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와 캐피탈 같은 여신금융전문회사의 자금조달 루트가 다양해지고 있다. 지난 3~4월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직후 ‘돈맥경화’ 학습효과다. 주로 국내 여신전문금융회사채(여전채)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다 돈줄이 끊길뻔 했으니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신한카드, LG카드 통합 후 첫 해외채 발행
11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신한카드는 이달 말께 3억달러(3500억원) 규모로 해외채권 발행에 나선다. 신한카드가 해외 채권을 찍어내는 건 2007년 LG카드와 통합 이후 무려 13년 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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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디스는 “한국 정부가 규제를 강화할 우려가 있지만, 자산건전성이 양호하고 만약의 경우 모회사인 신한금융이 지원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며 신한카드에 ‘A2’등급을 매긴 이유를 설명했다.
시장에서는 신한카드가 해외에서 채권 발행에 성공할 것이라 내다본다. A2의 등급을 받았고 최근 글로벌시장에서 관심 높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채권을 발행하기 때문이다. ESG채권은 자금을 조달한 후 환경이나 인권, 투명경영 등을 위해 써야 한다. 신한카드는 이번 채권으로 마련한 자금으로 코로나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 지원 등에 쓸 것으로 보인다.
ESG채권시장 발행 여건은 국내보다 해외 시장이 유리하다. 국내에서도 최근 사회적 책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ESG채권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기관투자자들은 많지 않다. 반면 해외에서는 ESG채권만 매입하는 ‘착한 기업펀드’나 일정 비율 이상을 ESG채권에 투자해야 하는 펀드들이 늘고 있다. 미국 최대 패시브펀드 업체인 블랙록은 기후변화와 지속가능성을 올해 투자 포트폴리오 최우선 순위로 삼겠다고 밝혔다. 유럽에서도 스웨덴 공적연기금인 AP2는 2018년부터 운용자산의 30%을 ESG 상품에 투자하도록 하고 있다.
김은기 삼성증권 연구원은 “해외시장에서 흥행에 성공하려면, 특정 투자 수요에 ‘타겟팅’해야한다”면서 “해외에선 ESG채권 매입을 원하는 펀드 수요가 있는 만큼, 안정적 흥행이 가능할 것이다. 사회적 기업이라는 이미지 제고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코로나發 돈맥경화 경험…여전채 의존 70% 카드업계도 변화
사실 국내 채권시장도 안정적으로 움직이는데다 업계 1위인 신한카드 입장에서는 국내 여전채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는데 문제가 없다. 그런데도 신한카드가 ‘해외 채권’ 발행을 선택한 것은 코로나 사태 때 배웠던 교훈 때문이다.
여전업체은 은행과 달리 자체 수신(예금) 기능이 없다. 은행차입이나 여전채, 자산유동화증권(ABS), 단기채권(CP) 등을 통해 자금을 조달한다. 특히 전체 자금 조달의 약 70%를 여전채에 의존한다. 여전채의 경우 경기가 좋을 때는 돈이 잘 상환돼 인기를 끈다. 하지만 경기가 나쁠 때는 외면받는다는 치명적 단점이 있다. 실제 지난 3월 코로나19 확산처럼 불확실성이 커지자 여전채 수요가 급감하며 자금 조달에 애를 먹었다. 당시 자금을 구하지 못한 일부 캐피탈사는 신규 대출을 중단한 곳도 있었다.
신한카드 역시 “자금 조달처가 다양해질수록 만약의 경우에도 유동성을 유지할 수 있어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해진다”라며 ESG 발행 이유를 설명했다.
이미 카드업계도 여전체 의존도를 낮추려고 노력하고 있다. 지난 3월 호된 경험을 바탕으로 만약의 사태에 미리 대비해두려는 취지다. 올해 초 현대캐피탈은 3억규모 스위스프랑 외화채권 발행에 나섰고 KB캐피탈도 이달 무디스에 ‘A3’ 등급을 받고 해외 채권 시장을 두드릴 준비를 하고 있다.
해외 자산유동화증권(ABS)도 인기다. ABS는 대출채권이나 매출채권, 부동산 등 유동성이 낮은 자산을 기초로 증권을 발행하는 것인데, 보통 해외 ABS는 국내에서 채권을 발행하는 것보다 금리가 소폭 낮아 장기자금 마련에 유리한 편이다. 올해만 해도 하나카드, 우리카드, KB국민카드 등이 해외 ABS를 내놓았다.
한 여전업계 관계자는 “해외 자금조달은 이름값이 있고 모회사의 지원이 든든해 신용등급을 잘 받을 수 있는 대형사에 국한된 얘기”라면서도 “업계 1위부터 다양한 시도를 하는 만큼, 전체 여전업계도 서서히 변화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