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개발! 지금이다)③과감하게 질러라

김세형 기자I 2009.06.09 14:21:17
[이데일리 김세형기자] 전세계적인 자원 가격 반등과 각 나라의 끊임없는 자원 개발 관심을 우리 정부나 업계가 모르고 있을 리 없다. IMF 시절 급한 마음에 앞뒤 재지 않고 광구를 해외에 넘기면서 본 피해에 대한 기억이 여전히 또렷하다.

하지만 실탄이 너무 부족하다는 하소연들이 나오고 있다. 광구 가격이 떨어진 것으로 나타나지만 여전히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기 때문이고, 해당 국가에서 경제가 어렵다고 쉽사리 내주지도 않는다. 이런 가운데 일부 공공부문에서는 약속했던 투자마저 당장 시급하지 않다는 이유로 차일피일 미루고 있어 더 김을 새게 하고 있다. 보다 과감한 접근이 필요한 때다.

◇ IMF의 선물?

지난 4월9일 여의도 렉싱턴 호텔에서 지식경제부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자원개발 기업 CEO포럼`이 열렸다. 포럼에서는 정부도, 기업들도 지금이 해외자원개발 확보의 적기라는 데에는 의견일치가 이뤄졌다.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은 "더 이상 과거를 되풀이 하지 말고 자주개발률을 높여야하며 정부도 업계의 애로사항을 듣고 가능한 한 개선해주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기업인들 역시 유가 하락 등으로 유망 광구의 자산가치가 60% 이상 크게 하락한 올해가 해외자원개발의 최적기라는 데 한목소리를 냈다.

이같은 배경에는 IMF 당시의 뼈저린 경험이 큰 몫을 하고 있다. IMF가 터지면서 그동안 꾸준하게 증가했던 우리나라 기업의 해외자원개발투자는 거의 동면기에 진입했다. 그나마 가지고 있던 광구마저 앞다퉈 내다팔기에 바빴다.

97년에는 유전과 여러 광물 광구를 비롯해 117개의 광구를 보유했지만 그뒤 2002년까지 26개가 헐값에 팔렸다. 그뒤 땅을 치고 후회할 만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최초로 개발에 나섰던 마두라 유전은 우리가 철수한 뒤 기름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한국전력이 발을 뺀 캐나다 우라늄 광산은 우라늄 가격 급등덕에 인수 기업에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삼성물산이 지난 2004년 지분을 완전 매각한 카자흐스탄 구리 광산 역시 대박을 날린 것으로 평가된다. 삼성물산이 떠난 뒤에도 남았던 현지 직원 차용규씨는 구리 광산의 상장으로 세계 갑부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우리는 2002년 이후에서야 전열을 정비하고 자원확보전에 재차 뛰어들 수 있었다. 그새 값어치가 폭등했으니 IMF 시절 팔았던 것을 생각하면 속에서 천불이 날 지경이었다.

◇ 가치 떨어져도 쉽지 않은 자원 확보

유가가 뜀박질하면서 광구 가격도 회복세를 보이고는 있지만 여전히 지난해에 비해서는 가격이 저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자원확보는 가격 변수로만 주어 담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자원이 가진 중요성 때문에 정치적 변수가 크게 작용하면서 해당 국가에서 결코 쉽사리 내주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다된 줄 알았는 데 쓴 맛을 보는 경우도 흔히 일어나고 있다.

지난해 8월 석유공사는 러시아 국영석유회사 로즈네프트와 함께 추진해오던 100억배럴 규모 서캄차카 해상광구 탐사 라이센스 연장신청이 기각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순조롭게 진행되던 사업이 메드베예프 대통령 취임으로 가즈프롬이 부상하면서 연장이 불허됐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었다. 석유공사는 천신만고끝에 최근 파트너를 가즈프롬으로 바꾸고 재추진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잘될 것처럼 보이던 이라크 쿠르드 지역 석유개발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간 다툼이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에 휘말려 진도가 나가지 못하다가 최근 쿠르드 정부가 원유 수출을 시작하면서 희망의 빛이 감돌고 있다. 그러나 여기까지 오기까지 석유공사는 살얼음판이었다. 이전 석유공사를 필두로 한 우리측은 쿠르드 지방정부와 계약을 체결했고, 올초 이라크 대통령이 방한해 긍정적 답변을 줬음에도 그닥 진척이 없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석유공사와 SK에너지 등 우리 기업은 쿠르드 지방정부와 계약을 맺었다는 이유로 중앙정부 입찰에서 아예 배제되는 수모까지 겼었다.

나이지리아와 마다가스카르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나이지리아 정권이 바뀌면서 이전 정권이 체결한 계약을 인정하지 않았고, 마다가스카르는 쿠데타로 나라 자체가 외국인과 맺은 자원개발 계약을 백지화하겠다고 선언하고 나선 것. 성공 사례로 꼽히는 석유공사의 페루 페트로텍 인수 막판에서도 도청 스캔들이 터지면서 관계자들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이같은 자원 확보 속성 때문에 지속적인 관심은 물론, 과감한 결정과 지원이 더욱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 찬스에 발빼선 안 돼

정부는 지난 4일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에너지절약 정책은 고유가 시기에만 집중적으로 추진하다가 유가가 하락하면 관심이 떨어지는 측면이 있었다`고 시인했다. 자원확보에서도 이같은 모습은 예외가 아니었다.

정부는 지난해 2010년 원유 1억4100만배럴 비축을 목표 달성을 위해 올해 150만배럴을 추가로 확보키로 하고 1300억원의 예산을 요구했다. 그러나 국회 심의 과정에서 당장의 경기 부양 등에 밀려 860억원으로 예산이 삭감됐다. 유가 급등시 비축의 중요성이 부각됐지만 유가가 떨어진 뒤 재차 후순위로 밀려났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자원개발을 위해 2조원 가량을 투자키로 했지만 지난해 실제 집행은 하지 않았다. 그사이 국민연금은 주식시장 방어에 집중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주식시장 방어 참여 자체를 떠나 국민연금의 개입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증시를 떠나는 외국인들의 현금화를 손쉽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자원개발에 대한 민관의 의지를 확인한 지난 4월 포럼에서는 자원개발 기업들의 금융애로 해소 방안들이 발표됐다. 정부의 성공불융자 지원을 지난해 51% 수준에서 올해 73%까지 확대하고, 수출입은행과 수출보험공사 등 국책은행의 융자·보증 등을 통해 약 5조원의 자금을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또 2000억원 규모의 자원개발펀드를 조성하고, 국민연금 등 연기금의 투자 참여도 적극 추진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정부가 더 나아가 성공불융자 규모를 좀 더 확대하고, 대출금리를 정책금리 수준으로 낮추며, 민간은행이 해외자원개발 금융도 적극적으로 할 수 있도록 지원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다시금 유가 100달러의 악몽이 되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장기적으로는 누구도 유가가 오른다는 데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는 지금이 바로 석유자원 확보에 더욱 고삐를 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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