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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극적인 단일화로 꼽히는 선거는 2002년 대선에서의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와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 간 단일화다. 두 후보는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에 밀려 있었다. 이에 노 후보와 정 후보는 줄다리기 협상 끝에 후보 등록 전 여론조사를 통해 단일화하기로 합의했다. 그 결과 노 후보가 앞서면서 단일 후보로 선출됐다. 이후 정 후보는 노 후보를 위해 지지 유세를 다니기도 했지만 선거 전날 저녁 지지를 철회했다. 노 후보는 지지철회에도 이 후보를 2.3%포인트 차로 제쳤다.
단일화가 승리로 이어지는 보증수표는 아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2년 대선이다. 당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는 후보등록 직전까지 단일화 협상을 벌였다. 안 후보는 후보 등록 직전인 그해 11월 23일 문 후보 지지를 선언하면서 후보에서 사퇴했다. 문 후보는 이 선거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에게 3.5%포인트 차로 패했다. 안 후보의 중도사퇴 형식으로 문 후보의 단일화가 이뤄지면서 효과도 반감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진보진영의 전유물이었던 후보 단일화는 2017년 대선을 계기로 보수진영에서도 논의에 나섰다. 정치구도의 변형으로 보수진영이 불리해지면서 단일화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에 2017년 19대 대선에서는 자유한국당 홍준표,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 간 단일화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이번 대선에서는 윤 후보와 안 후보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고, 보수진영에서 단일화 요구가 높은 만큼 성사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