. LG화학은 영국 랩지니어스 테라퓨틱스와 다중항체 항암 후보물질 발굴을 위한 공동연구·라이선스 옵션 계약을 체결했다. AI가 항체 후보를 설계하고 로봇 기반 실험으로 검증한 뒤, 그 결과를 다시 머신러닝에 반영하는 방식이다. LG화학은 항체 후보 발굴에 통상 5년 이상 걸리는 기간을 절반 수준으로 줄이고 전임상 진입을 앞당기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김우연 히츠 대표 겸 KAIST 화학과 교수는 “구글 딥마인드 알파폴드3를 그대로 따라 만들어서는 승산이 없다”며 “이미 미국과 중국에서도 재현 모델이 나온 만큼 아이디어와 기술력으로 차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바이오 AI는 신약개발을 포함한 다양한 바이오 연구와 산업에 쓰일 수 있어 독자 기술을 확보하면 경제적 가치가 크다”고 말했다.

국내 AI 신약개발 주요 사례 (자료=각사, 팜이데일리 재구성)
국내 AI 신약개발 주요 사례 (자료=각사, 팜이데일리 재구성)




파로스 임상·K-Fold 속도…‘다른 방식’으로 좁힌다



국내 AI 신약개발의 성과는 임상과 플랫폼 양쪽에서 나오고 있다. 가장 앞선 임상 사례 중 하나는 파로스아이바이오(388870)다. 회사는 AI 신약개발 플랫폼 ‘케미버스(Chemiverse)’로 발굴한 급성골수성백혈병(AML) 치료제 후보물질 ‘PHI-101(라스모티닙)’의 글로벌 임상 1상 최종 임상시험결과보고서(CSR)를 확보했다.

PHI-101은 재발·불응성 AML 환자를 대상으로 한국과 호주에서 임상 1상을 진행했다. 회사가 공개한 임상 결과에 따르면 평가 가능한 환자에서 종합완전관해(CR·CRi·MLFS) 비율은 50%, 객관적 반응률(ORR)은 67%였다. 초기 임상 데이터인 만큼 대규모 후속 임상을 통한 확인이 필요하지만, 국내 AI 플랫폼이 도출한 후보물질이 사람 대상 임상 결과를 확보했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

후속 후보물질 ‘PHI-501’도 임상 단계에 진입했다. PHI-501은 BRAF·KRAS·NRAS 변이를 가진 진행성 고형암을 대상으로 하는 pan-RAF·DDR1 이중저해제다. 파로스아이바이오는 올해 1월 세브란스병원, 삼성서울병원, 칠곡경북대병원에서 국내 임상 1상 첫 환자 등록과 투약을 시작했다. 이번 임상은 용량증량과 용량최적화 단계로 구성되며, 안전성·내약성·약동학·초기 항암 활성을 평가한다. 종료 목표 시점은 2028년 11월이다.

갤럭스는 임상 단계보다는 AI 기반 단백질 치료제 설계와 빅파마 협력에서 존재감을 높이고 있다. 갤럭스는 물리 기반 계산과 AI를 결합한 ‘GaluxDesign’ 플랫폼으로 신규 단백질을 처음부터 설계하는 드노보(de novo) 접근법을 내세운다. 올해 베링거인겔하임과 AI 단백질 설계 기술을 활용한 공동연구 계약을 체결했고, 아스트라제네카와도 신약개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다만 갤럭스의 자체 파이프라인은 아직 전임상 단계다. 회사는 미국암연구학회(AACR) 2026에서 AI로 설계한 이중항체 면역항암제의 전임상 결과를 공개한 바 있다.

KAIST와 히츠의 K-Fold는 ‘속도와 구조 변화 예측’으로 글로벌 모델과 차별화를 시도했다. K-Fold는 단백질의 3차원 구조뿐 아니라 단백질-단백질, 단백질-약물, DNA·RNA 간 복합체 구조를 예측한다. 기존 모델이 구조 계산 전 유사 단백질 서열을 대규모로 찾는 다중서열정렬(MSA)에 의존하는 것과 달리, K-Fold는 이를 사전학습 방식으로 대체해 구조 예측 속도를 최대 25배 높였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히츠는 AI가 신약개발에 가져올 가장 큰 변화로 '발견(discovery)에서 설계(design)로의 전환'을 꼽았다. 알려진 물질 중 유망한 후보를 찾아 반복 실험으로 최적화하던 방식에서, 원하는 조건을 갖춘 새 후보를 처음부터 설계하는 방향으로 연구가 확장되고 있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기존 모델이 최종 구조를 맞히는 데 집중했다면 우리는 단순한 구조 예측을 넘어 구조 변화를 예측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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