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 근무하는 30대 직장인 A씨는 주택가를 오가는 오토바이 소리가 유난히 시끄럽게 들린다. 기온이 차츰 올라 창문을 여는 날이 잦아지면서 부쩍 그렇다. 이들이 뿜는 경적은 집안의 고요와 한밤의 단잠을 훼방하는 불청객이다.
코로나19로 음식배달 산업이 팽창해 늘어난 이륜차(오토바이)가 달갑지 않은 원인 중 하나는 소음이다. 개중에 경적 소리가 주요인으로 꼽힌다. 현행법은 불법 경적을 사용하는 걸 막을 뿐이고, 유통하는 것은 허용하고 있어서 소음을 다스리는 데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 비행기보다 시끄러운 오토바이
31일 온라인 상거래 사이트를 훑어보면, 오토바이 경적 가운데 최대로 110 데시벨(dB) 이상의 소리를 낼 수 있는 제품이 다수 유통되고 있다. 개중에는 제원으로 최대 120 dB 이상으로 소리를 낼 수 있는 제품도 눈에 띈다.
해외 이커머스 아마존에서는 150 dB이 넘는 경적이 흔하고, 개중에는 제원을 300 dB로 표기한 상품도 있다. 흔히 110 dB을 전기톱 소음에, 120과 150 dB는 각각 여객기와 전투기 이륙 소음에 빗댄다.
국내 현행법이 허용하는 소음 상한을 웃도는 제품이다. 소음·진동관리법(시행규칙)상 오토바이 경적의 소음 허용 기준은 110 dB 이하(2000년 이전 생산은 115 dB)이다. 이를 초과하는 경적을 부착한 오토바이를 제조하면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한다. 오토바이 운전자도 이 한도를 어긴 경적을 쓰면 6개월 이하 징역형 또는 500만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한다.
위반은 주로 제조사보다 운행자에게서 발생한다. 오토바이 제조사는 환경부에서 소음 인증을 미리 받아야 하기 때문에 사전에 거를 수 있다. 문제는 오토바이 출고 이후다. 운행자가 임의로 경적 소리를 키우면 사후에 적발해야 한다.
◇ 만들고 팔아도 되지만 써야 불법
물론 오토바이는 정기·수시로 경적 소음 적정도를 검사받기에 관리가 가능하다. 그러나 법망을 피할 길은 열려 있다. 정기 검사 전에 경적을 교체하는 일은 크게 수고스럽지 않다. 아울러 오토바이 정기 검사는 배기 가스가 적정한지만 본다. 소음 점검은 의무사항이 아니다. 지자체에서 하는 수시 검사는 인력과 비용 문제 탓에 단속에 한계가 분명하다.
제조 및 유통을 조이는 것도 방법이지만, 현행법으로는 불가능하다. 소음·진동관리법은 장착 및 사용을 규제할 뿐이다. 아마존에서 구매한 150 dB 제품을 들여오는 데 통관상 제약은 없다. 환경부 관계자는 “소음 한도를 넘는 경적까지 제조하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관련 산업 쪽도 개입하기 어려운 처지다. 이커머스 측은 오픈마켓 특성상 현행 법률에 저촉되지 않는 물건을 거래하는 이상 개입하기 어렵다고 한다. 배달 업계 관계자는 “라이더 소유의 오토바이 제원을 간섭하기는 어렵다”며 “카카오택시의 불편함을 카카오에 호소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
비유하자면 칼이 범죄에 쓰일 것을 우려해 미연에 생산을 금지할 수 없다는 논리인데, 논리 싸움을 하는 새 시민 사이에서 피로감이 쌓인다. 전문가들은 제조와 유통 단계를 들여다보는 게 피로감을 줄이는 길이라고 조언한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불법 경적은 유통 단계에서 규제를 강화해서는 실효를 거두기 어렵기에, 제조 단계에서 관리하는 것이 소음을 줄이는 길”이라며 “이를 통해 오토바이 산업이 건전하게 발전해야 배달 산업도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형석 한국오토바이정비협회장은 “경적을 제조하는 단계부터 규제하면 산업 발전을 저해할 우려가 있어 조심스럽다”며 “다만 수입과 유통 단계에서 경적의 성능을 점검하면 소음을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제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