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변호사-의뢰인 비밀유지권(ACP)의 국회 본회의 통과를 주도한 김정욱 대한변호사협회(변협) 회장은 “대한민국 법치주의의 숙원을 해결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수사 편의보다 헌법적 권리가 우선’이라고 강조한 김 회장은 ACP 통과로 대한민국 법조계 수준이 국제 기준에 견줄만한 수준이라고 그 의미를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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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회장은 최근 이데일리와 인터뷰에서 ACP 도입을 위해 지난해 국회를 70여회 방문하는 등 설득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변협은 2016년 성명서 발표를 시작으로 10여년간 ACP 통과를 위한 전방위적 활동을 펼쳤다.
2019년 권력기관의 비밀유지권 침해 실태를 공론화하고 2025년 입법지원변호사단을 조직해 정책 제안서를 전달하는 등 실질적인 국정과제 반영을 끌어낸 끝에 지난 1월 변호사법 개정이라는 결실을 봤다.
ACP는 변호사가 의뢰인과 나눈 법률 상담 및 의사교환 내용을 공개하지 않을 법적 근거를 제공한다. 개정법은 공포 후 1년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되지만 시행 전 이뤄진 의사교환과 업무 성과물까지 적용 대상에 포함한다.
김 회장은 “수백개의 다국적 기업이 모이는 국제 회의애서 ACP 부재로 인해 국내 로펌이 압수수색 위협에 노출된다는 지적이 나올 때마다 민망함을 감출 수 없었다”며 “사법 후진국의 상징과도 같았던 제도가 정상화된 것은 국회의 바람직한 판단”이라고 평가했다.
제도 도입으로 의뢰인이 안심하고 법률 조력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될 전망이다. 김 회장은 “변호사는 수집된 정보 중 유리한 증거를 선별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의뢰인의 솔직한 고백이 기본 전제”라며 “이제는 사법 서비스를 이용하는 국민이 심리적 안정감을 갖고 모든 내용을 털어놓을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국제적 이슈가 산적한 현시점에서 해외 기업들과의 협업 및 업무 수임이 보다 원활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과거 변호사법은 변호사의 비밀유지 의무만을 규정했을 뿐 수사기관의 강제수사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고 꼬집었다. 변호사 사무실, 법률자문 의견서, 의뢰인과의 이메일·사회관계망서비스(SNS) 대화 내용 모두를 공개해야만 해서다. 실제 2018년 사법농단 관련 김앤장 법률사무소 압수수색을 비롯해 △2019년 가습기 살균제 사건 관련 김앤장 법률사무소 압수수색 △2022년 대장동 사건 관련 법무법인 태평양 압수수색 등이 대표적이다. 이에 법조계에서는 변호사 압수수색이 하나의 수사기법처럼 활용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김 회장은 “수사기관 입장에서 변호사 사무실은 증거가 집결된 보물창고와 같았다”며 “예외적으로 허용되던 압수수색이 반복되면서 하나의 수사기법처럼 변질된 면이 있다”고 꼬집었다.
“수사 편의보다 국민권익 우선”…다음은 ‘디스커버리 제도’
문제는 이러한 관행이 국민의 실질적인 조력권을 침해할 우려가 크다는 점이다. 김 회장은 “기업 등 의뢰인은 위법을 저지르지 않기 위해 사전에 여러 가능성을 검토하고 법적 문제가 없는 길을 선택하기 위해 변호사를 찾는다”며 “이런 사전적 조력까지 압수수색 대상이 돼 위법을 저지르지 않으려고 한 질의가 오히려 범죄의 증거처럼 쓰이는 바람직하지 못한 상황이 생긴다”고 했다.
그러면서 “변호사 대상 압수수색이 가능하다고 해서 범죄의 증거를 더 잘 잡아내는 것이 아니다”라며 “만일 변호사와 의뢰인 간의 의사교환 내용이 보호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우회적·비정상적인 루트를 통해 대안을 마련하는 기형적 사태가 발생할 것”이라 경고했다.
범죄 은폐에 대한 우려에는 수사 편의주의적 시각이라며 선을 그었다. 김 회장은 “단편적인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것보다 기본적인 법 원칙을 준수해 국민의 권익을 보호하는 것이 더 큰 원칙”이라며 “실체적 진실만을 우선한다면 위법 수집 증거조차 모두 용인해야 한다는 위험한 논리로 귀결된다”고 일축했다.
변협은 ACP 도입에 발맞춰 실무 가이드라인 마련 등 제도 안착을 위한 본격적인 행보에 나설 방침이다.
변협은 지난달 23일 ‘ACP 관련 가이드라인 연구 TF’를 구성해 첫 회의를 열었다. 앞으로 이들은 국내 20대 로펌의 연구자료 및 해외 사례를 취합해 ACP의 보호 범위 설정 및 문서 기입 방식 등 구체적인 실무 기준을 정립할 예정이다. 아울러 법무부 및 법원과 함께하는 심포지엄을 개최해 개별 변호사의 법적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사내 변호사를 위한 가이드라인도 별도로 제작해 회원 대상으로 배포할 계획이다.
김 회장은 남은 2년의 임기 동안 디스커버리 제도 입법화에 전력을 다할 방침이다. 이는 소송 당사자들이 서로 보유한 증거와 정보를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하는 증거개시 절차를 의미한다. 현행 소송 체계의 고질적 문제인 ‘증거의 비대칭’은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 추진의 결정적 배경이 됐다.
김 회장은 “개인과 기업의 법정 공방에서 개인은 아무런 자료가 없지만 기업은 핵심 정보를 독점한 채 비공개로 일관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미국이었다면 패소했을 사안도 한국에서는 증거 부족을 이유로 기업이 승소하는 등 ‘무기대등의 원칙’이 무너져 있다”며 사법적 약자와 강자 사이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시급하다고 역설했다.
변협은 ‘사전 증언 녹화 제도’를 시작으로 단계적인 입법 전략을 구사할 계획이다. 정식 재판에 앞서 변호사 입회하에 당사자나 증인을 신문하고, 그 과정을 영상으로 기록해 증거 능력을 부여하는 것이 골자다.
김 회장은 “선진국에서는 소송 전 증거와 증언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과정에서 이미 시시비비를 가려 화해로 마무리되는 사례가 많다”며 “재판으로 이어지더라도 절차가 매우 수월해진다”고 설명했다. 재판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소송 기간을 단축하는 ‘소송 경제’의 실현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구상이다.
■김정욱 대한변호사협회장
△1979년 서울 △성균관대 산업공학과 학·석사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자문위원 △대법원 사법발전위원회 전문위원 △한국법조인협회 초대회장 △국가수사본부 수사심의위원 △서울지방변호사회 부회장 △사법연수원 운영위원 △제96·97대 서울지방변호사회장 △(현)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객원교수 △(현)제53대 대한변호사협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