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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대중의 눈'으로 '대중의 마음' 엿보는 남자

염지현 기자I 2012.08.13 13:48:51

이데일리가 만난 문화인 ⑦ 설도윤 설앤컴퍼니 대표
못 말리는 예술혼
연극에 미쳐서 대학 중퇴
무용 배우러 여대 담 넘어

설도윤 설앤컴퍼니 대표(사진=권욱 기자 ukkwon@)


[이데일리 염지현 기자] 태어날 때부터 초록색 피부를 가졌다. 게다가 못생겼다. 그래서 왕따였다. 여기까지는 영화 주인공 ‘슈렉’같다. 하지만 여자다. 마법의 능력을 가졌다. 성질이 불같다. 열정적이다. 똑소리난다. 그래서 불의를 보면 못참는다. 권력의 회유에도 뜻을 굽히지 않는다. 그의 이름은 엘파바. 뮤지컬 ‘위키드’의 주인공이다.

2012년 여름, 우리 공연계에 이 초록색 마녀가 인기다. 국내 뮤지컬 흥행기록을 다 갈아치울 태세다. 이미 15만명을 돌파했다. 이런 기세라면 오리지널 내한공연으로 최고 기록을 갖고있는 2005년 ‘오페라의 유령’의 19만명을 넘어설 수도 있다. 화제의 마녀 ‘엘파바’를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한 사람은 설도윤(53) 설앤컴퍼니 대표. 2001년 12월 라이선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을 국내 관객들에게 처음 선보인 유명 뮤지컬 프로듀서다.

설 대표는 국내 최고의 뮤지컬 흥행 승부사로 불린다. 그는 프로듀서를 “좋은 공연을 선택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합리적인 가격으로 볼 수 있도록 묵묵히 일하는 사람”라고 정의했다. 그에 걸맞게 예술과 자본의 관계도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프로듀서는 스태프다. 연출이나 배우들이 좋은 여건에서 공연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는 사람이다. 난 배우 오디션에 참가하지 않는다. 그건 연출의 몫이다.”

그는 누구보다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성악을 선택했지만 연극에 미쳐서 중퇴했고, 무용을 배우기 위해 4년 간 이화여대 담을 몰래 넘었다. 뮤지컬이란 개념도 생소하던 80년대 초반, 재떨이가 날아다니던 연습실에서 뮤지컬을 배웠다. 연봉 2만원으로 6년을 버티면서도 뮤지컬만 바라보던 열정은 2001년 빛을 발했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이 270억원 매출을 올리며 흥행기록을 세운 것이다.

- ‘위키드’의 흥행 요인은

‘오즈의 마법사’를 연관지을 필요는 없다. ‘위키드’는 다른 이야기다. 그 자체로도 모든 세대에 어필하는 매력이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아이들은 아동용 동화라 생각하는데 어른들은 성인코드를 읽고 감동하더라. 특히 우리 뮤지컬 관객은 20대에서 30대 초반의 여성들이 80% 이상을 차지하는데 위키드는 유난히 남성 관객들이 많았다(남성비율 35%). 남성 관객들이 원하는 동화적 요소가 있다.

- 흥행작이 많다. 선택 기준은

내 눈높이가 지극히 대중적이다. 연출자들은 나를 제일 초청하고 싶은 관객이라고 한다. 리트머스 시험지 같다고 놀릴 정도로 공연을 보러 가면 제일 많이 웃고, 가장 먼저 일어나서 기립박수친다. 비판하려고 하지 않고 순수하게 보고 느끼는데, 그런 눈을 유지하는 게 작품을 잘 선택하는 비결인거 같다. ‘위키드’의 경우는 6년 전에 미국에 있는 조카들이 보여달라고 성화였던 적이 있다. 보고도 한 번 더 보고싶다고 했다. 미국에서 다시 돈을 내고 공연을 보는 것이 드문 일이라 놀랐다.

- ‘오페라의 유령’ ‘캣츠’ 등을 제작한 세계적 공연기획사인 ‘더 리얼리 유스풀 그룹’과 독점적 파트너십을 유지하고 있는데

6년 걸렸다. 우리나라는 마켓이 작기 때문에 안 만나준다. 하지만 계속 시도했다. 이메일 같은 일반적인 비즈니스 마인드로 다가가면 진행이 안 된다. 무조건 찾아가서 스킨십을 해야 한다. 함께 점심을 먹기 위해 14시간 비행기를 타고 날아갔다가 다시 저녁 비행기로 들어온 적도 있다. 그렇게 파트너십을 쌓으며 공연을 성공시킬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줬고 투명한 회계로 믿음을 심어줬다. 에피소드가 있다. ‘오페라의 유령’ 공연 후 회계정산을 하고 감사까지 받고 영수증 8만장을 꺼내서 계산을 끝냈다. 몇 달 후 5만달러가 누락된 것을 발견했다. 6개월 후라 사실 말 안하면 넘어갈 일이었다. 하지만 되돌려줬다. 그 이후 우리를 100% 신뢰했다.

- 뮤지컬 시장이 커졌다

작년 시장규모가 2500억원 정도다. 2001년 ‘오페라의 유령’ 공연 이후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다. 그전은 연극, 콘서트, 뮤지컬 다 합쳐서 900억원 수준이었다. 앞으로 3000억원 규모까지는 계속 성장하다가 내수가 포화상태가 되면 완만해질 거 같다. 뮤지컬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예를 들어서 외국처럼 기념품 사업을 크게 벌이든지 뮤지컬로 영화를 만들고 책을 내거나 또는 해외시장에 진출하는 것이다. 정부도 문화산업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한다. 호주는 한 작품에 많게는 50억원까지도 지원한다. 제대로 만들어서 수출도 하고 관광상품으로 개발하라는 거다.

- 프로듀서로서 중요한 자질은

프로듀서는 예술경영자다. 예술에 방점을 찍을 게 아니라 경영감각을 키울 수 있게 노력해야 한다. 천정부지로 올라가는 티켓가격을 내려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작품을 즐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외국에서 공연팀이 오면 보통은 호텔을 잡아 준다. 결국 그 가격이 다 티켓에 포함된다. 가격을 낮출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설도윤 대표는…

1959년 경북 포항 출생. 뮤지컬 제작 1세대. 2001년 ‘오페라의 유령’ 제작 총괄 프로듀서로 국내 뮤지컬 시장을 선진화하는 데 큰 몫을 했음. 브로드웨이 뮤지컬 ‘라보엠’(2002)의 제작에 참여해 한국인 최초로 브로드웨이에서 프로듀서로 데뷔. 뮤지컬 ‘캣츠’ ‘미녀와 야수’ ‘브로드웨이 42번가’ ‘에비타’ ‘컴퍼니’ 등 제작. 2006년 한국뮤지컬대상 프로듀서상, 2009년 ‘오페라의 유령’으로 더뮤지컬어워즈 베스트 리바이벌상 수상.

대담=김병재 문화부장 filmb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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