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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잊을 만하면 나타나 냅다 뒤통수를 후려친다. ‘난 살아있다’고, ‘넌 깨어있느냐’고. 이렇게 돌아올 땐 지난번 그들이 아닌 듯하다. 더 야물고 더 단단해져 있으니까. 화면으로 낸 붓길이 그렇고, 그 길에 키운 곡식·채소가 그렇다.
저토록 거칠고 역동적인 ‘토마토 합체’(‘두 꼭지’ 2023), ‘오이 크러시’(‘가시와 구멍’ 2023), ‘양파 구르기’(‘돌고 돌다’ 2022)를 본 적이 있는가. 온몸을 던져 격돌을 감행한 듯한. 어디를 향해서든, 무엇을 향해서든. 혹여 그게 아니어서, 그냥 스스로 산화하는 과정을 미세하게 잡아냈을 뿐이라 해도 말이다. 삶과 죽음을 가르는 비장미가 흐른다고 할까.
작가 최혜인은 ‘식물’을 탐구하고 그린다. 아니, 이 정도론 부족하다. 양생할 수 있는 식물을, 음양의 조화를 아는 식물을, 자연순환에 올라탄 식물이다. 맞다. 식재료. 우아한 자태와는 거리가 먼, 주로 식탁에 오르는 그들이 대상이다. “매끼 먹거리를 준비하며 소소한 듯하지만 거대한 삶의 영역을 본다”고 작가는 말했더랬다. “가사노동의 지겹고 익숙한 존재에서 빠져나오는 출구이자 작업의 낯선세계로 들어가는 입구”라고도.
출발은 마땅히 지독한 생명력에 대한 경의부터란다. 약해 빠진 한 개, 한 톨이 견고한 생장을 거쳐 다른 생명의 움을 틔울 때까지, 치열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생의 본능을 옮겨낸다고 할까. 관찰과 묘사, 철학까지, 작가도 집요하긴 마찬가지다.
적나라한 해부도처럼 보였던 예전 질펀한 화면에 ‘속도감’이란 신무기를 장착했다. 대단히 ‘빨라’졌다. 그럴 거다. 죽자고 사는 현장이 나른하고 고요할 리만은 없지 않은가.
4월 6일까지 서울 서대문구 신촌로 아트레온갤러리서 여는 개인전 ‘해빙’에서 볼 수 있다. 갤러리 선정 작가전으로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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