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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평론가 김작가] 늦은 밤의 바람을 즐길 만해지는 5월이 되면 잇따라 음악축제가 열린다. 그랜드민트페스티벌의 봄 버전 격인 ‘뷰티풀민트라이프’를 시작으로 5월 말이 되면 그린플러그드, 사운드홀릭페스티벌, 서울재즈페스티벌이 연달아 열리며서 페스티벌 계절을 개막했을 선언한다. 많은 봄페스티벌들 중 서울재즈페스티벌은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2007년 세종문화회관에서 시작한 이 축제는 서서히 규모를 키우고 장소도 올림픽공원으로 옮겨 올해 9회째를 치렀다.
가을의 자라섬재즈페스티벌과 함께 한국재즈페스티벌을 양분하는 축제답게 서울재즈페스티벌은 해가 지날수록 내실을 다지고 외연을 확장했다. 지난달 23일부터 25일까지 재즈의 거장들이 메인스테이지에서 ‘재즈’페스티벌의 정체성을 공고히 했고, 일렉트로니카와 모던록의 스타들은 재즈‘페스티벌’의 분위기를 달궜다. 허비 핸콕 & 칙 코리아, 세르지오 멘데스, 아트루 산도발로 이어진 헤드라이너가 전자를 대변했고 베이스먼트 잭스, 미카, 에픽 하이가 헤드라이너를 맡은 서브 스테이지는 후자를 대표했다. 양과 질 모두 출중했다. 대부분 라인업을 공개한 여름의 록페스티벌에 비해서도 결코 부족하지 않았다. 결과는 대성황이었다. 24일의 경우 티켓이 모두 매진, 현매조차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메인스테이지인 잔디마당은 물론이거니와 체조경기장, 호반무대 등 다른 스테이지에도 꽉꽉 들어찼다.
조금은 낯설었다. 자라섬과 서울재즈페스티벌은 한국 음악시장의 현실과는 비대칭적이다. 요컨대 실생활에서 재즈가 전체 음악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과는 정반대라는 얘기다. 1990년대 중반 ‘사랑을 그대 품 안에’에서 차인표가 색소폰을 불며 시작한 한국의 재즈붐은 케니 지, 조지 윈스턴 등 재즈와는 별 상관이 없는 음악가들까지 재즈바의 단골 레퍼토리가 됐다. 따지고 보면 국민소득 1만달러를 넘어서며 샴페인을 터뜨리던 좋았던 시절의 아이콘으로, 한국에서 재즈가 소비됐던 셈이다.
이런 ‘한국식 재즈소비문화’의 기원은 현재의 재즈페스티벌에도 이어지는 듯하다. 1990년대 중반의 재즈가 재즈바에서 울렸다면 지금은 재즈페스티벌을 통해 소비되는 것이다. 한국 문화시장에서 페스티벌은 거대한 여가산업과 다름없다. 록, 일렉트로닉 등 제각기 내세우는 핵심 장르는 다르지만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한정된 문화소비층이지만 카테고리화할 수 있는 취향이 있다. 여기서 록, 일렉트로니카, 재즈는 곧 기호다. 그리고 기호는 곧 기표와 기의로 나뉜다. 재즈라는 기표가 페스티벌과 맞물릴 때 우리는 어느덧 돗자리와 와인, 피크닉·데이트 같은 기의를 떠올리게 된다. 여가를 즐기되 어떤 방식으로 즐길 것인가에 대한 일종의 이정표라는 뜻이다.
물론 이런 현상이 부정적이란 것은 아니다. 재즈 외의 다른 뮤지션을 보러 온 페스티벌 애호가는 다른 페스티벌에서 볼 수 없는 거장의 연주에 직감적으로 반응할지도 모른다. 그의 음악을 찾아 듣다가 가지치기 하듯 다른 관련 뮤지션을 찾아 나서게 될지도 모른다. 재즈 하면 어려운 음악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그렇게 재즈 팬이 되어간다. 예전에는 특정 스타의 음반이 했던 역할을 페스티벌이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사흘 동안 푸르렀던 밤하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재즈의 매력을 알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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