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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aily 리포트)鄭회장님, 이젠 협력사 氣도 좀···

지영한 기자I 2007.09.07 14:13:53
[이데일리 지영한기자] 현대차그룹이 들 떠 있습니다. 10년만의 무분규 교섭에 성공, 노사관계가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데다, 정몽구 회장이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기 때문이죠. 그런데 현대차 때문에 먹고사는 협력사들은 우울하다고 합니다. 산업부 지영한 기자가 자초지종을 알아봅니다.

세계 최대 자동차 메이커로 부상한 도요타도 내부적으론 고민이 많습니다. 너무 빠르게 성장하다보니 품질저하에 따른 리콜이 급증하고, 사원들은 대기업병으로 위기감 불감증에 빠져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협력사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습니다. 도요타의 임직원들이 고성장의 수혜를 누리며 많은 봉급을 챙기고 있지만, 협력사들은 고생만하지 남는 것이 없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습니다.

일본 나고야시에서 수지제품을 만드는 'A'사. 이 회사는 도요타의 요청으로 설계변경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도요타가 그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 애를 먹었지요. 회사 사장은 너무 화가 난 나머지 독자기술만을 믿고 거래를 끊으려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3개월 후 대금을 지불받고 거래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도요타 납품사인 'B'사의 경우엔 도요타 직원과 상의하지 않고 공정을 조정했다가 크게 혼이 난 케이스입니다. 도요타 직원은 다짜고짜 협력사 사장을 불러 놓고 "멋대로 하면 거래를 끊어 버리겠다"는 호통을 쳤습니다. 이러한 관계에서 보듯 도요타 직원들의 고압적인 자세는 협력사들의 단골 불만 메뉴중 하나입니다. 

일각에선 도요타가 너무 앞만 보고 질주하는 바람에 주변의 협력사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결과라고 분석합니다. 원인이야 어떻든 일본의 부품사들은 도요타 직원들이 거들먹 거리고, 수익마저 도요타가 독식하고 있다는 불만이 커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자동차 부품사들의 사정은 어떨가요? 초일류 기업인 도요타의 현실이 이 정도라면, 국내 완성차 메이커에 납품하는 협력사들의 사정은 어느 정도 미루어 짐작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현대차(005380) 납품사인 'C'사의 경우엔 간부직 사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습니다. 현대차의 1차 협력사이기 때문에 2, 3차 군소 부품업체에 비해 사정은 좋은 편이지만, 차·부장급 간부 직원의 봉급 수준이 현대차의 생산직 사원들보다 낮기 때문입니다.

이 회사 간부직 직원들은 연초만 되면 현대차 간부 직원들의 임금동결 캠페인에 으레 동참합니다. 마른 수건도 다시 짜고 있는 현대차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현대차는 여름 임금협상이 끝나면 노조원이든 비노조원이든 가리지 않고 임금을 올립니다. 결국은 'C'사 처럼 협력사 간부직원들만 손해를 보게 됩니다.

현대차에 인접한 현대차 납품업체인 'D'사 직원들은 언제부터인가 퇴근 때 회사 유니폼을 입지 않고 있습니다. 처우가 좋은 현대차 직원들을 보면 '자격지심'도 생기고, 시쳇말로 "회사가 쪽팔려서"라는 것이 유니폼을 기피하는 이들의 생각이라고 합니다.

특히 올해 현대차의 임금협상 결과를 지켜본 협력사 직원들은 매우 울적하다고 합니다. 아직도 현대차의 1차 협력사 480개사중 40%에 달하는 업체는 임단협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들로선 현대차가 하염없이 부러울 것입니다.

이에 대해 현대차 직원들은 노고에 따른 당연한 보상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현대차보다는 현대중공업이나 르노삼성이 더 많이 받았는데, 왜 현대차만 시비를 거는지 알 수 없다고 볼멘 소리도 냅니다.

하지만 협력사 근로자나 심지어 부품사의 간부직 사원들은 현대차 직원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다고 합니다. 비단 현대차 뿐만 아니라 르노삼성차, 기아차, GM대우, 쌍용차 등 모든 완성차업체들이 부러움과 동경의 대상이죠. 이렇다 보니 협력사 직원들의 사기가 말이 아니라고 합니다.

협력사 경영진도 말 못할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 근래 현대차의 한 협력사의 주인이 바뀌면서 협력사들 사이에선 흉흉한 소문도 퍼지고 있습니다. 현대차 협력사의 한 임원은 "사업하기가 힘들어 M&A(인수합병) 시장에 매물로 나오는 협력사들이 많다는 얘기를 듣고 있다"고 하더군요.

현대차 협력사의 수익성 악화는 수치로도 확인됩니다. 혹시나 해서 기자가 평화정공 한라공조 성우하이텍 화승알앤에이 경창산업, 여기에다 현대차 계열이면서도 납품사인 현대오토넷까지 총 6개사의 매출과 영업이익 추이를 분석했더니 '역시나' 였습니다.

이들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2003년 6.48%, ▲2004년 5.86%, ▲2005년 4.40%, ▲2006년 4.01% 등으로 뚝뚝 떨어졌습니다. 부품사들이 영업을 해 남는 마진이 최근 몇년새 크게 악화된 것이 수치로 나타나고 있죠. 물론 2차, 3차 업체는 더욱 악화됐겠죠.

이유야 간단합니다. 내수시장이 침체를 지속한 가운데 최근 몇년간 원자재가격이 급등해 원가가 크게 상승했습니다. 엔저에 원화강세까지 겹쳐 최종 납품처인 메이커들의 수익성마저 크게 악화되자 부품사들에겐 단가인하(Cost Reduction) 압력까지 가중됐죠.

CR은 일종의 관행이었습니다. 통상 신차 출시시점에선 높은 마진을 보장받고, 이후 매년 2~3% 수준의 CR이 이루어집니다. 작년엔 현대차가 여기에다 2% 포인트의 CR을 추가적으로 요구했다가 논란을 빚기도 했죠.

그래선지 현대차는 'CR'이란 관행을 없앴습니다. 아예 회사내에선 CR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현대차는 그래서 더 이상 현대차에선 CR이 없다고도 강조합니다.

현대차는 그 대신에 협력사가 불필요한 원가와 공정을 찾아내 원가절감을 제안하도록 한 밸류엔지니어링이나, 설계단계부터 협력업체를 참여시켜 원가를 줄이는 게스트엔지니어링 제도를 도입했다고 설명합니다.

그런데도 현대차 협력사들은 힘들어 합니다. 자발적으로 원가절감에 동참하는 밸류에인지니어링과 게스트엔지니어링이 어디 말 처럼 쉽냐고 하소연 합니다. 일각에선 이름만 바뀐 CR이란 불평도 나옵니다. 그러나 눈치를 보고 있기 때문에 말을 못하는 것이 이들의 입장입니다. 

마침 정몽구 회장이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집행유예로 풀려 사업에 전념할 수 있게 됐습니다. 여기에다 10년만에 무분규로 교섭을 타결짓는 전기도 마련했습니다. 이 때문인지 이제는 현대차가 협력사에게도 신경을 써야 한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요즘 일본에선 기름밥을 먹지 않으려는 자식들 때문에 폐업하는 부품사들도 생겨난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에선 사업하기 힘들어 자동차 부품사들이 매물로 줄줄이 나올 것이란 흉흉한 소문이 나오고 있지요.

오는 19일 청와대에선 대·중소기업 상생협력회의가 열립니다. 이 자리엔 집행유예로 행동반경이 커진 정몽구 회장도 참석합니다. 아마도 이를 바라보는 협력사들의 속마음은 "회장님, 우리 기(氣)좀 살려주세요!"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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