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서는 미 달러화 대비 중국 위안화가 3.2% 가량 오른 것을 제외하곤 거의 모든 이머징 통화가치가 떨어졌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이달만 해도 브라질 헤알화와 남아공 랜드화, 폴란드 즐로티화 가치가 모두 9% 이상 하락했다. 헝가리 포린트화는 10% 이상 급락했다. 이머징 시장 탈출 러시를 주도하고 있는 것은 헤지펀드를 비롯한 단기 투자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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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이머징 통화가 약세를 거듭하고 있는 건 근본적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재정위기와 날이 갈수록 심화되는 미 경기 둔화에 대한 우려를 꼽을 수 있다. 이는 안전자산에 대한 투자 수요를 촉발시켜 이머징 자금 유출의 직접적 원인이 되고 있다.
이머징 국가로선 다소 억울할 수 있다. 유로존 위기와 미 경기후퇴가 글로벌 전체 경제의 둔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고는 하나 현재 이머징 국가들의 경제 상황은 투자자들이 우려하는 것처럼 심각하지 않은데다 상당수의 국가가 과거 금융위기를 겪으며 위기 극복 능력을 키워왔다는 이유에서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글로벌 금융시장의 동요와 성장 둔화에 대한 걱정을 감안할 때 자본 유출 자체는 이해가 가지만 정도가 지나치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머징 국가 대다수가 여전히 수출에 의존하고 있다는 구조임을 볼 때 완전히 선진국 경기와 디커플링될 순 없는게 사실.
결국 이머징 통화 약세의 지속 여부는 유로존 위기가 얼마나 장기화되느냐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그리스 정부의 부인에도 그리스가 곧 디폴트(채무 불이행)를 선언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인 가운데 위기의 불씨는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 주변국으로 전이되고 있어 통화 약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유럽 재정위기의 조기 해결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에서 그나마 시장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는 것은 미국의 3차 양적완화 카드일 수 있지만 시행 여부가 아직 불확실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달러화 약세로 인한 이머징 통화 강세와 인플레이션 압력 확대라는 부작용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점에서 마냥 반길 수만은 없다.
이런 점을 인지한 이머징 국가들은 자본 유출입에 따른 통화 가치 급변을 막기 위한 자구책 마련에 분주하다. 대표적인 나라는 한국이다. 한국은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비교하면 외환 및 자본시장 개방도가 높고, 외국인 투자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근래 들어 대규모 자본 이탈이 심각하다. 이에 정부는 외환시장에 대한 구두 개입 등의 시장안정화 조치를 취하고 있다. 동시에 투기 자금 유입도 막으려 우리나라에서 발행되는 외화채권, 이른바 `김치본드`에 대한 세금 부과 등을 추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