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휘발유 2천원 시대 눈앞..범인은 누구?②

이진우 기자I 2007.06.13 12:21:59
[이데일리 이진우기자] '휘발유 값이 어딘가 새는 곳이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비쌀 리가 있는가'

이런 의문을 품는 소비자들은 주로 정유회사들 쪽으로 의혹의 시선을 던진다. 휘발유에 붙는 세금이 얄밉긴 하지만 1원 단위까지 똑부러지게 정확하기 때문에, 돈이 샌다면 정유사나 주유소쪽일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에서다.

5. 별로 안남는다는 정유사들, 이익은 왜 사상최대?

SK(003600)(주)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1조1678억원. 올해 1분기에는 4760억원으로 분기실적 기준으로 사상최대를 기록했다. 영업이익률도 7%를 넘었다. 마진이 별로 남지 않는다면 이런 영업이익은 어디서 나오는 것이냐는 게 '정유사 폭리론'의 핵심이다.

정유사들은 원유를 정제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나프타를 다시 가공해서 에틸렌, 파라자일렌, 합성수지 등을 만든다. 나프타를 가공하는 사업을 석유화학사업으로 부르는 데 이익은 대부분 여기서 올린다는 설명이다.

주유소에 휘발유를 파는, 즉 정유사업에서 번 돈이 아니라는 뜻이다.

매출의 95%를 석유제품 판매에서 올리는 '순수 정유사'에 가까운 현대오일뱅크는 작년에 9조원 매출에 1372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1372억원이 작은 돈은 아니지만 현대오일뱅크의 자본금이 1조2000억원이 넘는다는 것을 감안하면 자본수익률은 그리 높지 않다.

현대오일뱅크의 작년 영업이익률은 1.5%로 작년 SK(주) 정유사업부문의 영업이익률 1.9%와 유사한 수준이다. 기름 팔아 별로 안 남는다는 말이 틀리지는 않은 셈이다.

다만 1조원 남짓 투자해서 은행이자의 두 배에 가까운 1000억원대의 이익을 꾸준히 안정적으로 올린다면 그것도 그리 엄살을 피울만한 상황은 아니지 않느냐는 지적도 있다.

문제는 그 1000억원대의 이익을 포기한다해도 휘발유 값 인하폭은 리터당 10원 남짓이라는 것이 고민이다.

한편 현대오일뱅크와 유사하게 석유화학사업의 비중이 작아 '순수 정유사'에 가까운 S-Oil(010950)은 작년에 4조5559억원의 매출에 9257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률이 6.3%나 된다.

S오일이 이렇게 빼어난 수익률을 올리는 것은 벙커C유 등 중질유를 다시 정제해서 휘발유나 경유로 바꾸는 '고도화설비'가 우수하기 때문이다.

정유회사들이 고도화설비에 더 투자해서 휘발유를 더 많이 뽑아내면 기름값을 내릴 수 있다는 지적이 그래서 나오는 것. 그러나 이렇게 높은 영업이익을 모두 휘발유값 인하로 돌려봐야 리터당 30원 정도라는 건 여전히 문제다. 소비자들이 체감할만한 수준이 못되기 때문이다.

6. 화학사업에서 남기고 정유사업에서 또 남기나?

정유사업과 석유화학사업을 함께 갖고 있는 SK(주)와 GS칼텍스에 주로 돌려지는 화살이다.

석유정제과정에서 나오는 물질을 가공해서 화학제품을 만드는 것이 석유화학사업이라는 점에서 두 사업부문에서 모두 이익을 남기는 것은 잘못된 게 아니냐는 주장이다. 정유회사들의 이익을 줄여서 기름값을 낮춰야 한다는 맥락이다.

석유화학사업에서 이익이 남는다면 정유사업에서는 손실이 나더라도 감내해야 한다, 정유사업은 석유화학사업의 원료 추출과정 개념 정도로 보고 이익을 뽑아내려면 안된다는 식의 다소 강경한 주장이다.

일부에서는 두 회사가 화학부문과 정유부문의 이익을 구별하는 과정에서 감가상각비 등을 정유사업쪽으로 몰아서 고의로 정유사업 이익을 낮춘다고 하지만 이 역시 뚜렷한 근거를 찾기는 어려운 주장이다.

실제로 SK(주)의 감가상각비는 연간 300억원 가량으로 어느쪽으로 몰든지 큰 차이가 없다. 업계 관계자는 "공장 설비가 정유설비인지 화학사업 설비인지 구별하는게 당연하며 애매한 공유설비들은 매출비율에 따라 감가상각비를 나눈다"고 설명했다.


7. 주유소 광고라도 줄이면 기름값 좀 싸지지 않을까?

정유사들이 광고비용을 아끼면 마진을 유지하면서도 기름값을 내릴 수 있지 않느냐는 게 일부의 주장이다. 어차피 제품의 차별성이 거의 없고 GS칼텍스 공장에서 만든 휘발유를 SK주유소에서 섞어 파는 마당에 광고비라도 줄이라는 것. 그러나 이 역시 그리 현실적이지는 않다.

내수 매출이 5조원이 넘는 S오일의 작년 광고선전비는 242억원. 0.5%에 불과하다. 광고를 하지 않고 기름값 인하에 썼다고 해도 인하폭은 리터당 2원에 불과하다.

한 정유사 관계자는 "정유사들이 석유정제부문에서 이익을 모두 포기하더라도 실제 휘발유값 인하폭은 리터당 15원이 채 안될 것"이라고 밝혔다. SK(주)의 지난해 석유정제부문 영업이익률은 2%로 주유소에 공급하는 휘발유 세전 공장도가격 500원 가운데 2%인 10원이 정유사 영업이익이라는 뜻이다.


8. 수출용 휘발유는 내수용보다 왜 더 싼가?

정유회사들이 만드는 휘발유는 수출도 하고 주유소로 보내기도 하는데 주유소로 보내는 가격이 더 비싸다.

지난 4월 국내 정유사들이 주유소에 공급한 세전 휘발유 공장도가격은 리터당 579원53전. 반면 싱가포르국제시장에서 거래된 휘발유 가격은 배럴당 83.55달러, 환산하면 리터당 489원49전이었다.

내수용 휘발유 가격이 리터당 90원 가량 비싼 셈이다.
 
▲ 휘발유 내수가격과 수출가격의 차이 추이


이 90원의 차이는 어디서 생길까. 정유사들은 수출용 휘발유는 원유수입부과금(리터당 16원)과 관세(원유가격의 1%)를 환급받아 약 15~20원이 더 싸지고 내수용 휘발유는 저유소 운영비와 주유소까지 실어나르는 유통비용, 각종 마케팅 비용 등이 포함되기 때문에 더 비싸다고 설명한다.

거기다 실제로 정유사들이 주유소에 공급하는 가격은 발표된 공장도가격보다 싸다. 주유소들이 서로 다른 정유사들의 기름을 섞어팔기까지 하는 상황에서 경쟁을 하려면 보다 싸게 줘야 한다는 게 이유다.

지난 4월 SK(주)가 실제 주유소에 공급한 휘발유 세전 평균가격은 540원36전이었다. 발표된 공장도가격보다 40원 가량싸게 공급했던 셈. 이 가격차이도 '내수가격과 수출가격의 90원 차이'를 설명하는 큰 부분이다.

물론 이런 비용들이 90원의 차이를 모두 설명하지는 않는다. 정유사들도 내수가격과 수출가격의 차이를 구체적으로 입증할만한 자료를 제시하지 않는다. 제품원가와 관련된 자료여서 영업상 공개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정유사들이 수출용 제품에서 더 많이 남기는지, 내수용 제품에서 더 많이 남기는지의 문제는 휘발유 내수 가격을 얼마나 더 내릴 여지가 있는지를 결정하는 핵심적인 사안 중 하나다.

그러나 그 답은 정유사들만 안다. 다만 '구체적으로 따져보기는 어렵지만 큰 차이는 없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수출이 많이 남는다면 휘발유의 대부분을 내수시장에 풀고 있는 SK(주)가 바보인 셈이고 내수가 많이 남는다면 휘발유의 절반 이상을 수출하는 S오일의 전략을 이해하기 어렵게 되기 때문이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