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리 피오리나 "직원들에게 물어라 답은 거기에 있다"

이진우 기자I 2012.10.22 14:04:37

"CEO가 뭘 알아야 하는지 직원들은 다 안다"

[이데일리 이진우 기자]칼리 피오리나는 여성들에게 꿈을 심어준 인물이다. 언젠가는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다는. 내가 꿈꾸는 길을 걸어간 실제 인물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런 인물이 이전에는 한번도 존재한 적이 없다는 것과 비교할 때 비슷한 꿈을 꾸는 사람들에게는 대단히 큰 차이를 가져온다. 그런 점에서 세계적인 IT기업 휴렛 패커드를 이끌었던 칼리 피오리나는 수많은 여사원, 여성 대리, 여성 과장들에게 동경과 꿈의 대상이다.

그러나 피오리나는 그런 여성들을 절망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희망에 찬 눈동자를 굴리며 ‘여성으로서 당신이 가진 어떤 장점이 그런 훌륭한 결과를 가져오게 했느냐’는 질문을 던지는 여성들에게 칼리 피오리나는 ‘여성들이 가진 특별한 장점이라는 건 없다’고 잘라 말한다. 비즈니스는 요리나 뜨개질이 아니며 남자들과 똑같은 환경에서 경쟁하고 거기서 이겨내는 것일 뿐이라는 게 그녀의 지론이다. 출산에, 육아에, 살림에, 남자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열악한 환경을 여성들은 그냥 떠안고 가야하는 운명이라는 걸까. 그런 질문에도 피오리나는 ‘여성들은 물론 그런 어려움이 있다. 나도 그랬다. 이겨내야 한다’고 가볍게 대꾸하고 만다. 그래서 혹자들은 칼리 피오리나가 ‘성공한 여성’이 아니라 여러 CEO들 가운데 우연히도 여성이었을 뿐인 그런 인물이라고 평가한다. 피오리나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다. 여성은 어떤 장점을 무기로 삼아야 하느냐고.

“여성의 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남성들과 똑같아야 한다는 뜻도 아닙니다.각각의 사람들은 남자든 여자든 각자의 장점이 있습니다. 모든 여성들이 나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모든 남성들이 커뮤니케이션에 미숙한 것도 아닙니다. 여성으로서 내가 가진 능력과 특징을 어떻게 발휘할 지를 고민하지 말고 그냥 내가 가진 장점은 뭘까를 고민해보세요. 거기에 길이 있습니다. 나는 남성도 여성도 아니고 그저 피오리나였을 뿐입니다.”

그녀는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말에 대해 동의하느냐는 질문에도 ‘변화에 저항하고 변화를 주도하는 리더를 싫어하는 것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나타나는 현상일 뿐’이라고 했다. 왜 자꾸 남녀를 구분해서 질문하느냐는 투다.

그러나 직장생활은 혼자 골방에서 하는 것이 아니다. 그녀의 부하들 중 상당수일 것임에 틀림없는 남자 직원들은 “왜 내가 집에서 화분에 물이나 주면 적당해보이는 저런 여자 상사에게 실적을 보고하고 잔소리를 들어야 하지”라는 생각을 했을 수 있다. 그런 직원들을 설득하고 제압하고 감화시키는 게 여성 CEO에게 주어진 독특한 숙제다. 피오리나는 그 숙제를 어떻게 풀어냈을까.

피오리나의 대답이다. “어릴 때 어머니는 집에 손님이 오시면 그 손님에게 다양한 질문을 던지면서 대화를 이끌어가고 그 손님을 즐겁게 해줬었요. 사람들은 자기에게 관심을 갖고 자기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을 좋아하죠. 저는 직원들에게 다양한 질문을 던지면서 직원들과 가까워집니다.”

직원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CEO는 많다. 왜 실적이 오르지 않는지. 왜 자꾸 직원들이 그만두는지, 왜 경쟁사는 저런 전략을 펴는지, 새벽이고 휴일이고 가리지 않고 전화를 해서 질문을 한다는 열혈 CEO들의 이야기를 우리는 자주 들어왔다. 피오리나의 질문은 뭐가 달랐을까.

“직원들에게는 CEO가 알고 싶어하는 질문들을 던지면 안됩니다. 그러면 직원들은 마음을 닫기 시작하죠. 그 직원이 뭘 원하고 있는지 바라는 게 뭔지를 물어봐야 하고요. 그리고 회사의 여러가지 일들 가운데 그 직원이 보기에 CEO인 내가 알아야 할 것 같은 게 뭔지 그걸 물어봐야 합니다. 내가 알고 싶은 게 아니라 내가 알아야 할 것을 묻는 것, 아주 중요한 요령입니다.”

[이데일리 김정욱 기자] 칼리 피오리나 전 HP 대표가 이데일리 제1회 세계여성포럼에서 인터뷰를 갖고 있다.
그녀가 그런 질문들을 던지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녀도 사회생활을 밑바닥에서 시작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첫 직장에서 그녀가 맡은 일은 손님에게 차를 대접하고 문서를 타이핑하는 일이었다. “그 때 내가 보기엔 이렇게 바꾸면 좋을 것 같다 싶은 아이디어들이 아주 많았어요. 직원이 보지 못하는 것을 사장이 보기도 하지만 반대로 사장이 보지 못하는 것을 직원들은 보고 있고 해답도 알고 있는 경우가 많거든요. 저도 직원들에게 그런 류의 질문을 던지면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대답들을 듣게 됩니다. 하지만 사장이 먼저 질문을 던지지 않으면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다가오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직원들은 사장이 물어보기 전에 그런 아이디어를 내는 것을 월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일반적인 직장 여성들은 일과 가정의 균형을 맞추는 일이 참 어렵다고 털어놓는다. 그러나 피오리나의 고민은 약간 달랐다.

“일과 가정의 조화도 물론 어렵죠. 동의합니다. 그러나 더 어려운 것은 여성들은 자신의 삶의 경로와 방향을 선택하는 게 더 어렵습니다. 다양한 삶을 살아온 남자들은 많지만 다양한 삶을 살아온 여성들은 드물기 때문이죠. 그래서 내가 이런 길을 가도 될까 하는 의구심이 끊임없이 여성들을 괴롭힙니다. 저는 그게 제일 힘들었습니다. 나 혼자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요”

솔직한 고백인 것 같다. 그래서일까. 칼리 피오리나가 쓴 자서전의 제목 역시 ‘힘든 선택들(tough choices)’이다. 그러고 보면 가정과 일의 조화 역시 결국은 선택의 문제다. 둘 중 어떤 것에 무게를 실을 것인가 하는. “삶 자체가 선택의 연속이죠. 리더십이라는 것도 쉽게 이야기하면 어떤 선택을 어떻게 적절한 타이밍에 내려주느냐고요. 성공이라는 것도 얼마나 좋은 선택을 했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인생이란 최선의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을 내가 만족시키고 그 선택이 나를 만족시키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늘 똑부러지는 대답을 하는 그녀. 혹시 그녀의 마음 속에 돌덩이처럼 남아있는 감추고 싶은 뭔가는 혹시 없을까. 살아오면서 가장 후회스러운 일이 뭐냐는 질문에 그녀는 두 가지 일을 꺼냈다. 딸을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낸 그녀는 딸과 마지막으로 깊은 대화를 나누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후회스럽다고 했다. 그리고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하지 못한 것을 후회스럽다고 했다. 숨을 거두기 전에 간신히 집으로 도착하긴 했지만 어머니는 이미 의식이 없었다. 조금 빨리 왔으면 좋았을 것을.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그녀는 암스테르담에 출장중이었다.

“실수를 많이 하는 것은 괜찮습니다. 자주 할 수록 좋습니다. 거기서 뭔가 배우기만 한다면, 그리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만 않는다면. 그러나 후회할 일은 가능한 줄이는 게 좋습니다” 맞는 말이다. 문제는 어떻게 해야 후회를 줄일 수 있느냐다. 딸이 사고로 갑자기 죽을 수도 있고 어머니가 위독할 수도 있으니 가능하면 집에 머무르고 먼 출장은 떠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인가. 미리 준비한 답을 내놓듯이 거침없던 그녀는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서는 꽤 뜸을 들였다.

“선택을 할 때 많은 사람들은 남의 기대에 맞춰서 선택하는 경향이 있지요. 내가 선택한 것이지만 나의 선택이 아닌 거죠. 그러면 후회가 많아집니다. 제가 생각하는 성공적인 인생은 내가 가진 능력을 최대한 활용해서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것. 그래서 죽기 전에 나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발휘했고 내가 경험할 수 있는 것을 대부분 했다고 느끼는 게 성공적인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고 말한 것을 봐서 몸이 아픈 어머니를 남겨두고 암스테르담 출장을 떠난 것도 아마 그녀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다만 그녀 자신이 아닌 남의 기준에 맞춘 선택이었다는 뜻일 것이다.

피오리나는 앞으로 여성들이 더 많은 기회를 갖게 될 것이라고 했다. “시장이 넓어지고 통합될수록 제품과 서비스의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고 그렇게 될수록 여성들에게는 더 많은 기회가 열릴겁니다. 한걸음 더 진보된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반영되지 않았던 여성들의 시각을 반영해야 할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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