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권효중 기자] 공모 규모 1조원 이상의 하반기 유가증권시장(코스피) 기업공개(IPO) 대어들이 잇따라 금융당국의 증권신고서 정정 요구에 따라 상장 일정에 제동이 걸리고 있다. ‘투자자 보호’라는 원칙에 입각, 증권신고서 상 매출 규정과 기업가치 산정의 근거 등을 보다 명확하게 서술하라는 요구지만, 실질적으로 공모가 하향이 이뤄지고 있는 만큼 공모 가격 산출 과정에서 금융당국과 시장의 역할이 각각 어디까지인지에 대해서 ‘갑론을박’도 벌어지고 있다.
18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금감원은 지난 16일 카카오페이에 증권신고서 정정을 요구했다. 앞서 카카오페이는 지난 2일 증권신고서를 제출했지만, 금감원 측은 투자자의 합리적인 투자 판단을 위해 증권신고서의 정정 필요성을 지적했다. 이에 오는 8월 초로 목표했던 기존 상장 일정은 약 2주간 미뤄지는 것이 불가피할 예정이다.
카카오페이는 정량적인 가치 평가가 어려운 ‘플랫폼’ 서비스 기업인데다가 카카오뱅크와 마찬가지로 기존 금융·핀테크 기업들과는 다른 방식의 가치 평가가 이뤄진 만큼 공모가 낮추기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이에 일각에서는 공모가 결정과 기업 가치 평가는 ‘시장의 몫’인데, 당국이 과도한 개입에 나선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최근 금융당국의 정정 요청은 명시적이진 않지만, ‘공모가 하향’에 대한 압박의 신호로 읽힐 소지가 있다. 하반기 상장을 목표로 카카오페이보다 앞서 증권신고서를 제출했던 코스피 대어들은 모두 금융당국으로부터 증권신고서 요청을 받아 공모가를 낮췄다. 지난 16일 상장한 에스디바이오센서(137310)는 두 차례에 걸쳐 증권신고서 정정 요구에 공모가 희망 밴드를 기존보다 약 30% 낮춰 잡았으며, 현재 기관 대상 수요예측을 진행 중인 크래프톤 역시 한 차례 정정 요청을 받자 공모가를 10% 가량 낮춰잡았다.
이 과정에서는 기업가치 산정을 위한 비교 기업들의 면면이 달라졌다. 에스디바이오센서의 경우 국내 중소형 진단키트 종목들인 진매트릭스(109820), 랩지노믹스(084650) 등을 추가했고, 크래프톤 역시 주가수익비율(PER)이 높았던 월트 디즈니, 워너뮤직 등 글로벌 기업들을 제외했는데, 비교 대상이 달라지는 과정에서 공모가 하향이 이뤄진 만큼 금융당국의 요구가 실질적인 ‘공모가 하향’ 압박으로 읽힐 수 있다는 해석이다.
다만 금융감독원은 증권신고서 정정 요구의 근거로 ‘투자자 보호’라는 원칙을 거듭 강조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IPO가 크게 늘어났고, 기업 가치를 쉽게 평가하기 어려운 기술특례상장 등도 많이 늘어났다”며 “여기에 투자를 아예 처음 시작해 경험이 부족한 신규 투자자들도 유입되면서 모호하거나 불충분한 서술 등을 적극적으로 들여다보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