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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aily리포트)우승,그거 얼마면 돼?

공동락 기자I 2002.07.22 14:29:41
[뉴욕=edaily 공동락특파원] 사람들이 스포츠에 열광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스포츠가 가지는 불확실성 때문일 것입니다. 공정한 룰을 통해서도 약자가 강자를 꺾고,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에서 엄청난 플레이가 나올때 그 감동은 말할 수 없는 기쁨입니다. 그러나 최근 프로스포츠는 점점 그 불확실성이라는 가치를 확실성으로 바꿔가며 팬들의 흥미를 반감시키고 있습니다. 국제팀의 공동락 기자가 이 아쉬운 현실을 메이저리그의 사례를 통해 살펴봤습니다. 지난 주말 뉴욕에서는 뉴욕양키즈와 보스턴레드삭스의 주말 3연전이라는 대형 스포츠 이벤트가 열렸습니다. 비록 정규시즌 경기였지만 현재 두 팀의 성적이 최상위권을 달리고 있고 거의 1세기 가까이 둘도 없는 라이벌 관계라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여느 보통 경기와는 의미가 사뭇 다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뜨거운 여름 한복판에 근소한 게임차로 앞서거니 뒷서거니를 거듭하며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1위 경쟁을 벌이고 있는 팀들의 경기는 그 자체만으로도 야구팬들의 가슴을 설레이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좀처럼 야구 경기를 중계하지 않는 공중파 방송국에서도 중계를 했고 역시 여간해서는 야구 중계를 하지 않는 라디오 채널도 가세했을 정도니까요. 일명 "아메리칸리그 예비 챔피언 시리즈"로 불리는 이번 3연전에 대한 팬들의 관심도 대단했습니다. 입장권은 약 1개월 전부터 일찌감치 매진됐고 뒤늦게 티겟을 구하러 나선 저는 예매처 직원이 "이제와서 표를 구하면 어쩌냐"는 듯한 동정 어린(?) 시선을 마주쳐야 했습니다. 3연전이 열린 첫날부터 소나기로 경기시작이 무려 2시간이나 늦춰졌지만 양키즈구장은 만원을 이뤘습니다.토요일과 일요일 역시 매진된 입장권의 위력을 실감케 하듯 정원이 6만명 가까이 이르는 경기장은 빼곡히 들어차 입추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같은 주말, 캐나다의 토론토에서도 야구 경기가 열렸습니다. 홈팀인 토론토블루제이스와 원정팀인 템파베이데블레이스의 게임이었죠. 양키즈-레드삭스와는 같은 지구에 속한 이 두팀 역시 순위 경쟁이 무척 치열합니다. 다만 앞에 언급한 두팀이 지구 1위를 두고 숨막히는 순위 다툼을 벌이데 반해 이 두팀은 꼴찌자리를 서로 피하기 위해 치열한 다툼을 벌인다는 사실 만이 다를 뿐이죠. 그러나 치열한(?) 경기 내용과는 팬들의 반응은 너무나도 달랐습니다. 첫날 공식집계된 입장객 7000여명. 나머지 2경기는 2만명이 조금 넘는 수준에 그쳤습니다. 주말인 점을 감안해도 아주 적은 숫자였죠. 정원 5만명, 1989년 준공 당시 세계 최고의 실내 돔구장으로 유명했던 스카이돔(경기장 이름)의 명성이 무색할 정도였죠. 아마도 셈이 빠른신 분들은 이미 제가 쓴 숫자들을 다시 한번 살펴보셨을 수도 있겠지만 두 경기의 입장객수를 비교할 경우 적게는 3배에서 많게는 8배의 입장객 수의 차이가 납니다.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모든 메이저리그 경기가 항상 관객이 가득찬 경기장에서 이뤄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분들은 성적이 좋은 팀과 좋지 않은 팀 간의 팬들의 반응은 어쩌보면 당연하지 않느냐고 반문하실수도 있겠죠. 또 스포츠라는게 잘 할때도 못할때도 있는데 그걸 가지고 너무 민감하게 생각하는게 아니냐고 말씀하실 수도 있을겁니다. 저 역시 그야말로 승패는 "병가지상사"라는 말에 동의하며 단순히 관객 숫자나 팀의 성적을 가지고 더 이상 말씀드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이 팀들의 성적을 조금 자세히 살펴보면 단순히 좋았다가 나빠지고 나빴다가 좋아지는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에 심각성이 있더군요. 즉 팀간의 성적과 서열이 점점 더 고착화되어 잘하는 팀은 계속 잘하고 못하는 팀은 계속 못 한다는 것입니다. 뉴욕양키즈는 올해가 100번째 시즌으로 그동안 26차례나 월드시리즈를 제패했습니다. 우리 나라로 치면 과거 해태타이거즈에 비유될 수 있는 팀이겠죠. 특히 90년대 말에는 월드시리즈를 3연패하고 지난해에는 김병현 선수가 속한 애리조나다이아몬드백스에게 7차전까지 가는 명승부 끝에 아깝게 준우승에 머문 팀이기도 합니다. 90년대의 팀이라고 불리는 애틀랜타브레이브스도 비슷한 사례에 포함될 수 있는 팀일겁니다. 작년까지 무려 지구 우승을 10연패한 강팀중에 강팀이죠. 비록 월드시리즈와는 별로 인연이 없어 지난 95년에 클리블랜드인디언스를 누르고 38년만에 우승을 차지하긴 했지만 자타가 공인하는 내셔널리그 최강팀입니다. 소위 말해 잘나가는 두팀에게는 그러나 항상 쏟아지는 비난이 있습니다. 잘하는 선수들을 모두 싹쓸이한다는 거죠. 잘나가는 최고의 선수를 데려왔으니 잘하는게 당연한게 아니냐는 비야냥 거림과 함께 돈으로 승리를 사려고 한다는 조금 과격한 발언까지 이 두팀은 항상 메이저리그 구단의 "빈익빈부익부" 문제를 거론할 때 비난의 타켓이 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이같은 비난은 올해도 어김없이 계속 됐습니다. 애틀란타의 경우 올시즌 자유계약선수 중에 최대어로 꼽히는 선수중에 하나인 게리 셰필드를 LA다저스에서 영입, 브레이브스 왕조의 막강함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줬구요. 양키즈는 한술 더 떠서 겨울에 오클랜드 애슬릭스의 간판스타 제이슨 지암비를 영입하고 올스타 경기를 전후해선 외야수 라울 몬데시와 디트로이트의 촉망받는 투수 제프 웨버를 데려왔습니다. 최근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구단주인 래리 돌란은 "뉴욕양키즈는 현재 미국 프로야구단의 재정문제를 책임져야 할 당사자"라며 "전설적인 홈런왕 베이브 루스의 스카웃 이래로 양키즈는 모든 야구팀들의 시기와 질투의 표적"이라는 양키즈의 싹슬이 스카웃을 강력히 비난했습니다. 실제로 많은 메이저리스 구단들은 현재 적지않은 재정난을 겪고 있습니다. 예상보다 경기침체가 장기간 이어지면서 입장객들이 줄고 동시에 수입도 예전만 못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런 와중에 팀의 전력강화를 위해 강력한 재력을 무기로 다른 팀의 스타들을 마구잡이로 빼내가는 양키즈나 브레이브스 같은 팀은 당연히 원망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최근 디트로이트타이거즈와 템파베이데블레이스 같은 팀들은 선수들에게 급여마저도 제때 지급하지 못해 쩔쩔매고 있습니다. 이같은 재정 문제는 팀별로 상황만 조금씩 다를뿐 상당수의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동시에 겪고 있는 문제로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구단의 가치에 비해 부채비율이 50% 이상을 차지하는 팀들의 숫자는 전체 30개 팀중에 9개팀에 이르고 있습니다.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심지어 지난해 팀을 2개 줄이자는 극약처방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당시 구단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언급되진 않았지만 언론들은 팀들의 실명을 들며 3~4개팀을 언급했고 이 가운데는 위에서 말씀드린 템파베이데블레이스도 포함됐습니다. 일부에서는 또 메이저리그도 NBA나 NHL처럼 팀간 선수들의 연봉상한선을 정하는 샐러리캡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현재의 메이저리그 팀들간의 성적 불균형이 단기간에 걸친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으며 그리고 그 배경에는 경제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반증해주는 주장이기도 할겁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는 다윗이 돌팔매로 하나로 거대한 골리앗을 물리쳤습니다. 그러나 저는 둘의 싸움이 한번에 끝나지 않고 하루하루 반복됐다면 다윗의 신화는 계속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엄청난 덩치와 체력의 골리앗을 계속해서 당해내기에는 다윗의 돌팔매는 너무나 확률이 떨어지는 빈약한 무기니까 말이죠. 프로스포츠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전략을 보강한다는 미명하에 최고의 선수들을 마구잡이로 데려와서 팀을 만든다면 한두게임은 전력이 약한팀이 이길 수도 있겠지만 시간이 갈수록 강팀이 승리할 확률을 더욱 높아질 겁니다. 점점 결과가 빤해지는 거죠. 스포츠가 사람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가장 큰 이유는 정해지지않는 불확실성 때문입니다. "각본없는 드라마"라는 말처럼 결과를 미리 알거나 짐작할 수 있다면 스포츠는 이미 그 본연의 가치를 상실하고 어떤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고 해도 경기를 볼 이유를 사라지고 말겠죠. 현재 프로스포츠는 금전의 힘으로 그 불확실성을 확실성으로 바꿔나가고 있습니다. 잘하는 선수를 스카웃 한다는 것은 "부자구단"의 행복한 특권일 수 있습니다.그러나 부자구단들이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이라고 하는 스포츠 고유의 가치마저 퇴색시켜서야 어디 볼 맛 나겠습니까? 야구공도 축구공도 모두 둥근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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