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산도가 크고 홍도는 흑산면의 부속섬인데 흑산도·홍도가 아니라 왜 홍도·흑산도일까? 두 섬 모두 아름답지만 여행자들이 생각하는 하이라이트는 홍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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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여행자 중에는 흑산도에서 숙박만 하고 투어를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단다. 흑산도도 아름답다. 홍도가 흑산도보다 못하다는 게 아니라 흑산도가 생각보다 저평가됐다.
홍도와 흑산도는 여행법부터 다르다. 홍도는 해상에서 유람선 타고 기암괴석을 바라본다. 홍도가 워낙 예쁜 섬이다보니 바다까지 나가서 다시 홍도를 보는 것이다. 마치 제 얼굴에 반한 그리스 신화 속의 나르키소스처럼. 정작 홍도에 발을 딛고 서면 제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다. 산 위에서 다른 산을 보든지, 산아래를 봐야지 제 모습을 샅샅이 훑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홍도 2구로 넘어가는 산길도 좋아보이지만 자연보호 때문에 공식 통행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했다. 홍도 2구는 등대섬도 있고 한적하고 고즈넉하지만 배편이 일정치 않아 홍도 관광객의 4%만 홍도2구를 찾는다.
반면 흑산도 여행은 (해상투어도 있지만) 버스 타고 해안을 돌며 섬주변을 돌아보는 식으로 이뤄진다. 흑산도는 크고 넓다. 장쾌하다. 한가해서 섬답다. 섬사람들 미역말리는 모습도 한가롭게 볼 수 있다. 최익현과 정약전 유배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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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도에 딸린 섬이 모두 100개(흑산도 포함) 정도고 이 중 11개가 유인도다. 그래서 대장격인 흑산도의 절벽 기슭에서 여기저기 섬들을 내려다볼 수 있다. 여행은 일주도로를 이용하는데 해안도로는 25.4㎞다. 이 가운데 곤촌마을에서 사촌구간 3.9㎞는 포장공사 중이다. 그래서 섬을 둘러볼 때는 반바퀴 일주, 한 바퀴 일주 등으로 여행 프로그램이 나뉘어 있다. 올해 안으로 일주도로는 모두 완공된다고 한다.
흑산도에서 꼭 봐야 할 코스는 ①상라봉 전망대 ②일주도로변 한가한 해수욕장과 기암괴석 ③정약전 유배지다. 아, 참! 귀를 열어놓고 이미자 노래도 들어야 한다.
상라봉은 예리항과 주변의 섬들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포인트다. 여기서 대장도와 소장도 너머로 홍도까지 보인다. 섬들이 올망졸망 떠있는 흑산도 앞바다의 모습도 평화롭지만 꽈배기마냥 구불구불한 도로도 재밌다. 사진작가들은 사진 한 장 ‘건지기 위해’ 여기까지 온다. 상라봉은 일몰 포인트. 일몰 무렵 버스가 하나 둘 도착한다. 해는 홍도 옆으로 떨어진다. 홍도는 가까이서 보면 깎아지른 벼랑이 우뚝했지만 멀리서 보니 밋밋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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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홍도 주변에 운무가 끼고 대장도와 소장도 같은 듬직한 돌섬들이 앞에 있어 보기 좋다. 전망대 꼭대기에 가로등도 있다. 해질 무렵 찾는 관광객들이 많아서일 것이다. 섬에서 보는 일몰은 특별하다. 뭍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서 일몰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거친 섬의 해안도로(일주도로)는 해수욕장 옆만 지나가는 게 아니라 벼랑길로 이어진다. 이런 길의 장점은? 섬을 평면체로 보지 않고 다면체로 느끼게 한다. 실제로 상라봉에서 본 장도와 일주도로에서 바라본 장도는 완전히 달라보였다. 소나무에 매달아놓은 그네가 있는 삿개 해수욕장도 빼놓을 수 없는 포인트다.
흑산도에선 정약전 유배지도 찾아야 한다. 물론 초가집 하나만 덜렁 복원됐지만 그의 기구한 인생살이는 많은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정조가 죽고 순조가 즉위하자마자 불어닥친 천주교에 대한 탄압으로 당대의 명문가 집안이었던 정약전 집안은 풍비박산 났다. 약종은 처형당했고, 약전은 흑산도로, 약용은 강진으로 귀양살이 갔다.
7개의 암초로 된 칠형제 바위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그가 배에 내렸을 때를 생각해보자. 마을은 지금도 궁벽한데 당시엔 더 했을 것이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을 것이다. 거기서 그가 남긴 명저는? 복잡다단한 철학서가 아니라 국내 최초의 해양생물안내서인 <현산어보>(자산어보)다. (물론 다른 책도 많이 썼다.) 물고기 관찰이 위안이었을지도 모른다.
사촌마을은 한가했다. 전교생이 4명뿐인 초등학교 운동장에 할머니들은 미역을 널었고, 할아버지는 마을어귀에 세생이라는 약초를 말렸다. 정약전이 생전에 글을 가르치던 서당 바로 앞에는 낡고 허름한 공소(주임신부가 상주하지 않는 예배당)가 있다.
마지막은 이미자다. 흑산도에선 슈퍼주니어의 ‘쏘리 쏘리’, 손담비의 ‘토요일밤에’, 소녀시대의 ‘Gee’도 들을 수 없다. 흑산도에서 나오는 노래는 딱 세 가지. ‘흑산도 아가씨’ ‘섬마을 선생님’ ‘동백 아가씨’다. 그나마 지난해까지만 해도 ‘흑산도 아가씨’ 한 곡이었는데 노래비 옆의 노래자동생성기가 고장이나 수리를 하면서 세 곡으로 늘렸단다.
모두 60년대 노래다. 이미자는 10여년 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요즘 아이돌스타의 노래는 멜랑콜리하지 않다”고 했다. 하기야 이미자 노래는 그의 말대로 ‘멜랑콜리’ 그 자체다. 흑산도 역시 이미자 노래 같다. 빠른 비트는 없고, 끊어질 듯 말 듯하다 이어지는, 몸을 휘감는 ‘끈끈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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