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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재판 참관기)⑥이재용은 삼성을 물려받을 수 있을까

이의철 기자I 2008.07.17 15:24:42

법적 걸림돌은 해소돼...본인의 경영능력 검증돼야
침착하고 신중한 성격..예의바르고 겸손하다는 평

[이데일리 이의철논설위원] 결과론이기는 하지만 삼성이 12년전에 적법절차를 밟아 이재용 전무에게 상속과 증여를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물론 수천억원의 상속세를 물었어야 했겠지만 12년 동안 삼성이 벌금으로 세금으로 사회공헌으로 낸 돈을 합하면 그 보다 훨씬 많지 않을까. 공식적인 것만 벌금 1100억원, 양도세 포탈액 가산세 포함해서 1829억원, 사회공헌 8000억원 등등. 얼추 잡아도 1조원을 훨씬 넘는다.

물론 삼성으로서도 할 말이 있다. “삼성전자 주가가 그렇게 올라갈 줄 알았나? 그 당시 상황에선 그 방법이 최선이었다. 당시 법대로 상속세를 냈다면 그룹이 유지되지 못했다. 그렇다고 비난은 없었을까? 욕은 욕대로 먹고, 그룹은 뿔뿔이 흩어질 수도 있었다” 역사에서나 현실에서나 가정은 비현실적인 것이다.

삼성 관련 6차 공판에선 이재용 전무가 증인으로 출석했었다. “어머니를 보면 딸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을 빗대 “아버지를 보면 아들을 알 수 있다” 는 말은 잘 쓰지 않는다. 정신분석학적으로 보면 아버지와 아들은 경쟁관계다. 그래서 가장 닮을 수도 있지만, 그 반대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재용 전무의 경우 이건희 전회장과 떼놓고 생각할 수 없는 존재다.

이재용 전무(사진)는 잘 생긴 호남형이다. 얼굴은 어머니인 홍라희 여사를 많이 닮았지만 골격은 상체가 발달한 아버지를 닮았다. 키도 훤칠하고 상하체간 균형도 잘 잡혀있는 편이다.

이재용 전무는 아버지인 이건희 전회장에 비해 미디어에 많이 노출되는 편이다. 삼성전자 전무 자격으로 기자들과의 접촉도 꽤 있었다. 기자들 사이에서 그에 대한 이미지는 좋다. “겸손하다” “예의바르다” 등이다. 물론 이같은 평가도 전략기획실에서 ‘전략적으로’ ‘기획된’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전무의 행동이나 말이 인공적이진 않다. 사실 본바탕이 겸손하지 못한 사람들은 표정에서건 행동에서건 본색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이재용 전무가 부잣집 아들이란 점이다. 이건희 전회장도 마찬가지다. 부잣집 아들이었다. 이는 기업을 창업한 창업주와는 전혀 다른 성격적 특성을 가진다. 우선 여유있고 타인에 대한 배려심도 많다. 반면 악착같지는 않다.

기자가 이재용씨를 처음 만나 인사한 것은 2003년 가을 뉴욕에서였다. 삼성의 자선행사 포시즌이 열리는 행사장에서 이재용씨가 삼성전자 상무 자격으로 참석했다. 뉴욕특파원들도 취재를 위해 참석했는데, 이재용 상무가 기자석으로 찾아와 깍듯이 인사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기자가 이데일리 특파원이라고 했더니, “아 그러십니까? (이데일리라는 매체를) 잘 알고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전형적인 귀공자 타입이되, 교육 잘 받은 예의바른 젊은이의 인상이었다.

삼성그룹 전 현직 고위 임원을 통해 들어본 이재용 전무에 대한 평가도 다르지 않다.

“전혀 회장 아들이란 티를 안내는 젊은이다. 궁금한 것에 대한 학구열도 뛰어나고 예의바르다”(황영기 국민은행 지주회사 회장 내정자)
“회장 가족 모임에 배석한 적이 있었다. 이재용 당시 상무도 자리했는데 곧고 바른 젊은이였다. 가정교육을 잘 받았구나 하는 인상이 들었다”(배동만 삼성 사회봉사단 사장)

이재용 전무는 침착하고 신중하다. 이것도 아버지를 닮았다. 6차 공판에서 증인으로 나온 이재용 전무와 민병훈 재판장의 대화를 옮겨보자. “법학교수들이 삼성에버랜드 사건을 고발했는데, 이에 대한 증인의 소회는 어떤가”(민병훈 재판장) “그 전에도 몇 번의 고소 고발건이 있었는데, 법학 교수들의 고발에 대해선 좀 신경을 썼던 것으로 기억한다. 시민단체들의 고발과는 차원이 달랐기 때문에 비서실에 물어봤는데, ‘(에버랜드 CB발행은) 적법절차에 따라 진행된 것이라 문제될 것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이재용 전무)
이어지는 질문 “그 사안에 대해 굳이 물어본 것은 법학교수들의 사회적 위치 때문이었나, 아니면 법적으로 문제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인가”(민병훈 재판장) “당시엔 그런 두 가지 차원을 생각 못했는데 지금 재판장님 말씀을 듣고 보니 그 두 가지가 다 작용했던 것 같다”(이재용 전무)

재판장으로선 상당히 날카로운 추궁이었는 데 이 전무는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답변했다.

하지만 예의바르고 겸손하다고, 더 나아가 침착하고 신중하다고 삼성그룹을 상속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삼성이란 글로벌 기업, 거대조직을 끌어갈 수 있는 능력이 최우선시돼야 한다. 아버지인 이건희 전회장도 이를 명확히 한 바 있다. “재용이가 그룹을 물려받으려면 무엇보다도 본인의 능력이 돼야한다. 지분 100%를 갖고 있더라도 능력이 없으면 1%를 가진 것만 못하다”

그런 점에서 이재용 전무의 경영권 승계 작업은 어쩌면 지금부터 시작이다. 회장이 되기 위한 기회란 측면에서 물론 회장의 아들은 유리하다. 그렇다고 무조건적으로 유리할 수는 없다. 이재용 전무는 온갖 어려움을 스스로, 또 주변의 힘을 빌어 극복해나가야 한다. 그 과정은 12년간 끌어온 삼성 경영권 편법 상속논란보다 더 지루하고 더딜 수 있다.

삼성의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은 용병술의 달인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가 남긴 최고의 인사는 셋째 아들인 이건희 회장을 후계자로 삼은 것이었다. 이건희 전회장도 사람을 쓰는 데 남다른 직관력이 있는 인물이다. 그의 직관력이 삼성의 후계구도를 완성하는 데 어떤 영향력을 끼칠지, 또 어떤 결과로 작용할지 정말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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