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천승현 기자] 글로벌 제약사들이 성장 둔화를 타개하기 위해 특정 사업부를 경쟁사에 통째로 넘겨주는 적극적인 인수·합병(M&A)을 시도하고 있다. 이에 반해 국내 제약사들은 유사한 사업구조 탓에 M&A 사례가 드물어 대조를 보인다.
29일 외신에 따르면 미국 제약사 머크는 선크림과 알레르기약 등을 보유한 소비자 건강사업부 매각을 위해 독일의 바이엘, 영국의 레킷벤키저와 협상을 진행 중이다. 머크는 지난 2012년 400억달러의 매출을 올린 세계 3위 제약사다.
세계 1위 제약사 노바티스는 지난 22일 6위 업체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과 M&A 형식으로 사업 부문을 교환하기로 합의했다. 노바티스는 GSK의 항암 사업부를 145억달러에 인수하고 백신 사업부를 53억달러에 팔기로 했다. 노바티스의 동물의약품 부문은 일라이릴리가 가져가기로 했다.
세계 2위 제약사 화이자는 7위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의 인수를 타진하고 있다. 양사가 합병하면 연매출 800억달러 규모의 초대형 제약사가 탄생하게 된다. 일본 제약사 다이이찌산쿄는 이달 초 제네릭 전문 업체 란박시를 인도 제약사 선 파마수티컬에 40억달러에 매각키로 결정했다.
다국적 제약사들의 이러한 움직임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다. 걸출한 신약을 배출하지 못해 성장세가 주춤해지자 취약한 분야를 처분하고 핵심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경쟁사들과 적극적으로 손을 잡고 나선 것.
실제 다국적제약사들은 지속적인 M&A를 통해 경쟁력을 강화해왔다.
화이자는 와이어스를 680억달러에 인수하며 바이오의약품 분야를 보강했다. 머크는 쉐링프라우를 411억달러에 인수한 바 있다. 사노피와 아벤티스의 합병으로 출범한 사노피아벤티스는 체코와 멕시코 제네릭 업체를 인수하며 신규 성장동력을 확보했다. 로슈, GSK, 다케다, 릴리, 테바 등 다국적제약사들도 지속적인 M&A를 통해 몸집을 불렸다.
이에 반해 국내 제약업계에서는 좀처럼 M&A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지난해 한독(002390)이 태평양제약을 575억원에 인수한 게 눈에 띄는 굵직한 M&A로 꼽힌다. 양사의 매출을 합쳐도 4000억원 가량에 불과하다. 녹십자(006280)가 일동제약의 지분 29.36%를 보유하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양사의 M&A 가능성은 높지 않은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국내제약사들이 제네릭 분야에 집중하는 특성상 M&A에 따른 시너지가 가능한 조합을 찾는 것이 쉽지 않다고 지적한다. 한독은 태평양제약의 인수를 통해 취약했던 일반의약품과 제네릭 분야를 보강할 수 있었다.
한화케미칼의 경우 드림파마의 매각 방침을 공식화했지만 드림파마가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해 매각이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드림파마는 비만치료제 등 향정신성의약품과 제네릭 제품을 주력으로 한다.
오히려 지난 2012년 알보젠이 근화제약을 인수한 사례와 같이 다국적제약사가 국내 제네릭 업체를 인수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정윤택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제약산업단장은 “국내 제약사는 주력 분야가 유사해 M&A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조합이 많지 않아 주로 바이오업체와의 제휴가 많다”면서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해 해외제약사와의 M&A 가능성은 높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