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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아의 IT세상읽기] '동의 없는 통화녹음 금지법' 신중해야

김현아 기자I 2022.08.28 18:21:35

아이폰에는 없는 기능…목소리 톤까지 공개돼 억울할 수도
현행 민사상 손배 제도로 인격권 침해 최소화 가능
막말 줄어드는 순기능도…금지 시 사회적 약자 고발 위축

[이데일리 김현아 기자]
사진=이미지투데이


통화할 때 상대방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고 녹음하는 일을 금지해야 할까요. 최근 윤상현 의원(국민의힘)이 참여자 모두의 동의 없이 대화를 녹음하면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는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하자 시끌시끌합니다. 상대방 동의 없이 통화를 녹음하거나, 만남 시 현장에서 몰래 녹음하는 경우 등이 처벌대상이지요.

아이폰에는 없는 기능…목소리 톤까지 공개돼 억울할 수도

법이 국회 문턱을 넘으면 삼성 갤럭시 스마트폰의 통화 녹음 기능은 사라지고, 스위치나 T전화 같은 자동녹음 앱도 없어지거나 기능이 바뀔 것 같습니다.

아이폰은 통화 녹음 기능이 없습니다. 아이폰을 만드는 애플은 미국 캘리포니아에 본사를 두고 있는데,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미국의 13개 주(州)는 상대방 동의 없는 녹음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아이폰을 이용하는 기자들은 별도의 앱을 깔아 녹음 기능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윤 의원은 ①동의가 없는 녹음은 사생활의 자유나 통신 비밀의 자유를 침해하고 ②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의 일부인 음성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지인과 편하게 나눈 말이나 격한 감정 상태에서 나눈 대화가 세월이 흘러 목소리 톤까지 그대로 공개되면 곤혹스러울 것 같습니다. 특히 정치권에서 녹취록이나 메신저 대화방 노출로 불편했던 경우가 많았던 것도 사실이죠. 당장 지난 대선에선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부인 김건희 씨가 유튜브 채널 ‘서울의 소리’와 나눈 대화 내용이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형수 욕설 녹취 파일이 이슈였습니다.

현행 민사상 손배 제도로 인격권 침해 최소화 가능

그런데, 시민단체나 네티즌들은 이 법안에 반대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동의 없는 통화녹음’으로 불편해지는 사람이 있다는 알겠는데, 아예 금지하면 사회 고발이나 언론 활동이 위축될 것이란 얘깁니다. 현행법으로도 녹취록에 대한 가처분 신청이나 민사상 손해배상 제도를 활용할 수 있으니, 아예 금지하는 건 과도하다는 의견입니다. 실제로 이재명 후보와 형수 사이의 녹취록은 2012년 8월, 수원지방법원이 ‘사생활에 관한 사적 대화 공개 금지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여, 위반 시 1회당 50만 원을 지급하라고 결정하기도 했습니다.

‘동의 없는 통화녹음’을 금지하자는 쪽은 사생활 침해 우려를, 그렇지 않은 쪽은 금지 시 막말 같은 갑질이 많아지고 약자가 진실을 증명하기 어려워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습니다.



막말 줄어드는 순기능도…금지 시 사회적 약자 고발 위축

개인적 경험을 보자면, 통화를 자동으로 녹음해주고 인공지능(AI)으로 텍스트로 풀어주기까지 하니, 대화할 때 좀 더 주의하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동의 없는 통화녹음’이 가져온 순기능이라고 할 수 있죠. 무책임하게 내뱉지 않고 최대한 책임감을 가지려 노력합니다.

아직 기사를 쓸 때 지인과의 과거 녹취록을 공개해서 그와 불편해진 적은 없지만, 가끔 받는 제보 메일의 상당수는 녹취 파일을 첨부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대방 동의 없이는 녹음을 못 하게 하면 언론에 억울함을 호소하는 제보자는 줄어들 것 같습니다. 고발하는 사람 입장에선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장치 중 하나가 사라지는 셈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사)오픈넷은 “갑질, 언어폭력, 협박, 성희롱 등에 노출된 사회적 약자에게 통화나 현장 녹음은 강자의 부당한 행위에 대항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무기”라면서 “이 법안은 약자의 무기는 빼앗고, 강자의 자유는 더욱 보호하는 부정의한 결과를 낳을 위험이 높다”고 지적했습니다.

해당 법안은 음성 콘텐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대화의 형식에는 음성 외에 문자도 있고, 영상 통화도 있습니다.음성권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메신저로 대화하는 문자권은 내버려두어도 괜찮은 걸까요?

음성이 문자보다 그 자체로 개인 식별이 쉽다고 해도, 메신저로 나눈 문자 역시 당시의 상황이나 맥락을 살피지 않는다면, 나중에 일부분만 공개돼 해석됐을 때 개인으로선 억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메신저 대화 역시 외부유출 금지법을 만들어야 할까요? 카카오톡 대화방 대화 유출 금지법 같은 것이요.

그런 기준이라면 세상에서 벌어지는 수만 가지 상황마다 이를 해결할 법령이 필요할 겁니다. ‘동의 없는 통화녹음’을 법으로 금지하려면 더 많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해 보입니다. 당장 몇 가지 폐해가 드러났다고 해서 성급하게 추진할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다만, 우리나라에서도 ‘통화 중 녹음’에 대한 공론화가 시작됐다는 점은 환영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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