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현대산업(012630)개발이 수주한 ‘논현동 렉스타워’ 신축공사 현장으로 앞으로 16개월간 지하 4층~지상 18층 규모 건물을 새로 짓게 된다. 얼마 전 렉스타워 현장소장으로 임명된 박 부장은 매일 아침 7시면 출근해 업무를 시작한다. 여성이 현장소장을 맡은 것은 현대산업개발 창립 이래 최초다. 소위 1군 업체라고 부르는 시공능력평가 100위내 건설사를 통틀어도 처음이다.
그가 건축일을 처음 꿈꾸게 된 것은 길에 초등학교때 동네 미술학원에서 그림을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건축업을 하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미술을 하면 같은 예술 분야인 건축도 할 수 있다고 여긴 그는 결국 홍익대 건축과에 입학하게 됐다. 이후 1994년 아버지의 권유로 현대그룹 공채에 지원했고 현대산업개발 1기로 건축업에 발을 들였다.
그는 “원래 시공보다는 설계를 할 생각에 1지망으로 현대산업개발을 써냈다”며 “1지망이 안되면 2~3지망으로 가구 디자인을 할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설계를 하려던 그의 바람과는 달리 첫 발령지는 경기 일산의 아파트 공사 현장이었다. 당시 입사 동기 30명 중 여자는 단 3명뿐이었고 여직원이 입사했다고 타부서에서 구경을 오던 시절이었다. 일산 현장에서 만난 인부들과 선배들은 ‘여자가 얼마나 버틸 수 있겠느냐’며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그러나 새벽 5시에 서울 발산동 집을 나서 일산 현장으로 출근해 밤 9시에 돌아오는 강행군을 그는 묵묵히 견뎠다. 그리고 1년이 지났을 무렵 당시 견적팀 부장이었던 이천봉(62) 전 현대산업개발 상무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이 전 상무는 “건축을 내 밑에서 제대로 한번 배워보지 않겠느냐”며 그를 견적팀으로 불러들였다.
그는 견적팀에서 야근과 철야, 주말 근무를 밥 먹듯 했지만 휴일에도 길에서 본 건물의 가치를 직접 계산해볼 정도로 일에 푹 빠져 들었다. 그렇게 6년을 견적팀에서 근무한 그는 어느 순간 친구와의 수다보다 직원들과의 술자리가 편한 ‘건축쟁이’가 돼 있었다. 견적팀을 떠난 후에는 건설사의 특성상 여성이 견디기 힘든 지방 근무가 잦았다. 가깝게는 분당, 멀게는 제주도까지 혼자 방을 얻어 자취하며 현장을 익혀나갔다.
그는 “현장에선 하루 세끼를 다 사먹고 저녁에는 삼겹살에 소주잔을 기울이는 경우가 많았다”며 “오래간만에 집에 오면 어머니는 딸이 고생한다며 고기를 구워주셨는데, 늘 먹는 고기보다는 나물무침이 더 먹고 싶었다”고 했다.
대학 졸업 후 20년이 지난 현재 건축과 여자 동기 중 현장 근무를 하는 경우는 그가 유일하다. 일에 빠져 산 덕분에 그는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골드미스다. 그는 입사 19년 만에 건설사의 꽃이라 불리는 현장소장이 됐지만 기쁨보다 여성 최초라는 책임감이 더 크다고 말한다.
그는 “제가 입사한 이후 많은 여자 후배들이 입사했지만 여전히 현장에선 여자를 보기가 쉽지 않다”며 “첫 여성 소장으로서 맡은 공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 해 앞으로 더 많은 여성들이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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