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암 엇갈린 멕시코 이후'' 멕시코 4강 신화 주역 18인의 어제와 오늘(2)

김삼우 기자I 2007.06.25 12:51:15
[이데일리 SPN 김삼우기자] 멕시코 4강 신화의 주역 18인의 축구인생은 명암이 엇갈렸다. 프로에서도 인정을 받은 멤버가 있었던 반면 청소년 시절 너무 강렬한 빛을 발한 탓인지 씁쓸하게 현역 생활을 정리한 이들도 있었다.

▲불운했던 김종부 신연호

한국축구를 뒤흔든 스카우트 파문에 휩쓸린 김종부가 대표적이었다. 김종부는 86년 멕시코 월드컵 불가리아전에서 극적인 동점골을 넣어 한국이 월드컵 사상 첫 승점을 기록하는데 기여하는 등 차범근의 뒤를 이를 대형 스트라이커로 주목받았지만 87년 현대와 대우의 스카우트 파문에 휘말려 내리막길을 걸었다.

김종부 스카우트 파문은 최순영 대한축구협회장 사임, 현대 팀 해체 선언 및 철회 등으로 이어지며 프로축구를 뒤흔든 대사건으로 ‘한국축구 100년사’에 기록되어 있다. 프로축구에 드래프트제가 도입된 것도 김종부 파동이 계기가 됐다.

김종부는 결국 88년 럭키 금성 소속으로 프로 생활을 시작했으나 95년 대우에서 은퇴할때까지 고작 81경기 출장, 6골 8어시스트를 기록을 남기고 현역 생활을 접었다.

멕시코와의 예선 2차전(2-1승)에서 결승골, 우루과이와의 8강전(2-1승)에서 두골을 몰아넣으며 한국의 4강 진출을 주도한 신연호도 성인무대에서 빛을 보지 못했다. 고질적인 부상 탓이었다. 관절염 등으로 거의 매일 병원에 다녀야 했다고 기억할 만큼 부상에 시달리던 그는 87년 프로(현대)에 뛰어들었으나 170경기에서 12골이라는 초라한 성적을 남기고 94년 은퇴했다.

▲성인 무대서도 빛난 이기근 김판근

성인 무대에서는 폴란드와의 3.4위전(1-2패)에서 골을 넣은 이기근이 가장 큰 족적을 남겼다. 87년 포항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 88년(12골)과 91년(16골) 두 차례 프로축구 득점왕에 올랐다. 97년 수원 삼성에서 옷을 벗을 때까지 기록은 264경기 출장에 70골 19어시스트.

수비수 김판근도 ‘그라운드의 여우’로 불리며 프로 통산 267경기 출장 13골 21어시스트를 기록했고, 88년 서울 올림픽, 94년 미국 월드컵에 출전했다. 김판근은 83년 남자 국가대표 사상 최연소인 17세 184일째에 A매치에 출전한 기록도 보유하고 있다.

김풍주(181경기 출전 159 실점), 김종건(127경기 출장, 14골 12어시스트), 유병옥(183경기 출장 4어시스트) 강재순(198경기 출장 28골 21어시스트) 등도 프로에서 비교적 성공한 케이스로 꼽힌다.

▲왜 더 크지 못했을까

비록 이들이 나름대로 프로 무대에서 이름을 남겼다고는 해도 4강 신화를 달성했을 당시 18인의 붉은 악마에게 쏟아졌던 기대에 비하면 대부분 크게 성장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노인우 최익환 김흥권 이승희 이현철 등은 아예 프로 무대와 인연을 맺지도 못했다.

다양한 이유가 제시된다. 당시 한국 축구가 이들을 지속적으로 관리, 성장시킬 수 있는 시스템과 인프라가 부족했기 때문이었다는게 우선이다. 또 개인적으로는 너무 일찍 각광을 받아 조로한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 있고 조직력을 강조한 박종환 감독의 성향 때문에 개인 기량 면에서 다소 떨어질 수 있었다는 분석도 있다.

당시 대표 선수단에서 가장 성공한 인물은 선수들보다 오히려 박종환 감독이 꼽힌다. 박 감독은 88년 일화 창단 감독으로 프로에 데뷔, 93~95년까지 K리그 3연패를 이끈 것을 비롯, 지난 해까지 대구 사령탑을 맡아 현역에서 활약했다. 하지만 박 감독도 성인 국가대표 감독으로서는 ‘성공한 지도자’라는 평가를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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