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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금융안에 반대표를 던지면서 총리에 힘을 실어준 그리스 국민들은 더 가혹한 개혁안에 서명하고 돌아온 치프라스 총리에 실망하며 강력한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정치권 내에서의 반발도 거세다. 연정 내 소수당인 독립그리스인당을 이끄는 파노스 카메노스 국방장관은 합의안에 대해 “독일과 연합군에 의해 쿠데타를 당한 것”이라고 강도 높게 발언했다.
지난 11일 치프라스 총리가 제안한 개혁안 표결 때 찬성표를 던졌던 카메노스 장관이 이같은 발언을 내놓은 것은 새 개혁안 입법화가 녹록지 않으리라는 점을 시시한다.
당시에도 시리자 내 좌파연대 의원 17명은 찬성표를 던지지 않아 채권단이 요구한 15일 기한 내에 새 개혁안 입법화가 가능할지 의문이다.
현재 그리스 의회 300석 가운데 시리자는 149석을 차지하고 있다. 그동안 13석을 가진 독립그리스인당과 연정을 통해 과반 이상을 확보했다. 그러나 지난번 개혁안 표결 때 반기를 든 17명이 이탈할 경우 과반 밑으로 떨어지게 된다.
이에 따라 치프라스 총리는 본인의 정당인 시리자 내 급진좌파 세력보다 야당의 지지에 의지해야 할 상황이다. 시리자 내 좌파연대 소속 의원들은 공개적으로 그리스가 유로존을 떠나는 것이 낫다고 발언해온 만큼 반대표를 던질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만일 시리자 내에서 지지를 얻지 못하면 치프라스 총리에 대한 재신임 투표로 이어질 수 있다. 이미 그리스 여론이 악화할 대로 악화한 만큼 재신임 투표가 치프라스의 승리로 끝날 가능성은 희박하다.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치프라스 총리가 취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개각이다. 극단적인 성향의 장관을 배제하고 중도진영으로 내각을 구성하는 것이다.
또 그리스의 유로존 잔류를 지지하는 다른 정당과 연대해 거국내각을 꾸리는 것도 방법이다. 현재 76석을 보유하고 있는 보수성향의 신민당(ND)과 중도성향의 토포타미(To Potami, 17석), 사회당(PASOK, 13석) 등은 친유럽연합(EU) 성향을 띠고 있다.
개혁안과 구제금융 협상안에 대한 타결을 반긴 만큼 이들과의 연대는 어느 정도 실현 가능성이 있다.
에반겔로스 메이마라키스 신민당 당수는 “협상 타결로 인해 그리스는 대재앙을 피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고, 스타브로스 데오도라키스 토포타미 당수 역시 “협상안에는 고통스러운 개혁안이 담겨 있고 그리스 국민의 새로운 희생을 필요로 하지만 결단력 있게 개혁안을 실행해야 할 시기”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리스가 정치적으로 상당히 분열돼 있기 때문에 거국 내각 구성이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과거 거국 내각은 긴급 상황에서나 가능했던 흔치 않은 일이었다. 지난 2011~2012년 루카스 파파데모스 당시 총리가 첫 번째 구제금융을 추진할 때 보여줬던 연대가 마지막이었다.
이것도 불가능하다면 조기총선 카드를 꺼내 들 수도 있다. 일단 3차 구제금융을 받고 나서 9월 조기총선을 치르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이 시나리오는 가능성이 크지 않다.
마지막으로 이도 저도 안될 경우 사임을 택할 수도 있다. 개혁안 입법에 실패하고 유로존으로부터 구제금융 지원을 못 받을 경우 결국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하는 것이다.
뉴욕타임즈는 과연 치프라스 총리가 새 정부 구성이나 조기총선, 사임 없이 개혁안을 통과시킬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