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 “꿈이었던 간호사…지금은 간호사를 그만두는 게 꿈”

박철근 기자I 2021.08.29 23:00:00

내달 2일 파업 앞둔 보건의료노조 소속 김정은 간호사 인터뷰
“신발에 찬 땀이 넘치니 환자는 오줌싼거냐며 묻기도 해”
“동료들 생각에 아프거나 쉬고 싶어도 참고 일하는 게 현실”

[이데일리 박철근 기자] “우리 꿈은 간호사였습니다. 그런데 간호사가 되고 난 후에는 간호사를 그만두는 것이 꿈이 되었습니다.”

김정은(42·여) 서울서남병원 간호사는 코로나19 대유행속에서 파업을 앞둔 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 소속 동료 의료인력들의 마음도 편치만은 않다고 토로했다. 의료인력이 없으면 코로나로 고통받는 환자들이 겪어야 할 불편함과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파업이라는 마지막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건 그만큼 열악한 근무환경을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어서다.

올해 간호사 생활 19년차를 맞는 베테랑 김 간호사. 그는 29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그동안의 설움을 잔잔히 쏟아냈다. 그는 “코로나19사태의 장기화로 그동안 누적됐던 의료현장의 문제점들이 한꺼번에 노출되고 있다”며 “이젠 한계에 봉착했다”고 강조했다.

전국 각지에 마련된 선별진료소에 있는 보건의료인력들이 더위와 과로에 지쳐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식사는 하는게 아니라 마시는 것”

“레벨D 방호복을 입는 데에만 5~10분이 걸립니다. 입는 순간부터 몸에 땀이 나기 시작합니다.”

김 간호사는 “하루종일 방호복을 입고 일을 하다보면 신발에 땀이 차 넘칠 정도로 물이 새어나온 적도 있다”며 “환자들로부터 오줌쌌냐는 소리를 들은 적도 있다”고 고개를 저었다. 코로나 환자들을 간호하면서 근무시간에 짬을 내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건 사치에 가깝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방호복을 입고 나면 환자에게 줄 식사와 약, 기타 처치할 것을 챙겨갑니다. 의료폐기물을 폐기물 버리는 공간으로 옮기고 환자분에게 식사와 약을 나눠드리고 간단하게 청소를합니다. 환자 상태를 파악해야 하고 주사를 놓고 잘 들어가는지도 확인하면서 청소 및 주변 정리를 하다보면 진이 빠집니다”라고 했다. 이어 “업무를 도와주는 기능원들이 병동마다 낮 시간에 1~2명씩 상주해있지만 대부분 나이가 많은 분들이기 때문에 간호사들이 이들 업무가지 같이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간호사는 “업무 인수인계, 약 준비, 검사결과 확인 등 많은 업무를 하다보면 마음 편하게 식사하기도 어렵다”며 “우리는 식사를 하는게 아니라 ‘식사를 마신다’라는 표현을 쓴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서울 송파구 보건소에 설치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선별검사소에서 방호복을 입은 관계자들이 분주하게 업무를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동료에게 미안해 아프다는 말도 못해”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일하는 30대 간호사 A씨도 이날 인터뷰에서 고충을 토로했다. 그는 “반신불수 환자를 돌보다 어깨를 다쳐 오른쪽 어깨가 아예 올라가지 않는다”며 “혼자 속옷도 갈아입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아파도 아프다는 말을, 쉬고 싶어도 쉬겠다는 말을 주변에 하기 어렵다는데 있다. .

“후배 간호사 중에 코로나 확진판정을 받은 사람도 있습니다. 코로나에 감염되서 병원에 피해를 끼쳤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이 친구는 차마 가족들에게 환자를 돌보다가 감염됐다는 말도 못하는 상황입니다.”

40대 간호사 B씨는 소소한 일상은 포기한 지 오래라고 전했다.

“지난해 국내에 코로나 환자가 본격적으로 나오면서 주말이나 명절에 일가친척과 만나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소소한 일상조차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과중한 업무로 쉬는 날은 오롯이 휴식만 취합니다. 감염병 환자들을 전담하다보니 혹여 주변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게 아닐까 걱정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인터뷰에 응한 간호사들은 보건의료인력이 힘든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김 간호사는 “간호사는 환자를 돌보는 기본적인 업무뿐만이 아니라 검사, 배식, 청소 등 모든 업무에 발을 걸치고 있다”며 “허리나 관절쪽 통증은 부지기수고 최근 코로나 사태로 어지러움, 탈진 등의 증상을 겪는 보건의료인력도 많다”고 전했다.

◇근무환경 개선→환자가 안전한 환경 만드는 것

그는 “늘 환자를 생각해서 희생과 봉사를 강요받다보니 이 상황까지 온 것 같다”며 “주변에서는 ‘힘들면 그만둬라’라고들 하는데 그렇게 간호사들이 하나둘씩 그만두다보니 남은 간호사들이 고강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A 간호사도 “후배들에게 ‘내가 건강해야 환자를 잘 돌볼 수 있다’라고 말을 하지만 언제까지 이 말을 지킬 수 있을지 솔직히 자신이 없다”고 했다.

간호사들은 “인력확충과 처우개선을 통해 보건의료인력이 늘어난다면 환자들에게 더 안전한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라며 “파업이 당장의 불편을 초래할 수 있지만 더 좋은 환경에서 환자들이 치료를 받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김 간호사는 “정부와 국민 모두 ‘오죽했으면 파업을 할까’라고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다”며 “더 빠른 해결을 위해 정부가 움직여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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