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태호기자]'영미식 자본주의에 물른 반사회적인 기업인` 도이체방크의 회장인 조셉 애커만(57)에게 붙은 수식어다.
스위스인인 애커만의 어린 시절 꿈은 정치인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는 비록 젊은 시절 상상했던 것과는 매우 다른 방식이지만 독일에서 강력한 정치적, 경제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2002년 외국인으로서는 최초로 도이체방크의 회장이 된 애커만이 독일 사회에서 `개혁의 바람`을 불러 일으킨 것은 취임과 동시에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감행하면서부터. 미국식의 구조조정에 익숙치 않은 독일인들로부터 `영미식 자본주의자`라는 맹렬한 비난을 받을 정도로 `인정사정 볼 것 없는` 개혁을 추진했다.
그가 회장이 된 이후 도이체방크 직원은 전세계 9만명에서 6만3000명으로 줄어들었다. 올 초에도 독일에서 1900명이 감원됐다. 이에 힘입어 순이익이 87%나 늘었지만 현재 독일의 실업자가 500만을 넘어선 상황에서 멈출 줄 모르는 애커만의 구조조정 노력은 큰 반감을 사고 있다.
정치권까지 나서서 애커만의 경영 방식을 문제삼기에 이르렀다. 일부 의원은 국민들에게 도이체방크의 예금계좌를 폐쇄할 것을 촉구했다. 사민당의 프란츠 뮌터페링 사무총장은 도이체방크를 `반사회적 기업`으로 분류하기도 했다.
도이체방크는 독일의 상징적 금융기관으로 경제 전반의 문제점이 지적될 때마다 종종 표적이 됐다. 특히 독일의 실업률이 2차대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는 상황에서 스위스인이 대담한 구조 조정을 강행했으니 여론의 시선이 고울리 없다.
그러나 애커만의 입장에서는 대대적인 감원이 미국의 골드만삭스, 메릴린치 등과 경쟁하기 위해 불가피한 조치였다. 그는 독일 정치인들에게 전 세계적인 경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도이체방크의 조치를 따라야 한다고 서슴지 않고 말했다. "도이체방크의 구조조정을 성공으로 이끌어 하나의 본보기로 만들고 싶다"는 것의 그의 꿈이다.
최근 그의 생각대로 상황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애커만은 지난 몇주간 받은 메일에서 여론의 평가가 점차 우호적으로 선회하고 있음을 읽을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애커만은 얼마전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도 "시끄러웠던 시기는 끝난 것 같다"고 말했다.
애커만은 "사람들이 개혁의 필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좀 더 개방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또 "독일인들은 지는 것을 싫어한다"며 "이들이 변화가 없으면 패배한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사회 분위기도 변하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독일인들은 사민당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를 밀어내고 보수 성향인 기민당의 앙겔라 메르켈 당수를 선택할 태세다. 새로운 정권은 친기업적 정책을 펼치면서 기업 구조조정을 더욱 힘을 실어줄 것으로 예상된다.
애커만은 자신이 스위스인이기 때문에 투표권이 없으며 특정 정당을 지지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 슈뢰더 총리 체제에서 큰 변화가 일기를 원하고 있는 것만은 명백하다. 그는 슈뢰더 총리가 노동조합과 다른 이익단체들 때문에 독일에 필요한 개혁을 단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기민당 메르켈의 개혁 성향이 얼마나 강한지 여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애커만은 그가 충분한 개혁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최근 메르켈은 25%의 일률과세를 주장하고 있는 파울 키르히호프 도이체방크 감독위원회 이사를 경제자문 겸 미래의 재무장관 후보로 지명했다.
애커만은 자신을 `기업가 겸 정치인`으로 보는 주변의 시각도 호의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지난 6월 독일의 유명 저널리스트인 마이브리트 일너는 애커만과의 TV 인터뷰에서 "어떤 총리가 당신 시중을 들지가 중요한 문제가 되느냐"는 반 농담조의 질문을 받기도 했던 애커만은 자신이 독일에서 차지하고 있는 사회적 위치에 만족감을 표하고 있다.
"나는 어느 정도 정치인이죠. 이를 항상 즐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