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지영한 윤진섭 이태호기자] 정부가 국민통합과 경제살리기 차원에서 기업인들의 특별사면을 검토하고 있다. 이에 따라 관련 기업들이 정부의 움직임과 여론의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기업들은 내심 큰 기대를 가지면서도 ‘불발 가능성’을 의식한 듯 말을 아끼는 분위기이다.
2일 재계에 따르면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 등 주요 기업인에 대한 특별사면이 검토되면서 관련 기업들이 술렁이고 있다. 경제 5단체가 특별사면을 요청한 기업인이 50여명에 달하고 있어, 재계 전반이 특사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 특사 관련 기업들, 기대속 정부 움직임과 여론 지켜보자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인물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재산 국외도피죄 등이 인정돼 실형을 살고 있는 김 회장은 건강 악화로 3개월간 형집행정지 결정을 받은 상태이다. 김 회장의 특사 가능성에 옛 대우그룹 임직원들은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옛 대우그룹 출신으로 GM대우에서 근무중인 한 임원은 “대우에 몸담은 사람들이라면 일부 노조원만 빼면 김우중 회장에 대해 불평내지 불만을 갖고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특사 얘기가 나와 큰 기대를 걸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아직은 확신을 못해 ‘반가움반, 의심반’인 상태라고 덧붙였다.
그는 특히 “김 회장의 경험은 누구도 따라가지 못할 정도”라며 “하루 빨리 사면돼 국가에 기여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건강이 허락되고 본인의 의지가 필요하겠지만, 김 회장의 경험이라면 국내외적으로 큰 공헌이 가능할 것이란 설명이다.
대우증권에서 일하는 한 부장급 인사는 “김 회장의 공(功)과 과(過)를 따져봐야겠지만 그래도 우리나라 경제발전에 크게 기여를 하지 않았느냐”며 “그동안 많은 고통도 받은데다 나이도 많고 건강도 좋지 않은 만큼 국민적인 선처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우중 전 회장 못지 않게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도 재계의 관심대상이다. 물론 두산 임직원들은 박 회장의 특사에 내심 큰 기대를 걸고 있다. 하지만 확신은 못하고 있다. 지난해 광복절과 성탄절 때도 기대와 달리 사면 조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스포츠계에서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인 박용성 전 회장의 특사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IOC 윤리위원회가 오는 3월15일 위원 자격 박탈 여부를 최종 결정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서라도 사면이 꼭 필요하다는 지적이 두산 안팎에서 나온다.
이에 앞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지난달 25일 전경련 회장단 모임에서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예전엔 3명의 IOC 위원이 있었지만 지금은 지금 혼자 활동을 하느라 바쁘다”며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 애로를 겪고 있음을 토로하기도 했다.
대상그룹도 대규모 사면 단행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거론되면서 임창욱 명예회장의 사면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구체적인 언급을 자제하면서도 사면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임 명예회장은 지난 2005년 6월 횡령 혐의로 구속된 뒤 1년7개월째 수감생활 중이다.
현대차그룹은 오는 5일 정몽구 회장의 선고공판을 앞두고 초긴장 상태다. 임직원들은 법원의 결정에 ‘혹’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 말을 극도로 아끼고 있다. 다만 국민통합과 경제살리기 차원에서 타 그룹 기업인에 대한 특사가 검토중인 만큼 정 회장에 대한 선처를 내심 기대하는 분위기이다.
◇ 건설업계도 술렁..“침체된 건설경기 활력 도모” 기대도 나와
경제인 특사를 앞두고 구속 수감자가 상대적으로 많은 건설업계도 술렁이고 있다. 다만 작년 8·15 당시 사면 복권설만 무성하다 수포로 돌아선 적이 있어, 이번 사면 복권에 대해선 말을 최대한 아끼고 있다.
현재 범 건설업계에서 사면 복권이 유력한 인사는 고병우 전 동아건설 회장, 김관수 한화국토개발사장, 김석원 쌍용양회공업 명예회장, 명호근 전 쌍용양회 부회장, 이희헌 전 남광토건 대표,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 정몽헌 한라건설 회장 등 이다.
회사 실명을 감춰달라는 A 건설사 관계자는 “사면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기대감을 언급하는 것은 조심스럽다”고 전제하고, “다만 그 어느 때보다 건설경기가 침체가 예고된 상황에서 개인 비리가 없는 CEO들을 사면해줄 경우 경기 활성화와 해외 수주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신호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은 이날 전경련 이사회에 참석하기에 앞서 이데일리 기자를 만나 주요 경제인들에 대한 특별사면이 검토중인 것에 대한 소감을 묻자 많은면 많을수록 좋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번 특사는 국민통합과 경제살리기의 차원에서 검토중인 만큼 강 회장은 “많은 사람들이 나오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거듭 말했다.
◇ 특별사면 반대기류도..여론에 따라 특사 범위 결정될 듯
그러나 관련 기업들은 내심 기대하면서도 여론의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민통합과 경제살리기란 좋은 명분에도 불구, IMF사태 이후 형성된 반(反) 기업정서가 적지 않은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여론에 따라 특사의 범위가 결정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나경원 한나라당 대변인은 지난 달 31일 "사면권 남용은 법치주의의 근간을 훼손하는 것으로 신중을 기해야 한다"며 최근 정부의 특별사면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사면대상에 경제인 뿐만 아니라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 정치인이 포함된데 대한 경계감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지난 1일 공식입장을 통해 "특별사면을 남발하게 되면 사법정의가 훼손된다"며 경제인 및 정치인 특사에 반대의견을 분명히 했다. 경실련은 "사법정의는 일반 서민이든, 대재벌 총수든 사회적 지위를 막론하고 죄를 지으면 그 죄값만큼 벌을 받게 하는 것"이라며 특사 반대의사를 거듭 강조했다.
한편 경제5단체가 정부에 특사를 요청한 경제인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 장진호 전 진로그룹 회장,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 임창욱 대상그룹 명예회장 임창욱 대상그룹 명예회장 등 분식회계 등 관련자 51명과 고병우 전 동아건설 회장, 김관수 한화국토개발 사장 등 정치자금법 위반자 8명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