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속 弱달러)②`국제 애물단지` 전락한 달러

김윤경 기자I 2008.02.29 14:09:09

달러 추락으로 중앙은행 고민 깊어져
국부펀드 공격적 투자 나서
"패권 쉽게 이전 안돼..위안화, 대체하려면 30~40년 걸려" 의견도

[이데일리 김윤경기자] "미국 달러엔 심각한 흠집이 났다. 달러 시대의 종료가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미국 달러화 가치 하락은 오래 갈 것이다" "달러는 곧 가치가 없어질 것이다"

상품 투자의 귀재 짐 로저스, 그리고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자문 역할을 해 온 케네스 프로트 하버드대학 경영대학원 교수, 그리고 워렌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의 진단이다.  

달러 추락을 예견한 사람은 비단 이들 뿐만은 아니다. 달러의 경쟁력에 대한 의심은 꽤 오랫동안 제기됐고, 그러는 동안 달러 가치는 바닥으로 내동댕이쳐 졌다.
 
서브프라임 위기로 인한 경기후퇴(recession) 가능성, 이에따라 계속되고 있는 FRB의 금리인하 조치, 그런데도 여전한 미국의 무역적자 모두 달러 가치를 끌어내리고 있다. 

각국 중앙은행이건 개인 투자자들이건 이젠 "달러를 들고 있으면 손해"란 인식 확산되고 있고, 이들이 달러를 팔아치우면서 달러 가치는 더 떨어지고 있다.  
 
유로/달러 환율은 지난 27일(현지시간) 1.50달러를 돌파해(유로 상승, 달러 하락) 사상 최고점을 뚫었고, 28일엔 1.52달러까지 넘어섰다.

◇"달러 들고 있으면 손해"..국부펀드 공격투자 나서

가치가 급속히 떨어지고 있으니 이제 달러는 갖고 있을 수록 손해다. 달러 외환보유고가 막대한 국가들은 당연히 이를 떨어 내거나, 아니면 다른 곳에 투자해 손실을 줄이는 것 밖에는 방도가 없다.   
▲ 외환보유고 구성통화 비중(맨 위 파란 선이 달러비중 추이)


국제통화기금(IMF)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02년 전세계 외환보유고의 72%에 달했던 달러 비중은 지난해 3분기말 현재 64%로 줄었다. 여기서도 달러 이탈을 감지할 수 있다. 
 
이렇게 보자면 전세계 금융 시장의 유력 주자로 자리매김한 국부펀드도 `달러 추락` 국면에서 출현한 존재다.  
 
국제 유가가 치솟으며 오일 달러가 쌓인 중동, 미국과 무역해서 번 돈이 막대한 중국이 대표적이다. 
 
그동안 잠잠했던 일본도 국부펀드 설립을 검토하고 있다. 
 
중국에 이어 세계 2위 외환보유고를 기록하고 있는 일본에선 경기 부양을 위한 적극적인 조치 중 하나로 국부펀드 운용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다만 재무성에선 결과적으로 달러 매도를 통한 엔고를 초래, 수출에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아직까지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지만,
 
◇팍스 달러리움 `균열`..경제패권 이전된다

이처럼 중동, 중국 등의 국부가 전세계 주요 자산을 먹어 치우면서 세계 경제 패권도 자연스럽게 이전될 수 있다.  
 
그래서 미국은 깊은 딜레마에 빠져 있다. 
 
정부 쪽에선 경제 패권을 빼앗겨서는 안된다며 국부펀드 투자에 태클을 걸려 하지만, 민간에선 서브프라임으로 바닥난 자본을 확충하기 위해, 혹은 회생을 위해 적극적으로 국부펀드 자금을 수혈받고 있는 것이다. 관련기사 ☞ (Buy 아메리카)①미국을 공습하는 외국자본
 
국부펀드들은 이렇게 미국을 헐값에 사들이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높은 수익을 낼 것으로 예견되는 이머징 마켓 쪽에 더 눈독을 들이고 있다.
 
이에따라 이머징 마켓 통화가 강세를 보이면서 상대적으로 달러 가치는 더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달러가 더 떨어질 것이란 전망 속에서 브라질 헤알은 1999년 이래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고, 칠레 페소는 9년래 최고치를 나타내고 있다. 인도 루피도 강세다. 인도 주식시장에서 여전히 외국계 자금의 순매수가 상당하고, 이는 루피 가치를 끌어 올리는 데 일조하고 있다.

◇`제국의 달러`, 떨어지지만 쉽게 지지 않는다 

하지만 미국과 달러의 패권이 그렇게 쉽게 침몰하진 않을 것이란 의견도 없지는 않다.   

우선 줄어들고는 있지만 아직도 각국 중앙은행들의 외환보유고 3분의 2 가량은 여전히 달러다. 
 
상당수 국가들은 미국 소비에 매달리고 있다. 무역을 통해 전세계를 먹여 살리는 나라가 아직도 미국인 것이다. 이에따라 쉽게 외환보유고 구성이 뒤바뀌진 않을 것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망했다.  

WSJ은 또 기업들은 통상 사용되는 외화를 사용해 무역을 함으로써 거래 비용을 낮추려 한다는 점도 들었다. 인도네시아, 태국, 파키스탄 수출 송장 80% 이상이 달러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알제리의 경우는 100%에 이른다는 것.
 
다음 달 새로운 국제 팜유 선물 거래를 개시할 예정인 말레이시아 증권 파생상품 거래소는 한동안 결제 통화를 유로로 하려고 고려했지만 결국은 달러로 결정했다.
 
팜유 트레이더들부터 항공업체, 정유업체 등 관련되는 기업들이 모두 달러를 쓰고 있고, 세계 무역의 기준 통화는 여전히 달러라는 이유에서였다.

뱅크 오브 아메리카(BOA)의 조셉 퀸란 수석 스트래티지스트는 "세계 주요 통화로 달러를 대체할 만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단언했다.  
 
모간스탠리 이코노미스트 출신의 앤디 시에는 "아시아에서 거래되는 외환 가운데 달러를 대체할 만한 것은 없다"면서 "결국 아시아에서 위안이 달러를 대체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되려면 최소 30~40년은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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