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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합병史 전환점 만든 유재한 사장

이학선 기자I 2011.01.24 12:16:02

"이해관계 복잡할수록 시장 따라야"
자금조달 투명성 등 새 기준 제시
..유재한 정책금융공사 사장 신년인터뷰

[이데일리 이학선 기자] "지난 얘기를 다시 꺼내서 좋을 게 뭐 있습니까. 매각이 종료되면 그 때 합시다"

유재한 한국정책금융공사 사장은 현대건설(000720) 매각에 대한 말을 아끼려했다. 매각이 끝났다면 모를까 현대차(005380)그룹과 협상이 진행 중인 사안을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이유에서다. 물론 현대건설 인수에 고배를 마신 현대그룹을 자극하지 않겠다는 의도가 더 컸다.
 
유 사장은 현대건설 매각 물꼬를 바꾼 사람 가운데 하나다. 현대그룹의 인수자금 출처에 대한 논란이 확산되자 이를 증빙할 수 있는 서류제출을 요구했고 현대그룹이 응하지 않자 우선협상자 지위를 박탈했다. 현대그룹으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은 것은 당연한 일. 현대그룹은 "저의가 의심스럽다", "짜여진 각본"이라며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냈다.
 
▲ "문제제기도 시장이 했고 판단도 시장이 한 것입니다" 유재한 사장은 현대건설 매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시장이 인정할 수 있는 자금조달의 투명성이 필요했다는 설명이다.(사진=한대욱 기자)

"절차나 법적인 문제를 떠나 시장에서 자금출처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는 것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문제제기도 시장이 했고 판단도 시장이 한 것입니다.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있을수록 시장의 판단에 따라야 합니다"
 
현대건설 매각을 둘러싸고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하지만 이번 매각이 국내 인수합병사(史)의 분수령이 될 것임은 분명해 보였다. 적어도 공적자금이 투입된 회사를 인수할 경우 `승자의 저주` 우려를 씻을 만큼 자금의 투명성과 조달능력을 갖춰야한다는 선례를 남겼기 때문이다. 유 사장은 현대차그룹과 양해각서(MOU)를 맺을 때도 "현대그룹과 동등하게 진행하라고 했다"며 "(MOU조항이) 더 강화됐으면 강화됐지 약해진 부분은 없다"고 했다.

유 사장이 현대건설 매각에서 뚝심을 발휘한 배경은 그의 이력을 더듬어보면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정통 재무관료 출신이지만 다른 누구보다 시장을 가깝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누렸다.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를 전후해 재정경제부에서 금융구조조정의 실무를 담당했고, 지난 2002년 공적자금관리위원회 사무국장 시절에는 서울은행·대한생명·조흥은행 등 굵직한 인수합병(M&A)을 성사시켰다. 정책목표와 시장이 원하는 바를 절충하는 작업을 주로 맡았다.

현대그룹의 인수무산에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소문이 돈 것은 잠시나마 정치권에 몸담았던 유 사장의 이력과 무관치않다. 그는 지난 2008년 총선 때 대구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출사표를 던졌으나 고배를 마셨다. 이후 한나라당 정책실장으로 있으면서 정부와 여당간 금융위기 대책을 조율하는 역할을 했다.
 
▲ 유재한 사장은 관료출신으로서 정책목표와 시장이 원하는 바를 조율하는 역할을 맡아왔다. 한때 정치권에 몸담기도 했다.(사진=한대욱 기자)
현대건설을 비롯해 하이닉스(000660),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지분매각으로 인터뷰 질문이 이어지자 유 사장은 "그런 것보다 올해 우리가 중점으로 추진하려는 게 뭔지를 물어봐달라"고 했다. 정책금융공사 본연의 업무가 있는데 언론에 M&A 관련 이슈만 다뤄질 것을 걱정했던 모양이다.

정책금융공사는 중소기업 육성이나 지역개발, 사회기반시설 확충. 신성장동력산업 육성 등을 설립목적으로 하고 있다. 올해 총 9조원을 이런 사업에 투자할 계획인데 이 가운데 절반가량인 4조2000억원을 중소·중견기업을 위해 사용할 예정이다.
 
유 사장은 "한정된 재원으로 얼마나 효과적으로 지원을 하느냐가 관건"이라며 "자금을 지원할 때도 일자리 창출기업을 우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인터뷰를 끝낼 무렵 `지난해말에 비해 덜 바쁘니 좋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신문보는 재미가 없다"는 농담반 진담반 답이 돌아왔다. 신문을 보면 쓴소리도 많지만 매각 관련 이슈를 챙겨보지 않을 수 없었는데, 요샌 그런 일이 잦아들었다는 얘기였다. 정통 재무관료 출신으로의 전문성과 시장에 대한 이해에 정치적 감각까지 지닌 그에게 일이란 떼어놓기 어려운 숙명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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