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준기 기자] 10박12일의 외교 강행군으로 몸이 축난 박근혜 대통령이 예정된 일정을 잇달아 취소하며 ‘숨 고르기’에 돌입했다. 박 대통령이 청와대를 비운 사이 국회 원(院) 구성 협상 파행으로 국회 상황은 꼬일 대로 꼬였고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정세는 급박하게 돌아갈 조짐을 보이는 등 국내외를 망라한 난제가 수북한 만큼 이를 풀기 위한 정국 구상에 몰두할 것으로 관측된다.
청와대 관계자는 6일 통화에서 “(대통령께서) 아프리카 3개국·프랑스 순방 중 링거를 맞을 정도로 건강이 악화한 만큼 당분간 꼭 필요한 일정만 소화한다는 게 원칙”이라며 “불필요한 일정은 취소하거나 연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당장 내일(7일) 예정된 국무회의는 황교안 국무총리에게 바통을 넘겼고, 9일 잡혔던 공공기관 워크숍도 무기한 연기했다. 박 대통령은 애초 공공기관장 워크숍에서 광물자원공사의 업무조정, 석유공사와 가스공사 간 중복업무 통합 등 해외자원개발 사업 개편을 보고받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순방 중간에 윤병우 신임 주치의가 휴식을 권할 정도로 박 대통령의 건강은 악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행사의 중요성을 고려해 참석한 이날 현충일 추념식에서도 박 대통령은 때때로 목소리가 갈리는 등 초췌한 모습이 역력했다.
박 대통령은 당분간 몸을 추스르며 산적한 국내외 현안 대응을 위한 구상에 몰입할 것으로 보인다. 먼저 원 구성 협상 파행을 겪고 있는 국회 상황을 어떻게 풀어갈지가 고민이다. 이미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 등 야 3당은 세월호 특별조사위 활동기간을 연장하는 세월호특별법 개정안을 처리하고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 어버이연합 자금지원 의혹 등에 대한 청문회를 추진키로 하는 등 원 구성 이후에도 박 대통령을 더 옥죌 공산이 크다.
따라서 박 대통령은 거부권 정국으로 깨진 협치(協治) 분위기를 다시 살릴 기회를 엿볼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새누리당이 지난 2일 김희옥 혁신비상대책위원장을 임시 대표로 추대한 만큼 여야 3당 대표와의 회동을 제안할 것이란 관측과 거대 야권과의 소통의 물꼬를 틀기 위한 정무장관직 신설을 발표할 가능성에 주목한다. 그러나 청와대는 “아직 정해진 건 없다”며 말을 아꼈다.
순방 기간 리수용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의 방중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일본 히로시마 방문 등 북한 문제를 둘러싼 한반도 주변 강국들의 움직임도 요동치면서 우리 정부의 외교 행보에 대한 중간점검을 요구받고 있는 모양새를 연출한 점도 풀어야 할 숙제다.
청와대는 이 같은 박 대통령의 부재(不在) 논란에 대해 아프리카에서의 대북압박 외교 성과를 부각하며 맞대응했다. 이날 김규현 외교안보수석은 춘추관 브리핑에서 “미 국무부 관계자는 우간다 방문 결과를 매우 성공적인 방문, 즉 ‘very successful visit’이라고 했고 대북제재를 위한 국제사회 공조 강화 측면에서 볼 때 요웨리 무세베니 대통령의 지지를 이끌어낸 것은 환상적인 결과, 다시 말해 ‘fantastic results’라고 했다”고 소개했다. 이 같은 미 국부무의 평가는 비공식적 외교채널을 통해 전달됐다고 한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통화에서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뭐가 있는가”라고 강조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