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윤진섭 기자] 미 신용등급 하락을 계기로 주요 20개국(G20) 움직임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현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선 선진국과 신흥국 사이의 공조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경기 부양 여력을 가진 중국이 멤버로 참여하고 있다는 점 역시 G20 역할론이 부상하는 이유다.
다만 G20 국가 간 공조가 느슨해졌다는 점, 선진국과 신흥국 간 견해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모순, 무엇보다 미국, 유럽, 일본, 중국 등 주요 국가들의 경제 사정이 과거와는 다르다는 점들 때문에 공조의 실효성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의견도 있다.
◇ G20 공조 기대..`美국채 투매 방지` 시급
G20 재무장관과 중앙은행총재들은 지난 8일 공동 성명서를 내고 "금융시장 안정을 지원하고 강한 경제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방안을 강구해 나간다는 약속을 확인한다"고 밝혔다.
이번 성명서는 미국과 일본, 유럽을 비롯해 탄탄한 성장을 이어가고 있는 중국, 브라질, 한국 등 신흥국이 위기에 공동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다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G20가 꺼낼 수 있는 최우선 공조 카드는 미국 국채에 대한 각국의 투매를 방지하는 것이다. 현 시점에서 최악의 시나리오는 최고 안전자산이라던 미국 국채를 각국이 투매해 자금 회수에 나서는 경우다.
미 국채 가격이 급락한다면 이를 많이 보유하고 있는 기관투자가의 자산가치도 급격히 떨어지면서 신용 경색을 촉발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선진시장과 이머징마켓 시장이 급격히 흔들리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최종구 기획재정부 국제업무관리관은 "(G20 성명서는) 일반적 가이드라인에 불과하지만 미국 국채를 파는 것이 어려울 것이라는 정신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는 별도로 중국을 중심으로 한 신흥국들의 역할론 확대도 고려할 수 있다. 우선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유럽 채권을 중국이나 신흥국이 사들여, 글로벌 금융시장을 안정시키는 방안이다.
또 미국이 1~2차 양적 완화에 준하는 대규모 통화량을 공급하고 각국 정부는 새로운 금융규제를 자제하면서 시장의 정상화를 꾀하는 방안도 G20가 논의할 수 있는 카드다.
◇ 2008년과 다른 G20 공조체제 험난
2008년과 달라진 각국의 여건과 입장이 G20 공조의 최대 걸림돌이다. 세계 주요 7개국(G7)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는 지난 8일 국제 금융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유동성을 공급해, 시장의 혼란을 잠재우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위기의 구원투수 역할을 했던 중국은 이렇다 할 조치를 내놓지 않고 있다. 각국은 중국이 2008년 때처럼 경기 부양에 나서 안전판 역할을 해주길 바라고 있다. 하지만 중국도 여력이 없는 상태다. 물가 상승률이 6% 안팎으로 치솟아 오히려 긴축정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으로 중국의 손실액이 2300억 달러에 달하고, 3차 양적 완화를 통해 미국이 다시 돈을 찍어 풀 경우, 중국의 달러화 자산 가치가 더 떨어질 수 있다는 점 역시 중국이 현 사태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유다.
미국, 유럽 역시 G20 공조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상황이 아니다. 미국은 현 위기를 촉발했다는 점에서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하기 어렵고, 유럽도 G20 의장국인 프랑스가 신용등급 강등설이 나올 정도로 흔들리고 있다. 독일도 남유럽 지원을 주저할 정도로 이리저리 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G20가 선진국과 신흥국 간 견해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모순을 안고 있다는 점 역시 부담이다. G20가 환율 문제와 관련해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재정부 관계자는 "G20 국가들의 2008년과 달리 느슨해진 것은 맞다"며 "하지만 현 시점에서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국제공조다. 공조가 늦어지면 그만큼 경제 회복이 더딜 수 밖에 없다는 점을 각국이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