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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오후에)한은, 거품을 꺼뜨려라

문주용 기자I 2005.06.24 16:36:48
[edaily 문주용 경제부장] 지난 90년대말 빌 클린턴 행정부 후반기. 신경제 논란속에 IT 주가는 연일 급등하고 있었다. 뉴욕증권거래소와 나스닥에서는 인터넷株가 전통 기업주를 누르고 있었고 신출내기들이 기업공개로 벼락부자로 등장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단기 급등은 항상 거품을 일으킨다. 10년여전 블랙먼데이를 경험했던 뉴욕증시는 하루는 급등에 환호하고 그 다음날은 거품붕괴를 우려했다. 당시 앨런 그린스펀 FRB의장의 분투는 눈물겨웠다. 중앙은행의 힘으로도 주식시장의 급등을 막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는 주식시장의 거품을 기회가 있을때마다 경고했다. 실제로 수시로 구두개입하고, 수차례 금리인상을 단행하면서 주식시장의 거품을 제거하려했다. 그의 노력이 다 성공했다고 평가할 순 없다. 투자자들은 그를 비난했지만, 중앙은행의 새로운 역할을 이끌었다는 점에선 강한 인상을 남긴게 사실이다. 당시 영국의 경제잡지 `이코노미스트`는 이같은 선진국가들(특히 G7)의 중앙은행 역할에 대해 주목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중앙은행의 전통적인 역할이 인플레를 막는 일, 즉 통화가치를 안정시키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주식시장에 엄청난 부동자금이 몰리고, `인플레없는 경제성장`이라는 `신경제(?)`가 열리자 선진국의 중앙은행들은 인플레가 아니라 자산, 특히 주식 자산의 거품을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린스펀 등 선진국 중앙은행 총재들은 자산 시장의 거품붕괴가 경제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사전예방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며, 새롭게 변화한 중앙은행 역할을 분석했던 것이다. 우리나라는 최근 부동산가격 안정대책을 놓고 갖가지 아이디어가 속출하고 있다. 수요를 억제하거나 공급을 늘리는 수요공급정책은 물론, 대출금리를 차별화하거나 주택담보비율(LTV)를 조정하는 금융정책, 투기혐의자들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세무조사를 벌이는 과세정책 등등. 그렇지만 금리를 조정하는 통화정책은 `아예 쓸수 없는 정책`인양 정부는 중앙은행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 이런 태도는 첫째 이유가 중앙은행이 부동산가격을 잡으러 나서는게 맞느냐는 부정적 시각 때문일 수도 있다. 또다른 이유는 금리인상으로 경기회복 신호마저 잠재워버리는, 경제 전체를 잡는 일이 생길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관치주의자로 알려진 김석동 재경부 차관보는 임명되자마자 "부동산 문제때문에 금리를 인상할 수 있다는 얘기는 처음 듣는다"며 "아직 부동산 때문에 금리인상을 논의할 때는 아니다"고 말했다. 경제부총리도 여기저기를 다니며 "금리가 부동산가격에 영향 주려면 상승폭이 상당히 커야 하는데 이 경우 기업과 가계에 상당히 부담이 간다"며 "금리는 현재의 저금리가 유지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금통위가 금리를 손대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투기를 잡는게 중앙은행 할 일이냐`는 지적은 한편으로는 옳아 보인다. 그 일은 당연히 정부가 할 일이다. 하지만 부동산이라는 자산 시장의 거품을 그대로 둘 것이냐는 측면에서 본다면 중앙은행은 새로운 역할을 요구받고 있는 셈이다. 자산시장의 거품이 붕괴되면 금융시장 안정을 해치고, 금융위기를 일으킨다. 그것을 방지하는 것도 중앙은행의 임무다. 거품이 있느냐 없느냐를 놓고 논란이 일지만 어느 나라의 경우에도 거품이 붕괴되기 전에 거품의 존재를 알아챈 적이 없었다. 거품은 항상 터지고 나서야 그게 거품이었음을 알게된다. 20평도 안되는 강남 재건축아파트의 시세가 6억~7억원이 넘어가는 상황은 필시 거품이다. 수요와 공급의 언밸런스 때문이라 하더라도 거품은 커져가고 있고 강남이 아닌 지역으로도 급속 확산되고 있다. 중앙은행이라면 마땅히 자산시장의 거품 제거에 나서야 한다. 부동산가격을 안정시키고, 투기를 잡는 일이 아니라-그게 그것이라 하더라도-명분으로 보면 자산시장의 거품을 제거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김석동 차관보의 논리는 충분히 무시되어도 좋다. 물론 경제부처가 중앙은행에 콜금리 인상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하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경기를 살려야할 책임이 자신들에 있고, 한은의 통화정책이 경제부처의 경제운용(재정정책)에 있어 중요한 변수가 되기 때문이다. 요는 경제부처의 요청은 일리가 있는데, 중앙은행으로선 이를 꼭 받아들여야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중앙은행은 경기 부양이라는 정부의 노력을 감안, 경기조절을 위한 독립적인 통화정책을 펴나가야 한다. 정부나 집권당의 경제정책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관여하는 것도 옳지 않다. 최근 여당이 마련한 부동산대책 간담회에 중앙은행 관계자가 참석한 것이 해괴망측해 보이는 것도 이런 독립성 훼손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은 우리 경제의 소금 같은 존재이고, 경기 부양에 열을 다하고 있는 경제부처는 설탕같은 존재다. 소금은 짠맛으로 경제가 썩지 않게 해야하고, 설탕은 단맛으로 유혹하는 역할이다. 소금이 설탕의 단맛 걱정까지 하는 것은 주제넘은 짓이다. 그런데도 박승총재가 "부동산을 잡으려고 한은이 나서면 자칫 경제 전체를 더 어렵게 할 우려가 있다"며 "금통위가 매우 우려하고 있고 한은도 인내하고 있다"면서 정부에게 기회를 주며 시간끌기를 하고 있다. 한은은 금리인상으로 인한 경기하강 우려가 부동산시장의 불안정보다 더 심각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지금 저금리가 경제회복에 얼마만큼 도움이 되고 있는지를 신중하게 살펴봐야한다. 유동성 함정에 빠졌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는 마당인데, 저금리가 기업투자나 내수확대에 뚜렷한 역할을 하지 않아 보인다. 때문에 자산시장의 거품을 제거하고, 저금리로 인한 유동성 함정에 벗어나기 위해서는 경기하강 우려가 크지 않을 때에 금리를 올려놓을 필요가 있다. 일각에선 현재 우리경제구조로는 금리를 올려야 수출이 늘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문제는 방법이다. 통화정책을 편다면 지난달에 이어 최근 두번째 이뤄진 구두경고를 더욱 더 강하게 해야 한다. 구두경고를 통해 시장이 금리인상에 대비하고, 대출금리의 변동을 예감할 수 있는 시간 여유를 줘야 한다. 시장은 금리인상을 예감하고 있는데, 굳이 정부와 한은이 1조원씩 들여가며 시장의 흐름을 차단하고 있다. 저금리 정책 비용만 늘리는 꼴이다. 이러다가 갑작스레 금리 인상을 단행하면 시장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다. 이보다는 수시로 구두경고를 해 금리인상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게 한 후 이를 현실화하는 방식을 생각해볼수 있다. 어쨌든 이제 중앙은행은 금리인상을 검토해야하고 입장 변화를 시장에 강하게 전달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자산시장의 거품을 제거하는 것도 중앙은행의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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