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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생산 공장을 미국에 지어야 합니까, 아니면 중국에 지어야 합니까.”
신기욱 미국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 연구소장(사회학과 교수)은 최근 한 한국 중견기업의 A 대표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다. 신 교수는 스탠퍼드대에서 17년째 아시아태평양을 비롯한 국제질서 관련 연구를 총괄하고 있는 대표적인 재미 석학이다.
“미국이 돌연 베이징 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을 선언했는데, 이미 예견돼 있던 일입니다. 미·중 갈등이 오래 지속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한국은 일본, 호주와 달리 미·중 사이에서 입장이 어정쩡합니다. 미국에서는 한국이 너무 친중국 아니냐는 의심마저 작지 않습니다. 가장 혼란스러운 건 기업들이지요.”
신 소장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첫 정상회담 나흘 후인 지난 19일 오전(현지시간) 이데일리와 전화 인터뷰하며 전해준 일화다. 신 소장은 결국 A 대표에게 “(불확실성이 큰) 중국보다 미국에 짓는 게 차라리 나을 것 같다”고 조언했다고 한다. 여러 경제 문제가 국가 안보화하는 상황에서 한국 특유의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외교정책 패러다임은 이미 시효를 다 했고, 이제는 이를 뛰어넘는 새로운 원칙을 정할 때라는 게 신 소장의 생각이다.
신 소장은 최근 대선 국면을 두고서도 “(경제 공약을 보면) 국내 경제정책에 대해서는 많이 다루지만, 국제 질서 속에서 한국 경제의 대응에 대한 고민은 부족하다”며 “이 때문에 중견기업 외에 (해외 사업을 해야 하는) 유수의 대기업들도 고민이 많다는 얘기를 듣는다”고 전했다.
◇미중 갈등의 핵심은 ‘경제 전쟁’
-미·중 정상회담 총평을 해달라.
△깜짝 뉴스는 없었다. 예상대로 갔다. 두 정상이 한 번 만나서 서로의 입장을 재확인하는 그 정도의 의미가 있었다고 본다.
-정상회담 이후 미국의 올림픽 보이콧 소식이 나왔다.
△예견돼 있었다고 본다. 실제 보이콧을 할 가능성이 크다. 조 바이든 대통령 입장에서는 미국 안팎에 원칙을 천명할 필요가 필요가 있을 것이다. 신장 위구르 인권 등의 문제가 있으니 명분이 있다. 미국 내 여론 역시 나쁘지 않다.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이 크게 떨어진 상황인데, 그래서 중국을 더 때리는 경향이 있다.
-미·중 갈등에서 주목해야 할 건 무엇인가.
△단연 경제다. 경제 갈등은 훨씬 첨예해질 것이다. 대만 혹은 인권 문제는 정치적 의제이기 때문에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두 나라가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다. 그러나 경제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이건 앞으로 미국과 중국의 미래와 직결돼 있다.
-외교 현장에서 체감도가 더 커졌나.
△제가 실리콘밸리 인근에 있어 더 그럴 수 있다. 트럼프 정부 때는 동북아를 보면 북한 얘기를 많이 했지만, 지금은 중국밖에 없다. 미국에서 중국과 일하는 회사 혹은 학교는 기술 유출 문제 때문에 미국 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실제 정부가 조사를 많이 한다. 중국과 일을 함께 하는 것 자체를 두고 국가 안보와 연관돼 있다고 보는 시각이 많아졌다. 특히 과학기술 분야가 그렇다. 미·중의 기술·경제 갈등은 단순한 정치 레토릭이 아니다.
-바이든 정부 들어 중국 기업 때리기가 세지고 있다.
△그렇다. 트럼프 정부 때보다 바이든 정부다 더 세다. (예컨대 바이든 정부는 중국에 첨단 반도체 장비 수출을 금지시켰고, 반도체 공급망 재편을 명목으로 주요 기업들을 미국 쪽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첨단산업들, 특히 인공지능(AI) 혹은 자율주행 같은 산업은 미국과 중국의 경제 미래가 걸린 지점이다. 미국이 양보하기 어렵다.
◇‘안미경중’ 패러다임 시효 끝났다
-이번 정상회담의 주요 화두가 대만 문제였다.
△서로 입장을 천명한 정도다. 미국 민주당이 공화당에 비해 중국에 대해 덜 강경하다는 인식이 많은데, 바이든 대통령은 그걸 의식해서인지 대만 의제를 압박하는 것 같다. 중국 역시 마찬가지다. 현재 경기 둔화와 코로나19 확산으로 중국 내 사정이 썩 좋지 않다. 이럴 때 대만과 긴장 관계가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군사적 충돌 가능성은 어떻게 보나.
△일부에서 대만을 중심으로 미·중 군사적 충돌 가능성 있다는 사람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 정도까지 예상하지는 않는다. 긴장 관계가 지속할 것은 분명하지만, 물리적으로 부딪히지는 않을 것이다. 정치적 의제이기 때문에 두 나라가 조절할 것이다.
-내년에 ‘시진핑 3기’까지 들어서는 상황이어서 한국은 고민이 크다.
△그렇다. 일단 안미경중 패러다임은 이미 시효가 끝났다. 경제가 안보화 하고 있어, 둘은 점점 밀접해지고 있다. 떼어내서 생각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단순한 안미경중 논리를 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고민해야 하는 게 한국 정부의 최대 과제다.
-어떤 방안이 있을까.
△일본과 호주를 잘 지켜볼 필요가 있다. 두 나라는 미국과 동맹 관계에 있으면서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크다. 호주에는 중국 유학생도 많다. 한국과 비슷하다. 그런데 호주가 지난해부터 중국을 상대로 강하게 나간다. (호주는 지난해 4월 코로나19 발원지에 대해 국제 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중국을 겨냥했고, 이에 중국은 호주산 쇠고기 수입을 규제하고 호주산 보리와 와인에 잇따라 반덤핑 관세를 부과했다.) 일본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안보 전략의 요체인 쿼드는 미국을 비롯해 인도, 일본, 호주로 구성돼 있다.) 두 나라를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중국에 할 말은 하는’ 일본·호주
-안미경중을 넘는 패러다임은 어떤 것인가.
△중국과 싸우자는 게 아니다. 안보화하는 경제 분야는 미국과 같이 갈 수밖에 없지만, 그렇지 않은 소비재 같은 분야는 중국과 거리를 둘 필요가 없다. 안보와 직결된 경제 문제들은 동맹과 같이 가더라도 나머지는 중국과 적극 협력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물론 어려운 얘기다. 2017년 당시 중국으로부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을 당했던 기억도 있지 않나. 그러나 (일본, 호주처럼) 일정 부분 타격을 감수하더라도 이제는 원칙을 정할 때가 됐다. 그 연장선 상에서 일본, 호주와 더 협력해야 한다. 특히 일본과 관계 개선이 중요하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한국의 위치는 어느 정도인가.
△전적으로 인도, 일본, 호주 위주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언제부터인가 한국 얘기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한국의 입장이 애매하기 때문이다. 미국 내에서는 한국이 너무 친중국 아니냐는 의심도 있다.
-지금 한국은 대선이 한창이다.
△외교안보의 기본 원칙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주요 후보들 모두 외교안보에 식견이 높다고 보기는 어렵다 보니, 차기 정부에서 (한국의 외교적 위상을) 회복할 수 있을지 걱정이 있다. 특히 갈수록 해외 사업을 해야 하는 기업인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큰 틀의 국제 질서 속에서 한국 경제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 지 고민할 때다.
◇신기욱 소장은
△1961년생 △연세대 사회학과 △미국 워싱턴대 대학원 사회학 석·박사 △아이오와대 교수 △UCLA 교수 △스탠퍼드대 교수(스탠퍼드대 인문사회과학대 첫 한국인 종신 교수)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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