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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달러이야기-②G7 다음에는 개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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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종구 기자I 2004.11.23 1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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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드마크투신운용 김일구 운용본부장

[edaily 증권부] edaily는 최근 달러가치 급락으로 인한 국제금융시장 질서의 재편과 관련해 랜드마크투신운용 김일구 운용본부장의 특별기고를 총 4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과거 환율 급변동을 불러왔던 플라자합의와 루브르합의 등 역사를 되짚어 보고 현재의 달러가치 조정의 의미를 조명해 봅니다. 또한 향후 환율의 향방에 대한 전망과 함께 한국 경제에 대한 시사점 및 대응방안에 대해서도 함의를 찾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특별기고 시리즈 1~2편은 23일, 3~4편은 24일 게재됩니다. ◇ 루브르합의의 외연적 확장: 수퍼301조와 주택200만호 건설 플라자합의가 G7 사이의 일이었다면, 루브르합의는 외연이 G7에만 그치지 않고 개도국까지 확대되었다. 또 이때부터는 G7 이외의 나라들이 동원되기에 이른다. 우리나라와 같은 개도국들은 플라자합의의 최대 수혜자였다. 사실 플라자합의로 달러화가치가 폭락했다고 했지만 그건 G7 사이의 일이었다. 우리나라는 정부가 환율을 계속 통제하고 있었고 그래서 발생한 3저(低)로 단군 이래 최대의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플라자합의는 원자재가격도 폭락시켰고, 여기에 선진국들의 금리인하와 달러/엔 환율의 폭락이 모두 우리나라의 무역수지를 크게 개선시켰다. 그러다보니 유럽과 일본의 흑자 감소가 미국의 적자 감소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국과 같은 개도국들의 흑자 증가로 이어졌던 것이다. 이 때부터 미국은 개도국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하는데, 기존의 무역보호법인 301조를 개정하여 수퍼301조를 만든다. 의회가 갖고 있던 통상권한을 행정부로 이관하여 불공정 무역행위를 하는 나라들에 대해 즉각 제재를 가하겠다는 것이 수퍼301조의 정신이었다. 또 미국은 우리나라를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여 원화가치 절상 압력을 공식화했다.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면서 정부의 환율정책이 불가능해지자 달러/원 환율은 86년말 860원에서 89년 봄 660원대까지 떨어진다. 원화가치 급등과 수퍼301조로 주요 수출품에 대한 수입규제도 본격화되면서 우리나라 역시 일본처럼 수출이 급격히 위축되는 결과를 낳는다. 미국이 요구한 것은 너무나도 분명하게 우리나라도 루브르합의의 정신을 따르라는 것이었다. 주택200만호 건설이라는 대규모 내수부양책이 등장했다. 당시 국제적인 정책공조가 너무 강했기 때문에, 우리가 만약 이에 따르지 않았다면 수출산업이 초토화되고 경기도 급랭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 80년대의 호황, 혹은 버블: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90년대의 경기사이클은 전적으로 미국에 의한 것이었다. 미국의 수요가 늘어나면 세계경기가 좋아지고 미국의 수요가 줄어들면 세계 경기가 나빠졌다. 그러나 플라자합의와 루브르합의는 80년대 중순 이후 세계경제 호황을 순차적인 성장으로 만들었다. 80년대 초 레이건 행정부가 재정을 동원하면서 성장하고, 플라자합의로 미국은 성장을 냉각시키는 대신 유럽과 일본이 성장의 바통을 넘겨 받고, 루브르합의 이후에는 이 바통을 다시 우리나라를 포함한 개도국이 이어받는 방식이었다. 그 과정에서 세계경제는 고도 성장을 이어갈 수 있었고, 80년대 초반 무모할 정도로 과감한 성장전략을 택하면서 생겼던 미국의 쌍둥이 적자도 해소될 수 있었다. 그러나 80년대 호황은 버블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 호황의 정점에 있었던 일본은 그 후 버블의 붕괴를 거치면서 10년 이상을 쓰레기 청소에 허덕여야 했다. 달러화약세는 기본적으로 버블의 수출이다. 달러화약세를 유도하기 위해 기축통화국인 미국이 금리를 낮췄고, 이 과정에서 발생한 세계 유동성이 달러화약세 때문에 미국에 남아 있지 못하고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달러화약세에 협조하면서 다른 나라들은 금리인하와 내수부양을 해야 했고, 이 역시 이들 나라에서 폭발적인 유동성 팽창을 낳게 했다. 금리는 낮은 수준에서 유지되었고 주가와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다. 이런 의미에서 플라자합의는 그 자체가 버블정책이었다. 또 루브르합의는 버블에서 미국이 홀로 빠져나오고 나머지 나라들에서 버블을 연장시키는 정책이었다고 할 수 있다. 눈치빠른 유럽은 버블정책에서 빠져나갈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가 88년 중순부터 아주 빠른 속도로 긴축에 들어갔다. 그러나 국제적인 감각이 없었던 일본은 89년 중순까지도 버블을 막을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었고, 국제적인 버블 시기에 다른 나라에 비해 1년 이상 긴축이 늦어지면서 버블의 강도가 강해졌다. 강한 버블을 끄기 위해 89년 후반부터 강한 정책을 집중적으로 구사하면서 버블붕괴 또한 강하게 진행되었다. 우리나라도 버블정책의 후유증으로 물가상승률 10%, 금리 19%를 경험했지만, 자본시장이 닫혀 있었기 때문에 일본에 비해 버블과 버블붕괴의 강도는 약하게 나타났다.(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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