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회복은 `쿠에이즘`에 불과한가"

오상용 기자I 2009.11.23 14:26:50

쉴러 교수 "1930년대식 사고 벗어나지 못해"
`자기실현적 예언`에 기반한 막연한 회복 기대감

[이데일리 오상용기자] 프랑스의 심리학자 에밀 쿠에(Emile Coue)는 `자기암시`의 위대함을 설파했던 인물이다. 그는 사람들에게 "나는 매일 모든 면에서 나아지고 있다"고 암송하라고 권했다. 그러면 잠재된 무의식이 힘을 발휘해 실제로 기적같은 일이 이뤄진다고 역설했다.

자기 최면 또는 마인드콘트롤에 근거한 이같은 `쿠에이즘(Coueism)`은 인간 정신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담고 있다. 물론 과학적으로 검증된 실체적 증거는 없다.

로버트 쉴러 예일대 경제학교수는 22일(현지시간) 미국의 경제전문 사이트 CNBC에 기고한 글에서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도 어쩌면 막연한 쿠에이즘에 불과하지 않을까`라고 의문을 던졌다.

쉴러 교수는 "정부의 내수부양책과 구제금융 노력을 넘어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경기회복은 다소 `자기실현적 예언`에 기반한 것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경기후퇴가 끝났다는 생각이 쌓일 것이고, 이같은 생각들이 신뢰를 낳고, 사람들은 돈을 쓰기 시작해 마침내 두드러진 회복 양상이 나타날 것`이라는 믿음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쉴러 교수는 "이는 매우 모호한 관념에 불과하지만 그간 많은 경제학 이론가들은 그 가능성에 사로잡혀 왔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시작과 끝이 명확한 경기 싸이클을 사람들이 늘 믿어온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경기순환에 대한 이론은 1920년대 인기를 얻어 1930년대 `대공황(the Great Depression)`을 거치며 만개했을 뿐이다.

쉴러 교수는 사람들의 자기 최면적 행위는 경기후퇴를 지칭하는 어휘 선택에서도 발견된다고 했다. 이는 `불황(Depression)`에 대한 거부감과 `경기후퇴(Recession)`에 대한 선호로 나타나곤 한다.

사실 `불황`이란 단어는 경기후퇴를 지칭하는 일반적인 단어에 불과했다. 그러던 것이 1934년 라이오넬 로빈스의 저서 `대공황`이 발간된 이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회피하는 단어가 돼 버렸다.

그래서 1937년에서 1938년 사이 디프레션을 대신해 경기순환상의 일반적인 경기후퇴를 지칭하는 단어로 등장한 것이 `경기후퇴(Recession)`이다. 당시 시카코 데일리 트리뷴지는 경기후퇴에 대해 "불황을 의미하는 단어지만, 경제가 여전히 그런 상황(Depression)에 빠져있다고 받아들이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정의 내렸다.

심리학적 관점에서 `경기후퇴`란 단어는 `불황`에 비해 크게 완화된 어감으로 다가왔고 그 의미속에는 언젠가 경기후퇴는 끝난다는 기대감이 투영돼 쓰였다.

쉴러 교수는 "최근에도 우리는 본능적으로 `불황`이라는 단어를 회피하면서 서로의 신뢰(경기는 결국 회복된다는 신뢰)를 지탱하려 애쓰고 있다"면서 "`모든 경기후퇴는 결국 예정된 경로대로 마무리 될 것`이라는 믿음에 빠져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같은 측면에서 우리는 여전히 1930년대식 사고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이어 "현 시점에서 신뢰를 쌓기 위한 우리의 노력은 어느 정도 작동하는 듯 보이지만, 실상 경기는 여전히 회복되지 않고 있다"고 진단했다.

쉴러 교수는 "쿠에이즘이 일반적으로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듯 오래된 경기순환론 역시 상당부분 그러하다"면서 "그럼에도 막연한 믿음에 근거한 이 둘은 여전히 우리 뇌리에 둥지를 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사람들은 이같은 완곡 어법(디프레션 대신 리세션 선호)과 `경기는 회복된다`는 순환론을 통해 지난 1930년대 작동했던 것 보다 더 효과적으로 경제주체들의 신뢰가 복구되기를 바라고 있는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쉴러 교수는 "현 상황이 반복돼 왔던 경기후퇴의 하나에 불과한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은 여전하다"면서 "현재 대중의 심리가 경기후퇴 쪽인지, 아니면 불황 쪽인지, 여전히 우리는 갈림길에 서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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