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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영10년①)초일류 삼성, 최고의 경쟁력 "이건희"

김수헌 기자I 2003.06.05 13:57:36

10년만에 이익 66배 늘어..이 회장 위기의식, 신경영 "출발점"

[edaily 김수헌기자] 지난달 중순 삼성전자(05930)가 비용, 원가절감 등 전사적 경영혁신에 돌입한다며 "고강도 비상경영"을 선언했을 때, 삼성그룹 안과 팎의 반응은 크게 엇갈렸다. 삼성그룹 바깥에서는 "가장 잘 나가는 삼성이 지나치게 위기를 조장하는게 아니냐"면서 "비상경영"이 아니라 "엄살경영"이라고 비꼬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삼성그룹 내부의 분위기는 이와는 사뭇 달랐다. "자성"의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 삼성 계열사 관계자들은 "지난해 사상 최대 성과를 보상하는 차원에서 임직원들에게 사상 최고의 성과급이 지급되면서 직원들의 정신상태가 상당히 해이해졌다"면서 "근거없는 자만이 팽배해졌고, 흥청망청하는 분위기가 눈에 띄게 감지됐다"고 입을 모았다. ◇또다시 찾아온 비상경영.."위기는 자만할때 온다" 삼성전자의 고강도 비상경영 선언은 물론 악화되는 외부환경 탓도 있었지만, 새로운 정신무장이 필요하다는 판단도 크게 작용했다. 삼성의 간판 중 간판인 전자의 이같은 움직임은 나머지 계열사에 급속히 퍼져나갔다. 삼성전체에 허리띠를 다시 졸라매는 분위기가 자연스레 형성됐다. 삼성 관계자들은 "이처럼 최고 상층부와 주력기업이 다른 계열사보다 한발 먼저 위기상황을 감지하고 이에 대비해 왔기 때문에 삼성이 지난 10년 만에 60배 이상의 이익 성장세를 보이면서 일류기업으로 자리를 굳힐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삼성 경영진의 준비경영은 이건희 회장 특유의 위기의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체화한데 따른 결과물이다. 이 회장은 삼성이 순풍에 돛단배처럼 거침없이 나아갈 때 항상 위기의식을 이야기한다. 그룹 밖에서는 이 회장이 위기 발언은 때만 되면 으레 습관처럼 하는 발언 정도로 치부한다. 그러나 삼성 내부에서는 이 회장이 이같은 발언을 그리 간단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지난 93년 이회장이 독일 푸랑크푸르트에 그룹 경영진 200여명을 집합시켜놓고 "질 위주의 신경영"을 부르짖었기 때문에, 많은 대기업들이 추풍낙엽처럼 허망하게 스러질 때도 삼성이 굳건하게 버티고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이 회장은 "삼성전자는 암 2기, 중공업은 영양실조, 건설은 영양실조에 당뇨병, 종합화학은 선천성 불구기형으로, 처음부터 잘못 태어난 회사다. 물산은 전자와 종합화학을 합쳐서 나눈 정도의 병"이라고 진단, 근본적인 수술을 외쳤었다. 한때를 풍미했던 대우의 공중분해, 현대그룹의 해체, 그리고 SK의 창사 이래 최대 위기속에서도 삼성이 오히려 주위에서 부러워하고 시샘할 정도로 "나홀로 독주"행진을 이어가는 저력이 이같은 위기의식과 경영혁신에서 나오고 있다는 게 삼성 안팎의 공통된 평가다. ◇10년만에 이익 66배..초우량 기업 재탄생 과연 10년전 신경영 선언 당시 삼성과 지금의 삼성이 얼마나 달라졌을까. 경영성과는 한마디로 눈부실 지경이다. 매출액은 신경영 선언 직전인 92년 35.7조원에서 지난해 137조원로, 4배 성장했다. 92년 그룹 전체 매출은 지난해 삼성전자 1개사의 매출규모에도 못 미쳤다. 세전이익은 2300억원에서 15.1조원로 무려 66배나 증가했다. 부채비율은 336%에서 65%로 줄어 초우량 기업 대열에 들어섰다. 시가총액은 3.6조원에서 21배 늘어난 74.8조원으로 늘어나 우리나라 상장기업 시가총액의 26.8%를 차지하게 됐다. 지난해 삼성은 우리나라 총 수출의 20%, 국내 석유수입액과 맞먹는 312억 달러를 수출했다. 납세액은 국가 전체 세금의 7%에 해당하는 6조원. 박사인력 2100명을 비롯해 1만 8000여명에 달하는 전문연구개발인력을 보유하고 있다. 국가 경제의 중추기업이자 인재의 보고로서 위상을 확실하게 굳힌 셈이다. ◇삼성 최고의 경쟁력은 이건희 회장 이같은 삼성의 성공 배경에는 여러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삼성 사람들은 그 중에서도 이회장의 리더십과 카리스마, 엔지니어적 자질, 위기에 대비하는 준비경영 등 선견지명을 내세우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와 함께 삼각편대 경영(오너십-전문경영인-구조본), 한발 앞서 구조조정을 가능케 한 신경영, 인재중시 경영, 과감한 투자결정, 자율경영시스템 정착 등이 어우려져 오늘의 삼성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 이순동 부사장(홍보팀장)은 "삼성이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한 요인으로 전문가들이 가장 많이 꼽는 것은 이회장의 강력한 오너십"이라고 말한다. 최근 해외 저명 경제지들도 지난해 이후 이와 유사한 분석들을 내놓고 있다. 이코노미스트, 다이아몬드, 블룸버그, 비지니스위크, 포천, 타임 등은 "삼성의 성공비결은 경영환경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오너십이 뒷받침 됐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삼성 관계자들은 이와 관련해 "삼성식 경영의 경쟁력은 회장의 오너십을 정점으로 구조조정본부와 계열사 경영진이 양 축을 이루는 삼각편대 구조에서 나온다"고 강조한다. 삼각편대 경영이란 ▲경영에 대한 열정과 신념, 전문가 이상의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경영방향과 비전 등 큰 그림을 제시하는 오너 회장 ▲계열사 경영진의 경영판단을 지원하고 경영의 기본실천방향을 설정하는 구조본 ▲경영의 실행전략 수립, 진두지휘하는 계열사 경영진을 일컫는다. 사실 이회장이 지난 93년 "질위주의 신경영"을 통한 세계 일류 경쟁력 확보를 역설했을 때삼성 내부에서조차 이회장의 말을 피부로 느끼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공감은 하지만, 기존 관행이나 습관 등을 버리지 못하는, 즉 마음을 있는데 몸이 따라주지 못하는 형국이었다. 그러나 IMF라는 외부 충격이 가해지자 신경영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삼성 역시 IMF체제라는 초강풍을 맞으면서 다른 기업과 마찬가지로 당황하고 허둥댔다. 그러나 다른 기업보다 수년 앞선 신경영 체제로 어느 정도 준비가 돼 있었기 때문에 좀 더 빨리, 좀 더 과감하게, 그리고 충격을 줄이면서 구조조정을 추진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IMF는 삼성에게는 "독"이 아니라 "약"이 됐다고도 말한다. 정밀 경영진단이 시행되면서 계열사들이 밀어내기 수출을 하면서 쌓아놓고 있는 해외재고, 부실매출 등이 낱낱이 드러났고, 이를 과감하게 떨어내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그동안 흉내만 내오던 질 위주 경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버릴 사업은 미련없이 버리면서도 반도체, LCD 등 수익성과 경쟁력 확보가 가능한 사업에는 과감하게 투자했다. 이른바 미래경쟁력 확보를 위한 적기 투자였다. 삼성전자 이윤우 반도체 총괄 사장은 "해외 선진기업에도 카리스마가 있는 경영자들이 있지만 단기성과에 치중하는 편"이라면서 "반면 우리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와 관련해 의사결정을 빨리 내릴 수 있는 오너 총수가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불황기에 활발한 투자를 집행, 메모리 세계정상에 올라설 수 있었던 요인에는 오너의 리더십을 뺄 수 없다는 것이다. 이회장에 대해 사람들은 과묵하면서 어눌하다는 평가를 내린다. 사람들은 그를 "은둔의 경영자"라거나 삼성의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이회장만큼 언론 등 외부에 많이 노출되는 총수도 없는 것 같다. 그가 사장단 회의 등에서 지시한 내용은 아예 보도자료로 만들어져 언론에 제공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삼성의 움직임에는 이회장의 생각이 배어 있기 때문에, 삼성의 변화를 읽으면 이회장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그는 은둔이라기보다는 노출된 경영자이며, 눈에 보이게 삼성을 움직이는 손이라고 할 수 있다. 삼성의 2기 신경영은 1기처럼 대대적인 선언을 통해 이뤄지지는 않는다. 10년 동안 닦아온 역량을 바탕으로 기업을 한단계 더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해서는 사람, 즉 인재의 역량이 절실하다는 판단에 따라 사람에 대한 투자가 2기 경영의 핵심이 된다. 지난 90년대처럼 이회장 직접 발벗고 나서서 신경영을 선도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삼성에 체화된 "이건희 마인드"에 따라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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