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하남 감일동 방문해 주민들과 첫 간담회
주거밀집지역에 ‘50만볼트 변환소 신설’ 쟁점
절차상 하자, 한전 문제 등 전반 재검토 약속
“조만간 주민들 다시 만날 것” 강행론 선긋기
추미애 “증설 반대”, 주민들 “고시 해제해야”
[하남=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전력망 국책사업인 동서울변전소 증설 관련해 전반적인 재검토를 시사했다. 과거 정부에서 하남시 주거밀집지역에 초고압 설비 설치를 추진하면서 절차상 하자나 위법 여부가 있었는지 면밀히 재검토하고 주민 의견을 충분히 고려하기로 한 것이다. 주민들과 조만간 다시 만나기로 해 주민수용성을 고려한 에너지 정책이 추진될지 주목된다.
김성환 기후부 장관은 22일 오후 경기도 하남시 감일동 주민센터를 방문해 감일동 주민 등이 포함된 ‘동서울변전소 증설반대 5자협의체’와 2시간 가량 비공개 간담회를 하면서 이같은 입장을 밝혔다. 정부 차원에서 5자협의체와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동서울변전소 증설 논란이 지난해 여름에 본격적으로 불거진 이후 소관 부처 장관이 감일동 현장을 찾은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참석자들에 따르면 김 장관은 이날 간담회에서 △빠른 시일 내에 주민들과 다시 만나 소통할 것 △동서울변전소 지정고시 관련 절차상 하자 문제, 주민수용성 문제에 대해 살펴볼 것 △주민들이 갈등의 불씨가 된 ‘특별지원금’(보상금) 지급 논의 중단을 촉구했지만 한전이 특별지원금 논의를 계속 진행하는 과정에서 위법하거나 문제가 되는 점이 있었는지를 살펴볼 것 등을 약속했다. 관련해 김 장관은 한전 등으로부터 보고를 다시 받고 사실관계를 확인할 방침이다.
 | |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22일 경기도 하남시 감일동 주민센터에서 주민 등이 포함된 ‘동서울변전소 증설반대 5자협의체’와 2시간 가량 비공개 간담회를 한 뒤 나가고 있다. 주민들은 “지정고시 해제하라”, “증설 반대”라고 외쳤고, 김 장관은 주민들을 살펴본 뒤 취재진 질의응답 없이 엘리베이터로 이동했다. (사진=최훈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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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00명 넘는 주민들이 ‘변전소 OUT’라고 쓰인 풍선을 들거나 ‘동서울 변전소 증설 반대-이전하라’, ‘우리 아이들은 실험용 쥐가 아닙니다’, ‘국내 최초 주거인접 최대 규모 전력증설계획(7GW) 백지화하라’ 등의 문구가 쓰인 팻말을 들고 “지정고시 해제하라”고 외쳤다. (사진=최훈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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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자협의체는 주민들이 결성한 동서울변환소반대태스크포스(TF)를 비롯해 추미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더불어민주당 하남갑 의원), 국민의힘 이용 전 의원(하남갑), 하남시청, 하남시의회로 구성돼 있다. 이날 간담회에는 주민 대표들을 비롯해 추 위원장, 이현재 하남 시장, 이재식 기후부 전력망정책관, 서철수 한국전력(015760) 전력계통부사장 등이 참석했다.
쟁점이 되고 있는 사안은 한전이 추진 중인 ‘동서울변전소 옥내화 및 초고압직류송전(HVDC)변환소 증설’ 사업이다. 이 변환소는 총길이 280km 동해안~수도권 HVDC 송전선로의 2단계 종착지로 이재명정부의 ‘에너지 고속도로’ 국정과제에서 가장 빠른 ‘0단계’ 전력망 국책사업이다. 하남 감일동 주민들은 전국 최초로 주거밀집지역에 초고압 설비인 500kV 변환소를 신설하는 것에 반발하고 있다.
 | | 한 어린이가 동서울 변전소 증설 관련해 ‘내가 안전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인가요?’라고 쓰인 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최훈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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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 위원장은 간담회 직후 이데일리와 만나 “주민들에게 제대로 된 설명 없이 추진해 절차상 문제가 많은 점, 전국 최초로 주거밀집지역에 전자파 우려가 심한 초고압 전력 설비를 설치하는 문제, 과거 개발 독재 밀어붙이기식 강행하는 문제 등을 공유했다”며 “김 장관이 ‘오늘을 기점으로 앞으로 주민들과 소통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고 전했다.
주민측 김상택 감일지구 총연합회장은 “김 장관이 ‘고시 절차에 하자가 있는지 면밀히 살펴보겠다’고 했다”며 “‘초고압직류송전(HVDC) 관련 환경영향평가가 없이 추진돼 주민들이 불안해하는 부분에 대한 절차상 문제, 주민수용성 문제에 대해서도 살펴보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다만 주민들이 요청하고 있는 동서울변전소 증설 관련 △지정고시 해제(철회) △부지 이전 등에 대해서는 이날 결론이 나지 않았다. 김 장관은 이날 주민들이 지정고시 해제, 부지 이전 등에 대해 요구하자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추후 간담회에서 이같은 논의가 이뤄질 전망이다.
 | | 100명 넘는 주민들이 간담회가 열리는 주민센터 밖에서 현수막을 펼치며 증설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다. 광암동은 감일동과 함께 동서울변전소 최근접 주거지다. (사진=최훈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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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정부는 김민석 국무총리 주재로 지난달 2일 제1차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위원회를 열고 전국 99개의 송전선로와 변전소 구축 사업이 국가기간 전력망 설비로 지정했다. 하남시 감일동의 동서울변전소도 이같은 패스트트랙에 지정·포함됐다. 이같은 지정고시는 이달 5일 관보에 게재됐다.
전력망 특별법에 따르면 앞으로는 전력망 구축을 위해 지자체로부터 받아야 하는 인허가는 지자체가 60일 내 허가 여부를 회신하지 않으면 허가한 것으로 간주된다. 이 때문에 주민들은 지정고시대로 추진될 경우 60일 이후인 내년 1월5일 이후 동서울변전소 증설이 강행될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 |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한 엄마가 감일동 거리를 걸어가고 있다. 감일동은 영유아, 청소년, 다자녀, 신혼부부 등이 주로 사는 4만명(1만4000가구) 주거밀접지역이다. (사진=최훈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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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경 동서울전력소 증설반대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은 “김 장관이 ‘초고압 설비인 50만볼트 변환소가 전국 최초로 주거밀집지역인 하남 감일동에 설치된다’는 사실을 이날 처음 인지했다”며 “이런 상황을 인지했고 조만간 다시 주민들과 소통하기로 한 상황에서 지정고시대로 강행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추미애 위원장은 “동서울변전소 증설 사업을 강행할 경우 주민들 반발이 세질 것이고 그에 따른 우려를 충분히 (김 장관에게) 전달했다”며 “지금도 충분히 대안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다음에 다시 만나 소통하면서 증설 반대 논의를 이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