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을 바꾸는 내부의 힘‥'댓글 소통(疏通)'

안승찬 기자I 2012.03.22 13:46:17

공정위 조사방해에 직원들 "부끄럽다" 내부게시판 질타
경영진 공개사과로 이어져.."쌍방향 소통문화로 변모"
댓글 허용한 삼성 사내게시판, 사내 소통 창구 급부상

[이데일리 안승찬 서영지 기자] "예전의 삼성이었으면 상상도 못했던 일입니다. 덮고 쉬쉬하려고 했겠죠."

삼성의 한 임원은 기자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지난 21일 김순택 삼성 미래전략실 실장(부회장)이 공정거래위원회 현장조사 방해와 관련해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다. 공무집행을 방해한 행위는 명백한 잘못"이라며 공개적으로 시인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삼성전자(005930) 임직원이 공정위의 조사를 방해했다는 이유로 최고 한도액의 과징금을 받은 지 사흘 만에 나온 공식 사과 발언이었다.

삼성이 바뀌고 있다. 워낙 큰 조직이라 곳곳에서 잡음이 끊이질 않지만, 사실을 인지하고 대외적으로 대응하는 속도는 과거보다 놀랄 만큼 빨라졌다.

이런 변화의 한복판에 삼성의 달라진 사내 커뮤니케이션이 놓여 있다. 무엇보다 사내 인트라넷 게시판의 '댓글' 문화가 경영진의 의사결정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 삼성 사내인트라넷의 `미디어삼성`. 미디어삼성에서는 직원들이 게시물에 댓글을 달 수 있다.

과거 삼성그룹은 사내 인트라넷인 마이싱글은 일방적인 상명하달식 소통의 창구였다. 회사의 공지사항을 전달하고, 직원들이 올린 결제를 처리하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지난 2006년 삼성그룹이 사내 웹진인 '미디어삼성'을 만들면서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미디어삼성은 직원들이 댓글을 달 수 있도록 만들었다. 삼성전자 역시 2009년 말 비슷한 형식의 '라이브'를 개설하고, 열린광장과 이슈토론방 등의 코너를 만들어 아예 익명으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했다.

처음에는 게시판 개설 자체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괜히 안 좋은 의견이 올라오면 통제할 수 없다"는 우려였다. 또 막상 만들어놓아도 직원들이 눈치만 보면서 '소신 있는' 댓글을 주저했다.

하지만 2년이 넘는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미디어삼성과 라이브에는 직원들의 생생한 목소리가 담기기 시작했다. 특히 이번 공정위 조사방해와 관련한 삼성의 공식 사과 역시 사내 댓글 문화의 힘이 컸다.

김 실장의 공개 사과 여부를 두고 일부에서는 "대외적으로 잘못했다고 할 필요까지 있느냐"는 의견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사내 여론이 심상치 않았다. 이인용 삼성 커뮤니케이션팀장(부사장)은 사장단 회의에 사내 게시판에 올라온 의견을 가감 없이 전달했다.

"집에서 애들과 뉴스를 보다가 정말 부끄러워서 혼났다", "세계 1등이라는 우리 회사에서 일어난 일이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는 등의 내용이 사내 게시판을 도배하다시피 했다.

이 팀장은 "이번 사건으로 인해 많은 임직원들이 회사에 대한 자부심에 손상을 입었다"고 사내 분위기를 보고했다. 사장단도 고개를 끄덕였다. 김순택 실장은 "잘못된 것이 있을 때 덮고 싶어하는 마음은 있을 테지만, 잘못한 걸 공개하고 인정하고 바로잡는 문화가 자리 잡도록 해야 한다"며 반성을 촉구했다.

우려와 질타의 글이 넘치던 사내 게시판에는 김 실장의 공개 사과 발언 이후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많은 임직원들의 걱정이 경영진에게 전달이 되었다니 좋은 기회라 봅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삼성이 누구의 말처럼 아직은 건강한 조직인가 보네요" 등 김 실장의 사과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현재 삼성전자의 라이브는 하루 평균 방문자가 4만명이 넘고, 1일 평균 게재글이 120여건에 달한다. 최지성 삼성전자 부회장은 매일 라이브에서 직원들의 댓글을 직접 챙겨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한 관계자는 "과거와 달리 요즘 삼성의 젊은 직원들은 자신의 의견을 가감 없이 표출한다"면서 "삼성의 사내 소통의 문화가 쌍방향으로 가고 있고, 이런 소통이 기업의 의사결정에도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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