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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에 따르면 SEC는 상장기업의 승인이나 참여 없이도 제3자가 특정 기업 주가를 추종하는 디지털 토큰을 발행·거래할 수 있도록 허용할 방침이다. 예를 들어 애플이나 아마존, 엔비디아 주가 움직임을 그대로 따라가는 블록체인 기반 토큰이 발행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들 토큰은 탈중앙화금융(DeFi·디파이) 플랫폼에서 24시간 거래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일반 주식과 달리 의결권이나 배당권 등 기존 주주 권리를 동일하게 보장하지 않을 수 있다.
시장에서는 이를 사실상 ‘가상자산 기반 병행 증시(parallel market)’의 출발점으로 보고 있다. 지금까지 미국 증권시장은 뉴욕증권거래소(NYSE), 나스닥 등 중앙화된 거래 시스템과 엄격한 규제를 기반으로 운영돼 왔지만, 앞으로는 블록체인 기반 플랫폼에서도 유사한 주식 거래가 이뤄질 가능성이 열리게 되는 셈이다.
트럼프 행정부 ‘크립토 친화’ 정책 속도전
이번 조치는 트럼프 행정부의 전방위적인 가상자산 산업 육성 정책과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부터 “미국을 세계 가상자산 수도로 만들겠다”고 공언해왔다. 이후 SEC 수장으로 친(親) 가상자산 성향의 폴 앳킨스를 임명했고, 기존 게리 겐슬러 체제에서 이어졌던 강경 규제 기조를 빠르게 뒤집고 있다.
앳킨스 SEC 위원장은 취임 이후 “규제를 통한 단속(regulation by enforcement)의 시대는 끝났다”며 업계 친화적 접근을 강조해왔다. 이번 혁신 면제 역시 가상자산 기업들이 기존 증권법 위반 위험 없이 새로운 형태의 증권 거래를 실험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성격이 강하다.
특히 최근 미 상원 은행위원회가 디지털자산 시장 구조 법안인 ‘클래리티 법안(Clarity Act)’을 통과시키면서 정책 환경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해당 법안은 가상자산 산업 상당 부분에 대한 감독 권한을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에 넘기고, SEC는 디지털 증권 분야 감독에 집중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월가와 거래소 업계 역시 토큰화 시장 확대에 맞춰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뉴욕증권거래소는 블록체인 기반 토큰화 주식·상장지수펀드(ETF) 거래 플랫폼 구축 작업을 진행 중이다. 나스닥 역시 상장사가 토큰화 주식 구조에 더 많은 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새로운 토큰 설계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암호화폐 거래소 불리시(Bullish)는 최근 42억달러 규모로 주식 명의개서 대행업체 에퀴니티(Equiniti)를 인수했다. 명의개서 기관은 주주 명부 관리와 배당 업무 등을 담당하는 핵심 인프라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전통 금융 인프라와 가상자산 시장의 결합이 본격화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애플 주식 래퍼 수십개 생길 수도”…월가 긴장
하지만 월가에서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현재 미국 증시는 거래소 간 연계 시스템과 가격 공시 체계, 고객확인(KYC), 자금세탁방지(AML) 규정 등을 기반으로 통합 시장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토큰화 주식이 디파이 플랫폼에서 별도로 거래되기 시작하면 동일 자산이 서로 다른 가격 체계 아래 움직이는 ‘시장 분절(fragmentation)’ 현상이 심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디파이 시장은 자동화된 코드 기반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기존 금융시장보다 감독과 통제가 느슨하다. 올해 들어서만 디파이 플랫폼 해킹으로 수억달러 규모 자산이 유출되는 사건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면서 보안 취약성 문제도 부각되고 있다.
증권산업금융시장협회(SIFMA)는 지난해 말 보고서에서 “토큰화 시장에 시장 연계성과 가격 투명성 관련 공통 기준이 부족할 경우 시장이 분절되고 무질서해질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브렛 레드펀 시큐리타이즈 대표는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제3자가 애플이나 아마존 주식을 발행사 참여 없이 토큰화할 수 있다면 하나의 기업을 기반으로 한 수많은 ‘래퍼(wrapper)’ 상품이 동시에 존재하게 될 수 있다”며 “투자자들이 자신이 실제 무엇을 보유하고 있는지조차 혼란스러워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시타델증권 역시 SEC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핵심 시장 안전장치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반발한 것으로 전해졌다. 월가에서는 특히 토큰화 주식 거래가 기존 증권 규제를 우회하는 통로로 악용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SEC 내부서도 이견…“금융시스템 하루아침에 안 바뀐다”
SEC 내부에서도 의견이 엇갈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는 이번 혁신 면제 추진의 중심에 헤스터 피어스 SEC 위원이 있다고 전했다. 피어스 위원은 대표적인 친가상자산 인사로, 업계에서는 ‘크립토 맘(Crypto Mom)’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다만 피어스 위원 역시 최근 공개 발언에서는 속도 조절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는 “토큰화 증권을 기존 금융 시스템에 통합하기 위한 중요한 단계가 될 수 있지만, 금융 시스템 전체를 하루아침에 바꾸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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