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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C씨는 설레는 마음으로 송금 버튼을 눌렀다. 태국 골프여행 계약금 400만원. 받는 사람은 아내가 태국 여행에서 만났던 가이드 A씨의 아버지 명의 회사 계좌였다.
“아내가 전에 태국 여행 갔을 때 정말 친절하게 안내해줬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번 골프여행도 그 가이드에게 맡기면 좋겠다 싶었죠.”
C씨를 포함한 일행 8명의 2023년 1~2월 태국 골프여행. 1인당 153만원, 총 1224만원짜리 여행이었다. A씨는 “먼저 계약금만 보내달라”며 1인당 50만원씩, 총 400만원을 요구했다. C씨는 흔쾌히 송금했다.
하지만 출발 예정일이 가까워져도 A씨에게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C씨가 다급히 전화를 걸었지만 A씨는 핑계만 늘어놨다. 결국 C씨 일행의 골프여행은 물거품이 됐다.
같은 수법, 다른 피해자들
A씨의 사기는 C씨에게만 국한되지 않았다. 오히려 C씨는 시작에 불과했다.
2023년 3월, 여행사를 운영하던 G씨는 A씨로부터 솔깃한 제안을 받았다. “1인당 104만9000원짜리 OO투어 방콕 패키지를 40만원에 판매하겠다”는 것이었다. 정상가의 40% 수준. G씨는 고객 2명분 대금 80만원을 A씨가 지정한 태국 환전상 계좌로 송금했다.
하지만 여행 상품 바우처는 오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A씨는 하루 뒤 G씨에게 또다시 손을 벌렸다. “집세를 못 내서 집에 못 들어가고 있다. 30만원만 빌려달라. 이틀 뒤 갚겠다.” G씨는 측은한 마음에 30만원을 추가로 보냈다. 당연히 돈은 돌아오지 않았다.
10여년 전부터 이어진 사기 이력
법정에서 밝혀진 A씨의 범죄는 더욱 충격적이었다. 10여년 전 중국 광저우에서도 사기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2013년 1월, 피해자 T씨는 인터넷 카페에 “중국 광저우에서 임차하여 거주 중인 오피스텔의 새 임차인을 구한다. 필요하면 호텔 헬스장 이용권도 양도하겠다”는 글을 올렸다. A씨는 이 글을 보고 T씨에게 연락했다.
A씨는 자신을 ‘명품 병행무역 회사 고위직 직원’이라 소개하며 “지금 돈이 없으니 보증금 140만원은 내가 반환받지 않는 것으로 하고, 첫달 월세 70만원을 대신 내달라. 며칠 뒤 회사에서 체류비가 나오면 환율 높게 쳐서 250만원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피해자는 A씨의 말을 믿었다. 임대인에게 보증금을 돌려받지 않았고, A씨를 위해 월세까지 냈다. 여기에 헬스장 이용권(40만원 상당)과 집 안의 전자레인지까지 A씨에게 넘겼다. 하지만 약속한 돈은 한 푼도 돌아오지 않았다.
더 기가 막힌 건 그 다음이었다. A씨는 피해자가 맡긴 의류 재고 CK 속옷 800장(400만원 상당), 아베크롬비 점퍼 5장(100만원 상당)을 인터넷 중고 카페에 올려 팔아버렸다. 피해자가 한국으로 귀국하는 동안 보관만 부탁했던 물건들이었다.
그리고 A씨는 이 사건으로 수사를 받던 중 해외로 도주했다. 10년 뒤인 2023년, 태국에서 가이드로 일하며 또다시 사기 행각을 벌인 것이다.
“망고 사업한다”며 191만원, “땡처리 여행” 935만원
A씨의 사기 레퍼토리는 다양했다.
2021년에는 과거 자신이 가이드했던 고객에게 “태국에서 망고 사업을 한다”며 망고 구입 대금 191만원을 받아 챙겼다. 망고는 당연히 배송되지 않았다.
2023년 4월에는 다른 고객에게 “땡처리 태국 여행 상품이 있다”며 직장 동료 20명분 여행 경비 명목으로 무려 935만5000원을 11회에 걸쳐 받았다. 항공권도, 숙박 예약도 이뤄지지 않았다.
2022년 12월부터 2023년 1월까지는 또 다른 고객에게 “저렴한 태국 여행”을 미끼로 12회에 걸쳐 527만4000원을 송금받았다.
총 피해자 7명, 피해액은 약 2500만원. A씨는 이 모든 기간 동안 신용불량자 상태였고, 별다른 수입이나 재산이 없었다. 처음부터 여행을 준비할 의사나 능력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法 “징역 10월…동일 수법 반복, 피해 회복 전무”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11단독 염혜수 판사는 지난 8월 26일 A씨에게 징역 10월을 선고했다.
염 판사는 “피고인이 동일한 수법으로 여러 피해자에게 수차례에 걸쳐 돈을 편취했다”며 “피해가 전혀 회복되지 않았고, 피해자들이 처벌을 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2013년 범행으로 수사받던 중 해외로 도주한 점’을 불리한 정상으로 고려했다.
다만 “범행을 모두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고, 피해액이 다액은 아니며, 이전에 형사처벌 받은 전력이 없다”는 점은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했다. A씨는 마약류관리법 위반으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아 지난 4월 확정된 상태였는데, 이번 사기 범죄가 그 범행과 경합범 관계에 있어 형평을 고려했다고 염 판사는 설명했다.
염 판사는 A씨가 피해자 C씨에게 편취금 400만원을 배상하라는 명령도 내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