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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개혁 현주소]②`서오남`의 대명사 대법관은 어떤 자리

이성기 기자I 2020.04.02 09:17:40

취임 하루만 즐겁고 6년은 힘들다…업무량 과중
인용 확률 낮은 무익한 상고, 무분별하게 올라온 탓
그나마 경력 10년 이상 재판연구관 120명이 조력

[이데일리 남궁민관 이성기 기자] 상고제도 개선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 것은 현재 대법원 구성상 물리적인 한계 탓이 크다.

29일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2018년 기준 대법원에 접수된 상고심 본안 사건은 4만7979건. 기존 최대치였던 전년(4만6412건)에 비해 1567건 늘어났다. 2014년 3만7652건과 비교하면 1만건 이상 증가했고, 1990년에 비해만 5배가 넘는다.

재판에 참여하지 않는 법원행정처장과 전원합의체 선고 사건에만 참여하는 대법원장을 제외하고 3개의 소부(小部)를 구성하는 대법관 1인당 1년에 4000건에 가까운 사건을 처리해야 하는 셈이다. 흔히들 대법관을 두고 `취임 하루만 즐겁고 6년이 힘들다`고 하는 이유다.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을 거쳐 대법관을 지낸 박일환(69·사법연수원 5기) 법무법인 바른 고문 변호사는 “1년 열 두 달 쉴 틈이 없다. 혹시 몸이 아프기라도해서 공백이 생기면 안 되니 심리적 부담감이 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고 돌이켰다.

김명수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이 지난 1월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전원합의체 선고를 위해 입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사실과 법률 문제 모두를 따지는 사실심(事實審)인 1·2심과 달리 대법원은 법리 잘못이 있는지만을 검토하는 법률심(法律審)이다. 사안에 따라 법률관계를 명확히 하기 위해 관련 전문가 및 참고인을 출석시켜 의견을 청취하는 공개변론을 여는 경우는 있다.

대부분의 상고심 사건은 대법관 4명으로 구성되는 소부에서 심리한다. 기존 판례를 변경하거나 소부 구성 대법관들 사이에 합의가 안 되는 사건, 사회적으로 파급력이 큰 사건들은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이 함께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에서 심리한다.

인용 가능성이 없는 무익한 상고들까지 걸러지지 않고 문을 두드리면서 대법원의 부담도 점점 커지고 있다. 지난 2006년 이후 1심 사건은 거의 제자리 수준이지만, 대법원까지 올라오는 사건은 거의 두 배 가까이에 늘면서 매년 상고율도 높아지고 있다. 법조계에선 현 제도로는 국민적 관심이 많은 사건, 이념과 가치관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건을 충실하게 심리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기록에 치여 산다`할 정도로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지만, 그나마 사건 처리가 가능한 것은 재판연구관들의 조력 덕분이다. 법원장급인 수석 재판연구관과 선임 재판연구관을 제외하고도 대법원에는 사건 연구 검토를 맡는 120명의 재판연구관들이 있다. 대법관마다 2명씩 두는 전속 연구관 24명, 민사·형사·상사·조세·지재 등 총 9개 전문 분야별 공동조 연구관이 71명, 비법조인인 파견·전문직 연구관이 25명이다.

이들은 `막내`가 10년차 정도이고 20년 가까이 근무한 베테랑들이다. 재판장 14명을 포함해 111명인 서울고법과 맞먹는 수준의 인력이 보조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를 두고 변호사들 사이에선 `대법관 재판인지 연구관 재판인지 모르겠다`는 푸념도 나온다.

이렇다보니 2016년 이후 심리불속행 기각률도 3년 연속 70% 이상을 기록했다. 기존의 상고허가제가 폐지되고 상고심 절차에 관한 특례법에 의해 1994년 도입된 심리불속행 제도는 형사 사건을 제외한 사건 중 상고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되는 경우 더이상 심리하지 않고 기각하는 것이다.

법조계에선 이유도 모른 채 사법적 구제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헌법재판소는 최근 심리불속행 제도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을 전원재판부에 회부키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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