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성인용품점을 차린다고 했을 때 많은 이들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여태까지 섹스토이샵은 여성이 운영하긴커녕 구매자로 들어가기에도 두려울 정도로 음습한 곳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새빨간 ‘성인용품’이란 문구, 외부에서 들여다볼 수 없게 불투명 시트지로 발라놓은 유리창, 지하나 구석 자리 등 음습한 위치 등의 불안 요소가 그나마 여자들이 가지고 있던 섹스토이에 대한 호기심마저 달아나게 만들었다. 그런데 여자 둘이서 성적 만족을 위한 기기를 판매하겠다니, 이상한 사람들이 꼬일 게 뻔하지 않은가.
패기있게 프로젝트를 시작했지만, 이런저런 걱정도 든 것도 사실이었다. 섹스토이를 판매한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우리를 멋대로 재단하는 것은 무시하되, 신변에 따를 수도 있는 위험에 대해선 확실히 대비하기로 마음먹었다. 가게 안팎을 구석구석 다 비출 수 있도록 CCTV를 여러 대 달고, 비상 버튼도 곳곳에 설치했다. 또 언제나 두 명 이상이 같이 마감을 하기로 작정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객이 우리에게 불쾌감을 주는 언행을 할 시 단호하게 판매를 거절하고, 때에 따라 법적 절차를 밟기로 마음먹었다. 쉽지 않은 길을 가며 자존감을 단단히 지키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창업 후 반년, 온·오프라인으로 참 다양한 고객들을 만났다. 여성들이 우리의 주 고객층인 탓일까, 온종일 섹스토이 구매 상담을 하고 섹스를 논하면서도 불편했던 경험이 다행히도 손에 꼽을 정도다. 그리고 대부분의 무례한 경우는 다 남성 손님과 소통하다가 겪은 일이다. 이런 일화들은 피식하고 가볍게 웃을 일에서 등 뒤에 식은땀 나는 경험까지 다양하다.
한번은 멜섭(Submissive Male, 피학대성 성욕을 가진 남성) 남성의 문의전화를 받았다. 수줍은 목소리로 자신의 ‘주인님’이 입을만한 의상이나 아이템을 찾던 이 청년은 이윽고 “플레져랩 매장에서 혹시 ‘펨돔(Dominant Female, 가학성 성욕을 가진 여성)을 연결해주거나 하진 않느냐”고 물었다. 그런 커뮤니티 서비스는 제공하지 않는다고 하자, 그렇다면 매장을 운영하는 사장들은 혹시 그런 기질이 있진 않은 지 물어봤다. 새려는 웃음을 참으며 “주인님 아닙니다,” 하며 전화를 끊었다. 다른 회사에선 ’주임님‘을 찾겠지만, 여기선 ’주인님‘을 찾는다고 생각하니 실소가 나왔다.
그 다음 주 정도에 또 다른 사람이 문의를 해왔다. 전립선염으로 병원 치료를 받았는데 이후 계속 전립선 마사지를 할 기기를 찾는다는 것이었다. 이 남성은 문자로 문의를 해왔는데, 그래서인지 질문의 뉘앙스를 바로 알아채기 어려웠다. 평범하게 제품추천과 응답 등 대화가 이어지다가 그는 물었다. “저 제가 항문 크기가 좀 걱정이 되어서요…” 여기서 감이 오려는 찰나, 이어지는 그의 문자, “죄송한데 제 항문 크기를 봐주실 수 있으신가요?” 이번엔 폭소가 터졌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였다. 아, 그가 진심으로 자기 항문 크기를 우려했다는 합리적인 의심을 해주고 싶지만, 굳게 닫힌 엉덩이 사진을 보고 과연 우리가 어떤 조언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가 자신의 신체를 우리한테 보여주고 쾌감을 느끼려 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앞의 사례들은 ‘귀여운’ 정도지만, 식겁했던 일도 있었다. 한 남성이 집요하게 가게로 연락해온 일이 있었는데 말이 안 통해서 정말 곤혹스러웠다. 며칠간 계속 다른 사람인 척하면서 전화로, 카톡으로, 온라인 게시판으로 접근해왔지만 몇 마디 이야기를 들어보면 같은 사람이었다. 구매 문의를 빙자해 우리에게 반응을 끌어내는 것을 즐거워하는 것 같아 심히 불쾌했다. 결국, 한번 더 연락하면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최종 통보를 했는데, “아뿔사” 이 사람은 우리가 문자로 통보를 한 당일 저녁 합정역 매장으로 찾아왔다. 경비업체와 경찰이 달려왔고, 한바탕 소란이 있었다.
이런 일을 몇 번 겪고 나니 이제는 서너 마디만 나눠봐도 물건 구매가 목적인지 다른 의도가 있는지에 대한 느낌이 바로 온다. 어쩔 수 없이 방어적이 되는데, 해가 진 후 조금 미심쩍어 보이는 남자 손님이 매장에 들어오면 맞이하는 동시에 휴대용 비상 버튼 쪽으로 손이 먼저 간다. 절대 유쾌하지 않은 기분이다.
그래도 굴하지 않고 당당히 우리의 일을 계속하는 것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은 우리가 아니라 우리를 비틀린 성욕 충족의 엑스트라로 삼는, 남의 업(業)을 업신여기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마주치게 될 무뢰한들을 생각하면 한숨이 나오기도 하지만, 성인용품을 파는 여성뿐 아니라 그 어떤 여성도 성희롱의 대상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사회의 상식이 될 때까지, 우리는 웃으면서 섹스토이를 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