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출신 행장으로 그가 먼저 칼을 들이댄 곳은 지점과 개인에 대한 평가시스템이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던져주고 그에 맞추지 못하면 인사나 급여에 불이익을 주는 기존 방식으로는 은행의 내실화를 꾀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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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만회하려고 친인척이나 지인 등을 동원해 가입실적 늘리기에 나서는데 이런 방식은 은행의 장기적인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조 행장의 판단이다.
"경영평가시스템에 모든 게 있습니다. 그동안은 일주일이 멀다하고 진행되는 캠페인에 직원들이 매달리다보니 경영평가를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었고, 결과적으로 허수(虛數)가 양산되곤 했습니다. 이런 일이 잦으면 튼튼한 은행이 될 수 없습니다. 제대로된 고객을 유치해야죠."
조 행장은 다른 은행들과 영업경쟁에서 불리할 수 있다는 우려도 일축했다. 그는 "카드 한장 발급비용이 장당 1~2만원이고, 여기에 허수고객을 위한 전산관리비용 등을 감안하면 내실있게 경영하는 게 더 낫다"며 "어느 전략이 맞는지 조만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밟아온 사람의 자신감이 묻어났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30여년간 생각해왔던 일을 하나둘 풀기 시작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조 행장은 가시적 성과나 외형확대에 몰두하던 경향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를 여러차례 피력했다. 그는 특히 현장을 강조했다.
"서울 강남무역센터 지점장 시절 시간날때마다 거래기업을 몇번씩 돌아다녔습니다. 직원들이 인사도 잘하고 회사 분위기도 좋은 기업이 있었는데 어느날 보니까 분위기가 달라요. 직원들 눈빛도 흐려져있고. 담당직원에게 그 기업 잘 봐두라고 했습니다. 6개월뒤 기업 오너가 미국으로 도망갔습니다. 이런 걸 책상에 앉아 재무제표만 보고 알 수 있겠습니까. 부지런해야 합니다. 발로 뛰면서 자주 현장을 보는 게 답입니다."
그는 은행들의 성과도 `발품`에서 판가름날 것이라고 했다. 가령 성장가능성과 부실가능성이 5대 5인 기업이 있다면 그동안 은행들은 이러한 기업에 대출을 꺼렸다. 조 행장은 "살 수 있는 기업과 아닌 기업을 가려내는 능력이야말로 은행들이 해야할 일"이라며 "50년동안 축적한 현장 노하우가 있는 우리야말로 이 역할을 할 수 있는 적임자"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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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장으로 선임된 배경을 물었다. 그가 김용환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과 함께 기업은행장 후보로 거론될 때만 해도 기업은행장 자리는 관(官) 출신인 김 부원장이 가게 될 것이라는 예상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통령(임명권자)께서 정확히 아시겠죠. 다만 기업은행 직원이 1만여명입니다. 행원으로 들어와 행장까지 될 수 있다는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한 것 아니었을까요. 기업은행사(史)에 죄인으로 남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는 어쩌면 `눈덮인 들판을 지날 때 발걸음을 어지럽게 하지 마라(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는 서산대사가 지었다는 선시를 떠올렸는지 모른다. 그의 말과 행동은 의도했든 아니든 후배들에게 전범(典範)이 될 수 밖에 없다. 이를 의식한 듯 스스로도 "어깨가 무겁다"고 했다.
조 행장은 아침마다 108배를 올린다고 한다. 주위 얘기를 들어보면 벌써 700일째가 넘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인터뷰를 시작할 때 조 행장은 뜬금없이 구제역 얘기를 꺼냈다. "생매장이라니 너무 잔인하지 않습니까. 얼마나 마음이 아프던지…." 다른 은행장들과 점심을 함께하는 자리에서 구제역으로 소나 돼지 등 가축이 산채로 땅에 묻히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금융업과 동떨어진 내용이라 나중에는 화제를 바꿨지만 "(소는) 농민들에게 자식 이상인데…"라며 나직이 말하는 모습에서 그의 마음 한켠이 엿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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