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에 대한 이야기는 매순간이 중요”

오현주 기자I 2011.09.02 15:25:44

`꽃의 나라` 한창훈 인터뷰
“요즘엔 5·18 작품이 없다…그래서 내가 한 것
편하게 사는 사람들 불편하게 만드는 게 신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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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나라
한창훈|274쪽|문학동네

▲ 작가 한창훈에게 폭력은 `죽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는 상처를 다른 사람에게 주는 짓`이다. 국가폭력은 강도가 훨씬 더 강하다고 했다. “국가폭력 앞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죽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는 상처를 받는다.”(사진=문학동네)

[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장편이 8년 만에 나왔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편집부 직원이 말해줘서 알았다. 작가생활을 하는 동안 장편보다는 단편에 중점을 두고 살아온 편이다.” 그러나 작가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8년 만의 장편소설이란 것이 결국 화제가 됐다. 출간되자마자 `꽃의 나라`에 대한 관심이 일었다. `바다와 섬의 작가`로 알려진 한창훈(48)의 신작이다.

화두는 `폭력`이다. 궁극적으로 국가폭력이다. 국가폭력을 끌어내기 위해 사적인 폭력으로까지 거슬러 올랐다. 17세 소년이 겪는 폭력의 일상화는 가정을 거쳐 갓 입학한 고등학교에서 본격화됐다. 법도 윤리도 저항도 실존도 폭력 앞에선 다 소용이 없다는 절망적 세계관을 드러낸다. 소년은 “내가 맞는 이유는 단 하나. 이곳이 멀고 낯선 곳이기 때문”이라며 폭력의 실체를 아프게 수용한다.

한 작가가 인터뷰 요청 전화를 받은 곳은 거문도였다. 그는 전남 여수에서 물길로 115km는 더 가야 한다는 거문도에서 6년째 살고 있다. 그곳에서 태어났다. 당장 거문도로 향할 수 없는 여건 탓에 서면으로 그를 만났다.

바로 지금 폭력을 내세운 이유를 물었다. “어느 시점이 중요하지 않다. 야만과 폭력에 대한 이야기는 매순간이 다 중요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사회”라면 더 말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물론 이 장편은 시간이 오래 걸렸다. 아픈 내용이다. 그 이야기를 담담하게 할 수 있을 때까지 세월을 보내야 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30년이 걸린 셈이란 말도 덧붙였다.

학교폭력에서 벗어난 소년은 국가폭력 한가운데 선다. 분위기는 1980년 5월 광주다. 왜 불현듯 과거로 기억을 되돌렸을까. 그는 `문학의 텍스트가 되지 않은 사건은 역사에서 잊힌다`는 명제를 믿는다. “많은 작가들이 5·18을 배경으로 작품들을 써왔다. 그런데 요즘은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한 것이다”고 했다. 그러나 소설 속 배경을 5·18로 보는 데는 동의하지 않았다. “시대도 지명도 사투리도 나오지 않는다. 내가 그리고자 한 것은 국가폭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이 자전적 내용인 것은 인정했다. 17살이던 1980년 그는 광주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폭력에 대한 작가의 몰입은 소설의 소년이 성장할수록 강도를 더한다. 이에 대해 그는 “소년이 성장하면서 어떤 것들을 만나게 되는가를 말하고 싶었다”고 설명한다. “국가가 폭력을 행사하면 야만과 파괴가 어디까지 가는가를 보여주려 한 것이다.” 폭력은 지금도 만연해 있다. 국가폭력도 마찬가지다. “30년 전 것이 물리적인 폭력이라면 지금은 행정의 억압, 문화경시, 약자에 대한 멸시 같은 것”으로 형태만 바뀌었을 뿐이다.

한 작가의 이력은 많은 이들에게 회자됐다. 젊은 날엔 오징어잡이배를 타기도 했다. 포장마차를 운영하고, 홍합공장 노동자이던 때도 있다. 27살 되는 겨울, 작가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했다. 학교를 그만두고 공장생활을 하던 그때다. “글 잘 쓴다는 소리 한 번도 못 듣고 살았지만” 돈을 못 벌어도 가장 욕을 적게 먹는 직업인 데다 “내가 자라면서 보았던 변방 섬의 이야기를 기록해 놓을 수 있을 것 같아” 작가가 됐다.

주류와 도시, 중심 위주로 돌아가는 세상을 훼방하는 것이 그의 신념이라고 했다. “이런 장면이 있다고 자꾸 들이대서 편하게 살려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 말이다. 소설은 변방에 핀 그 `불편한 꽃`이다. “우리나라 5월에는 흰 꽃만 핀다고 하더라. 5월의 사건들을 떠올려보면 상징적으로 들린다.” 제목은 그 말에서 따왔다고 했다. “우리나라에 대한 반어적인 표현, 그것이 `꽃의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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